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6 05:17최종 업데이트 22.10.06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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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6일 기무사 계엄령 문건 작성 관련 테스크포스(TF)를 이끌었던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문건 작성 당시 기무사3처장)이 국방부 특별수사단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 본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 권우성


기무사 출신의 예비역 장성 중에 소강원이라는 사람이 있다. 소씨는 2019년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주도한 혐의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에는 박근혜 탄핵 촛불 당시 계엄령 문건을 작성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내란음모사건 수사를 받다 참고인중지 처분을 받았다. 같은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으나 미국으로 도주하여 지명수배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신병이 확보되면 소 씨에 대한 수사도 재개될 것이다.

소씨는 최근 국민의힘의 <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 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TF 위원장은 육군 중장 출신의 한기호 의원이다. 2014년 SNS에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좌파단체 색출을 주장한 적이 있는 한 의원은 2022년에는 유가족 사찰을 주도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전직 기무사 요원과 함께 국가안보 문란의 실태를 조사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 송영무 장관은 기무사를 해체하려는 악의적인 목적으로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세월호 관련 재난 구조 지원 업무를 수행한 부대원 전원을 야전 부대로 전속시킴은 물론 당시 주요 지휘자들을 기소했다."(2022. 8. 19. TF 5차 회의)

'세월호 재난 구조 지원 업무'의 실체

2014년 기무사가 작성한 보고서 '세월호 관련 상황관리 방안'에는 당시 기무사령관이었던 이재수 중장이 2014. 7. 6. 현안업무회의에서 휘하 참모들을 질책한 내용이 정리되어있다.
 
'(사령관님이) 실종자가 현재 11명인데 부모 성향 확인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시고, 처장님들이 답변을 못하시자 여기 정보기관이야. 옛날 같으면 일일이 공작할 사항이야. 실종자 11명 중 단원고 학생이 5명이면 이들 학부모에 대한 성향 파악을 해서 일대일로 맨투맨을 붙이던 종교계를 동원하던, 국정원을 동원하던 타협방안을 강구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2014. 8. 28.자 기무사가 작성한 중요보고서인 '세월호 탐색구조 종결 시기 검토 필요'에는 '요구되는 대책' 중 하나로 '세월호 정국 타개를 원하는 국민적 여론 활용, 실종자 가족 압박 – 언론·SNS를 통해 탐숙 구조 종료 필요성에 대한 범국민 공감대 확산 / 오피니언 리더 협조 下 외국사례 비교 / 구조비용 과다지출 공론화 / 잠수사 애환 홍보(다큐멘터리 제작·언론 인터뷰 등)'이 쓰여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나, 이 외에도 조기 수색 종료를 위해 유가족을 압박하고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청와대에 진언하는 보고서들과 유가족 신상 카드, 동향 파악 보고서도 부지기수다.

한기호 의원과 TF가 위 보고서들을 다 확인해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온갖 수단을 동원해 유가족으로 하여금 실종자 수색을 단념하게 하는 것도 재난 구조 지원 업무에 해당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의원과 국민의힘이야 말로 기무사를 부활시키려는 목적으로 '세월호 재난 구조 지원 업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을 자행한 부대원들을 신원해주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TF 위원 중에 직접 사찰에 가담해 실형을 산 인물도 있는 만큼 이들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었을 수도 있고, 애초부터 한통속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어떤 쪽이건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수차 확인된 계엄문건의 불법성
 

지난 9월 14일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TF 위원장인 한기호 의원(가운데)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등을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계엄령 관련 2급 기밀 문건을 왜곡한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TF 부위원장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왼쪽은 임천영 변호사. ⓒ 연합뉴스


한편, 한 의원과 TF는 지난 9월 14일, 소강원 전 참모장이 연루되어있는 계엄 문건 작성과 관련하여서도 '2018년 7월 문건이 일반에 공개되기 전부터 송영무 전 장관이 계엄 문건에 불법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는데도 군이 내란음모를 꾸민 것처럼 조작했다'며 송영무 전 국방부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군사기밀누설, 기밀손괴 등의 혐의를 걸어 고발했다.

우선, 군대를 투입해 국회를 해산시키고, 시위대가 모이는 지역의 통신망을 차단하고, 계엄법 상 계엄사령관으로 정해진 합동참모의장을 임의로 육군참모총장으로 갈아 끼워 놓은 계엄 문건이 합법적이라는 주장이 국민의힘의 공식 입장이라면 곤란하다. 국민들은 위헌적인 내용을 공식적으로 옹호하는 정당을 '위헌정당'이라 부른다.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면 이런 해괴한 조사 결과를 국민 앞에 발표한 한 의원과 TF는 당기위원회 제소감이다.

계엄 문건이 2급 비밀에 해당하는 군사기밀이라는 주장도 안타깝다. 국민의힘은 2018년부터 계엄 문건이 2급 비밀이라는 억지를 써왔다. 검찰과 법원이 계엄 문건이 군사기밀이 아니라는 설명을 반복해도 고장난 테이프 마냥 똑같은 소리를 4년째 반복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에 고발된 인원 중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국민의힘으로부터 계엄 문건 폭로와 관련하여 군사기밀누설로 벌써 세 번 째 고발을 당했다. 앞서 두 번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한 의원과 TF는 또 똑같은 내용으로 고발장을 넣었다. 거의 검찰의 업무를 방해하는 수준이다.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는 임태훈 소장에 대한 불기소이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위 문건은 2017 KR훈련(연습) 기간 중 생산 및 접수 된 비밀이 아님에도 군사보안업무훈령을 위반하여 '2017 KR 훈련(연습) 비밀(2급)로 생산한다'는 '허위' 내용의 전자공문서 작성을 통해 훈련비밀로 생산되었다. (중략) 문건이 '적법절차에 따라' 군사기밀로서의 표지를 갖추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소강원 전 참모장 등이 위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은 군사법원 1심 판결문에는 장장 71페이지에 걸쳐 계엄 문건이 허위 군사기밀로 등재되는 황당한 과정이 매우 소상히 적혀있다. 요약하면 기무사 요원들이 계엄 문건을 누군가로부터 숨기기 위해 적법절차도 따르지 않고 허위로 군사기밀인 양 꾸며낸 것이기 때문에 계엄 문건은 군사기밀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계엄 문건이 군사기밀로 등재된 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인 2017. 5. 10.이기도 하다.

본인들이 고발한 사건의 불기소이유서와 소 전 참모장이 가지고 있는 판결문만 확인해봤어도 반복적으로 무의미한 고발을 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무슨 저의로 무고한 사람들을 고발하고 있는지 쉽사리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정쟁이 좋다지만 정쟁도 상식과 합리에 근거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새 정부의 비전을 보여줘야 할 시기에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했던 내란음모 잔존 세력, 민간인 사찰 범죄자들과 왜 한 배를 타려고 애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힘이 고발장을 제출한 날 밤, 갑자기 도피 생활을 이어 온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나타나 귀국 의사를 밝혔다. 곳곳에서 보수언론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대상으로 공작을 지시했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을 구국의 영웅이라 칭송한다. 한기호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국방위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국정감사에 불러내 기무사 해체의 책임을 질의해야 한다고 성화다. 전 정부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다 그만 박근혜 정부의 과오와 책임도 함께 지고 가게 될 판이다. 물론 그 시절 기무사의 악행을 묵인했던 정부 여당으로서 진 책임이 없으니 그렇게 되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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