22.10.19 05:14최종 업데이트 22.10.19 05:14
  • 본문듣기

지난 6일 멕시코 게레로주 산미겔 토톨라판의 총탄에 휩싸인 청사 앞에서 한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0월 5일 오후, '살육'이라는 단어가 국내외 언론의 지면과 화면을 메웠다.

당일 오후 2시경, 멕시코 중서부에 위치한 게레로 주 산 미겔 토톨라판 시(이하 산 미겔 시) 청사에 수백 발의 총알이 쏟아졌다. 총격은 30분 이상 계속되었다. 그 안에 있던 현직 시장과 직전 시장을 포함해 총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마침 시청 앞을 지나던 14세 어린 소년이 목숨을 잃었다.


총격을 가한 자들은 그들의 작전을 개시하기 전 대형 컨테이너 트럭들로 바리케이드를 쳐 도시로 들어올 수 있는 모든 진입로를 차단했다. 살육이 자행된 후 네 시간 동안 그 어떤 공권력이나 시신 검식반도 들어올 수 없었다. 스무 구의 시신들은 그대로 시 청사 안팎에 방치되었다. 작전 세력 중 누군가 이 처참한 광경을 찍어 SNS에 올렸고 각 언론사들은 SNS 상에 올라오는 영상들을 바탕으로 속보를 전했다.

4시간 동안 수습되지 못한 시신에서 흘러내린 피와 벌집이 되어 버린 시 청사 건물 외벽 모습은 처참했다.
 

지난 10월 5일 산 미겔 살육이 발생한 후 각 언론사들은 이틀 후에 해당 마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틀 후인 10월 7일까지도 시청사 앞 곳곳에 탄피들이 수습되지 않은 채 널려 있다. 사건 발생 당일 해당 시는 축제 기간 중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시청 앞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던 중이었다. 총격 당시 마침 그 곳을 지나던 14세 소년이 총격에 희생되었다. ⓒ La Estrella 뉴스

 
대낮 시청에서 벌어진 참사

평일 낮 시청에서 대량 살상무기를 동원한 총격전이 벌여졌다는 사실, 그 와중에 전현직 시장을 포함하여 20명이 죽고 이후 4시간 동안 그 어떤 공권력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시 전체가 고립되어 있던 상황.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멕시코 밖에서 이 뉴스를 본다면 '그게 나라냐?' '절대 여행조차 못 갈 나라'와 같은 평가와 비난들이 쏟아질 것이다.

굳이 지금의 비난이 아니더라도 이미 멕시코는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들과 함께 오래 전부터 '실패한 국가' 혹은 '여행 제한지역'으로 낙인 세례를 받아왔다.

'살육'이라는 단어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곳 사람들은 묻지 않는다. 굳이 묻지 않아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 그간 답을 구하기 위한 기출문제는 충분히 풀어온 셈이다.

'마약 카르텔', 일찌감치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는 답이다. 어떤 사건이든 어지간해선 변하지 않는 상수다. 거기에 해당지역 정부 혹은 정치가 변수로 더해진다. 변수로 인해 각 사건마다 그 모양새가 조금씩 달라질 뿐, 사건 발생의 작동 원리는 늘 한결같다. 야합과 배신과 복수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중앙 정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방 정부일수록, 그리고 규모가 작은 지방 정부일수록 상수인 마약 카르텔과 변수인 정치의 상관관계는 공공연하고 노골적이다. 지난 10월 5일 살육이 벌어진 산 미겔 시 역시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함께 피살된 현 시장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현 정부 3년 반 임기 동안 16번째로 피살된 현직 시장이다.

