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6 13:34최종 업데이트 22.09.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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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칼럼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를 뒤늦게 읽었다. 상당한 논쟁을 일으킨 글이었는데 읽어보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개인적으로 이 칼럼에 마음이 들지 않는 부분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관련기사: 천현우 "칼럼 '지방 총각들' 구렸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http://omn.kr/20snl).

세상에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수도권 밖에 사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도 그들 중 하나다. 그리고 그들이 결혼하여 아내와 자식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가질 수도 있다. 이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지방 총각들' 칼럼은 상황을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분석이 있긴 한데 주장이 선명한 편은 아니다. 단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만 가능하다. 글이 이러면 비판의 여지도 줄고 문제의식도 덜 느껴진다.
 

조선일보에 실린 <‘지방 총각들’도 가정을 꿈꾼다> 칼럼. ⓒ 조선일보 갈무리

 
이성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나

나는 이 글이 문제처럼 느껴지거나 불쾌하기보다는 궁금했다. 해당 칼럼은 '지방 총각들'이 결혼하지 못하는 여러 원인을 짚는다. '지방 총각들'이 사는 지역은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도 거의 없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잘 키울 수 있는 시설도 없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여성 자체가 없다.


칼럼은 제조업에 일자리를 몰아준 탓에 여성 일자리의 소외가 발생했고 애초에 청년들의 이탈 자체도 심하다 보니 '지방 총각들'이 이성을 만날 확률이 낮다고 주장한다. 칼럼이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 자체에는 덧붙이고 싶은 말이 없다(그렇다고 아주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드는 궁금증은 한 가지인데 그렇다면 글쓴이는 높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가 늘어나고 육아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지역에 여성이 늘어나면 '지방 총각들'이 결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한국의 이성애 중심의 정상 가족 제도가 예전만큼 강하지 않다.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이 제도가 더욱 힘을 못 쓴다. 이미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사람도 많고 아예 비혼으로 살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들 중 대다수는 여성이다.

결혼 정보 회사 '듀오'가 발표한 '2022 혼인 이혼 보고서'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과 남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7%가 비혼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의 긍정 응답률이 73%인데 남성은 36.4%였다고 한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성별에 따라 확연히 나누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혼하고 싶은 여성이 줄고 있다

이유는 물을 것도 없다. 결혼해서 그다지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한창 SNS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었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보고서 <팬데믹의 장기적 영향: 한국의 재정 및 출산율 전망>(2021년 6월 발간)이 기억나는가. 기획재정부의 의뢰로 미국의 싱크탱크가 쓴 이 보고서는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로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현실을 지목했다. 이유는 한국의 사회 구조상 결혼이 여성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5~34세 한국 여성의 대학 졸업 비율은 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며 경제적 자립도 역시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런데 결혼한 여성이 수행하는 무급 가사 노동의 비율은 무려 85%에 달한다고 한다. 상황을 종합하면 혼자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사람이 결혼하면 사실상 소위 '독박 가사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 밖에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넘친다. 여성들이 임신·출산을 이유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차별에 시달리다 일을 그만두고 경력이 단절되는 상황은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이렇게 일터에서 밀려난 여성이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으로 다시 흘러 들어 가는 건 이미 오랜 일이다.
 

16일 오전 부산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2년 해양수산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부산지방고용노동청 부스에서 취업지원제도에 대해 안내를 받고 있다. 2022.9.16 ⓒ 연합뉴스

 
잠시 생각을 더듬어보라. 굳이 통계 자료가 없어도 이런 식의 인생 경로를 밟아온 주변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떠오르지 않는가(나는 많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는 한국 남성들이 더 많이 가사 노동을 분담하지 않으면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한다.

가사 노동뿐만 아니라 '독박 육아'와 이로 인한 경력 단절 등 결혼으로 초래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가 여성에게 벌어지지 않는 사회가 오기 전까지 남자들에게 결혼이란 앞으로도 어려운 일로 남지 않을까. 그가 어디에 사는 '총각'이건 간에 말이다(참고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출생률을 높이고 싶다면 차라리 고학력 외국 남성과 한국 여성의 결혼을 장려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혼이 유일한 답인가

'지방 총각들'의 결혼을 방해하는 이런저런 걸림돌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이들의 꿈이 이루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이게 무슨 곰팡이 배양하는 일도 아니고 적절한 환경과 조건을 갖춘다고 사람들이 반드시 결혼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두 사람의 욕구가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될 수도 있다.

가장 현실적으로 예상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냥 결혼제도 자체의 시효가 다하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이미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 제도는 규범으로서의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결혼해서 특별히 잃는 것도 없지만 대단히 얻는 것도 없다면 사람들은 굳이 결혼을 해야할지 질문하고 그런 후에는 안 해버릴지도 모른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혹은 결혼까지 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남자가 없을 수도 있다. 솔직히 지금도 괜찮은 남자 만나기는 너무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며 개인적으로 결혼에 대한 압박을 느낀 일이 거의 없다. 내 성적 지향을 모르는 사람이 채근할 때도 있지만 이성애 결혼은 애초에 내게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살다보니 때로는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잘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제도의 밖에서 오래 살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가령 '지방 총각들' 칼럼에는 '지방 총각들'이 "가장의 책임을 짐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정상성을 획득하면서 안정감을 얻는 게 어떤 것인지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건 여전히 책임을 지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내가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압박감은 견뎌낼 수 있을지 질문하는 게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이를 감수하면서 정상성을 얻을 가치가 있는지도.

또 해당 칼럼에는 '지방 총각들'이 여전히 "나를 맞이할 아내와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면서" 가정을 꿈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친밀함과 애정은 꼭 결혼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결혼이 아니더라도 가족을 이루는 방식은 다양하다. 마음이 맞는 친구나 동료와 함께 살 수도 있고 이미 그렇게 사는 공동체도 있다.

그리고 꼭 집에서만 환대를 경험할 필요도 없다. 나는 함께 춤을 추거나 일을 하거나 혹은 같은 지향을 가지고 오랜 시간 운동에 함께했던 친구나 동료들과 모였을 때 친밀함과 깊은 애정을 느낀다. 전제 조건은 단 한 가지다. 내가 같은 감정을 그들에게 전할 수 있으면 된다. 호혜적인 감정은 상호적이지 일방적인 게 아니다.

결혼을 꿈꾸는 '지방 총각들'의 욕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해법을 질문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지방 총각들이 결혼에 성공하는 것'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 절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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