사건 발생 당시 산 미겔 시 청사 안에서는 '안전'을 위한 긴급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현 시장과 직전 시장, 그리고 시 경찰 고위 간부들과 측근 직원들이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직전 시장은 현 시장의 아버지다. 이 또한 우리나라에선 흔치 않은 일이지만, 멕시코에서라면 종종 있는 일이다. 누군가 뒤를 봐주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 올라오는 코카인을 받아 미국으로 넘기기도 하지만, 멕시코 내에서 펜타닐이나 메탐페타민 같은 강력 화학 합성 마약을 제조하기도 한다. 주 원료는 중국과 인도에서 태평양을 건너 선박으로 운송된다. 때문에 멕시코 태평양쪽 항구가 입지한 지역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마약 카르텔 간 충돌과 갈등이 매우 심각한 편이며 극심한 폭력을 야기하고 있다. ⓒ SEDENA(멕시코 국방부)

 
범인은 명백하건만

사건 직후, 해당 지역 강성 마약 카르텔 중 하나인 A그룹의 개입이 밝혀졌다. 그 이면에 야합과 배신과 복수의 틀에 박힌 전개가 선명하게 읽혔다. 이미 현 시장(임기 2021-2024)의 부친(직전 시장, 2018-2021년 임기)이 A그룹과 오랜 시간 노골적인 관계를 이어왔고 그 관계를 통해 아들에게 시장 자리를 넘겨줄 수 있었다. 그런데 시장이 된 아들이 최근 A그룹과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강성 카르텔 B그룹에 선을 댄 정황들이 포착되었다.

마침 사건 당일, 그들 스스로도 위험 수위를 감지했을 것이고 '안전'을 도모하고자 긴박하게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구하고 있던 중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서 2명의 전현직 시장, 7명의 경찰 간부, 그리고 측근 부하 직원들이 쏟아지는 총탄 세례를 받고 죽었다. 20명이나 피살되었으니 범인 검거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차라리 허구에 가까운 이론일 뿐이다. 적어도 작금의 멕시코에서는.

살육을 감행한 A그룹의 두목과 조직원들에 대해 검거가 가능할 것 같았으면 이미 그간의 악행만으로도 십 수 년 전에 잡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곳에선 피살 사건 10 건 중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고 범인이 검거되는 경우는 1건에 채 미치지 못한다. 몰라서 검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검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은 자들의 가족조차 범인 검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또 다른 살육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이곳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라도 치를 수 있으면 다행이다.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시신들은 묻혔고,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사건 역시 잊혔다.

영화보다 처참한 일상

도대체 무엇이 이런 야만을 야기할까? 적어도 국민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뽑은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이 있고 대외적으로도 OECD 회원국이기도 하고 G20 회원국이기도 한 이 나라 멕시코에서 발생하는 이런 폭력의 수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또한 답은 분명하다. 마약이다. 멕시코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강력범죄엔 마약 카르텔이 개입한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로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다만 이곳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강력하며 잔인하다. 때론 그들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의 삶과 충돌하기도 한다. 이번 살육에서 피살된 14세 소년의 삶처럼.

내가 사는 마을은 인구 1만 명 미만의 소읍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 살아간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한 다리 건너면 대부분이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마을 안에서 누가 마약을 파는지, 누가 마약을 사는지, 그리고 우리 마을을 실제로 지배하는 카르텔이 어느 카르텔인지, 그들의 대적 카르텔은 어느 카르텔인지, 마을 내 조직원들의 서열은 어떻게 되는지 마을 사람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 <시카리오>나 <나르코스>가 담지 못한 수많은 단면들이 일상의 삶으로 이어진다.
 

<나르코스:멕시코>(2022) 포스터 ⓒ 넷플릭스

 
그러니 종종, 아니 자주, 마을에 살던 아무개가 대낮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거나 사라지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답은 뻔하다. 다만, 사람들은 서로 묻지 않는다. 공권력의 개입 역시 어지간해선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권력 개입에 대한 기대조차 없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믿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외부자들은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이 나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세상'과 '내 세상'을 애써 분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세상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그들 역시 나의 세상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으로 애써 살아간다. 그 믿음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요즘 같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믿지 못할 '믿음'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누구의 잘못인가?' 라고 묻지 않는다. 세상이 그런 걸, 굳이 물어 어쩌겠냐는 것이다. 멕시코에서만 마약을 재배하거나 합성하고, 멕시코에서만 마약을 팔고, 멕시코에서만 마약을 먹어 치운다면, 멕시코 안에서 어찌 해결해 볼 만한 문제겠지만 멕시코 밖 어디선가 끊임없이 마약이 들어오고 멕시코 밖 어디론가 끊임없이 마약이 흘러가는 상황이라면, 멕시코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해결은 어렵다.
 

멕시코 검찰 소속 마약 단속원이 압수된 화학 합성 마약을 감식하기 위해 수거하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최종 소비지에서 그램(g) 단위로 판매되는 합성 마약들이 한꺼번에 수 톤(ton)씩 적발되어 압수되기도 한다. 다만 멕시코를 거쳐 미국 등지에 이르는 마약 전체 양에 비하면 매우 미미하여 1% 정도에 해당할 뿐이다. ⓒ FGR 멕시코 검찰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램(g) 단위로 팔리는 코카인이 톤(ton) 단위로 발견되고, 1kg만 있어도 가장 강한 합성 마약 1백만 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펜타닐 역시 수 톤(ton)씩 발견된다. 하지만 그 양은 멕시코로 들어와 합성된 후 발견되지 않고 다시 멕시코를 빠져나가는 양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멕시코를 거쳐 가는 전통마약(아편, 마리화나, 코카인, 헤로인)과 합성마약(펜타닐, 메탐페타민 등) 대부분의 최종목적지는 미국이다. 그러니 미국이라는 소비 시장이 없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혹은, 멕시코 내 펜타닐 계 합성마약의 원료 대부분이 수입되는 중국이라는 공급 시장이 없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마약 카르텔이 군 병력보다 막강한 화기를 구입하는 미국 무기 시장이 없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지난 세기 마약 시장을 장악했던 콜롬비아 카르텔이 여전히 강성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숱한 질문을 던져보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가설에 그칠 뿐이다.

지난 2021년 기준 미국 전체 시민 중 3천만 명이 마약을 소비했고 그 중 3백만 명 정도는 중독 상태다. 또한 10만 7천 명이 마약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미국 내 자살, 교통사고,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자를 합한 수보다 많다. '살육'이 횡행하는 멕시코에서 지난 한 해 마약카르텔 개입으로 인해 발생한 피살자 수(3만 5천 명)보다 월등히 많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헤로인의 소매가격은 1그램(g)당 1200달러 정도다. 코카인이나 메탐페타민 가격은 그보다 낮지만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마약이 수백 톤 단위임을 감안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마약 소비에 빨려 들어가는지 대략의 가늠조차 쉽지 않다. 다만, 멕시코 카르텔이 주무르는 돈이 63억 달러(약 9조원)라 하니, 미국에서 누군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빨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2020년 3월 말 멕시코 티후아나와 미국 샌디에이고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마약 터널에서 압수된 마약들. 마약의 종류는 마리화나부터, 코카인, 헤로인, 메탐페타민, 펜타닐 등으로 다양했다. 총 3천만 달러 정도의 가치로 환산되었다. ⓒ 미국 연방정부 마약단속국 보도자료

 

지난 토요일(10월 15일)에도 멕시코 과나후아토 주 어느 식당에 무장괴한이 들이닥쳐 12명이 피살되었다. 역시 마약 카르텔 간 세력 다툼이다. 너무 흔한 일이라, 뉴스에도 단신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마약 흐름과 소비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마약을 따라 흐르는 돈이 누군가를 계속하여 이롭게 하는 한 이토록 흔한 '살육'은 계속될 것이다.

언제까지 피의 참극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피는 점점 더 취약하고 더 낮은 곳을 향해 흐르고 돈은 점점 더 거대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흐른다는 사실 뿐.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