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KBO가 야심하게 도입한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최초로 선수가 ABS 판정 때문에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가 퇴장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4월 26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KT와 SSG 랜더스의 경기, 선발출전한 KT 3루수 황재균은 4회초 2사 1루 두 번째 타석에서 SSG 투수 오원석에게 루킹 삼진을 당했다. 1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오원석의 4구째 공이 몸쪽 낮은 직구로 날아왔고, 황재균은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이를 지켜봤다.
 
그런데 SSG 포수 이지영이 공을 제대로 포구하지 못해 뒤로 빠뜨렸다. KT의 1루주자 문상철은 투구와 동시에 스타트를 걸어 2루에 안착했다. 하지만 이계성 주심은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의 판정에 따라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면서 황재균은 삼진이 됐다.
 
이에 납득하지 못한 황재균은 격분하여 헬멧을 벗어 그대로 바닥에 집어던졌다. 주심은 곧바로 퇴장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황재균은 올 시즌 ABS 도입 이후 볼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 당한 최초의 선수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황재균의 삼진과 퇴장으로 KT의 4회 공격은 종료됐다. KT는 황재균을 대신해 신본기를 3루수로 투입했다. 경기는 5-2 SSG의 승리로 끝났다.
 
황재균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함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존의 경기에서 포수가 놓친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ABS는 이를 스트라이크로 판독했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판정하는 시대가 왔기에 가능했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장에서 ABS 판정에 대한 의구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하루전에는 류현진(한화)이 ABS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작심발언을 하기도 했다. 류현진은 2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경기에서 ABS 볼 판정에 여러 차례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불만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해당 경기에서 류현진은 5이닝 7실점(5자책)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당시 류현진은 3회 조용호를 상대로 던진 낮은 공이 볼로 선언되는 장면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ABS는 정말 근소한 차이로 볼이 되었다고 판독했다. 5회에는 공교롭게도 같은 타자인 조용호를 상대로 이번엔 삼진아웃을 잡아냈다. 하지만 류현진은 삼진을 잡았음에도 마운드를 내려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류현진이 보기에는 볼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ABS존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 것.
 
류현진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볼이 될 것은 스트라이크가 되고, 스트라이크가 될 것은 볼이 된다. 경기장마다 다를 수는 있는데 그게 경기마다 바뀌는 것 문제"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이에 KBO측은 의혹을 해명하기 위하여 당시 경기에서 류현진의 투구 데이터까지 공개했다. KBO 측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류현진이 3회 조용호에게 던진 3구는 ABS 중간 존 하단을 0.15㎝로 통과했지만, ABS 존 하단을 0.78㎝ 차이로 통과하지 못해 볼 판정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BO는 KT와 3연전에서 한화 투수들이 좌타자에게 던진 바깥쪽 투구 판정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의제기에도 데이터를 근거로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시즌 초반부터 ABS에 대한 문제제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인물이다. 김 감독은 "어떤 기준으로 존이 매겨지는지 모르겠다. 존이 경기장마다 다르다는게 말이 되나. 감독이나 선수들의 착각이라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다르다고 느끼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ABS의 신뢰도에 대하여 의구심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만, KBO는 시종일관 시스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을 고수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한 오심을 없애고자 ABS를 도입했건만, 오히려 또다른 논란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 아이러니하다.
 
야구팬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기계가 사람보다 정확하다는 건 상식" "심판 오심을 못믿겠다고 해서 ABS를 도입한건데, 기계도 못믿는다면 대체 어쩌자는 거냐"고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면 "생각보다 정확하지가 않다" "ABS라고 만병통치약은 아니다""사람은 실수하면 욕먹고 인정이라도 하지만, 기계는 무조건 정답이라고 우기기만 한다"고 꼬집으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원칙적으로 봤을 때, 이미 제도는 도입되었고 현장의 선수와 감독들이 더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하는 것은 맞다. ABS가 도입되기 전에 선수들은 심판의 볼 판정에 불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심판에게 항의하는 것을 기싸움과 심리전의 일환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비하여 ABS의 장점은 모두에게 공평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과, 사람의 주관이나 감이 아닌 데이터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ABS에 유독 강한 불만을 드러낸 류현진과 황재균은 모두 베테랑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은 오랜 경험으로 인하여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기준이 확실하기에 ABS로 인하여 달라진 존에 대한 적응이 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올시즌 성적이 썩 좋지못한 상황에서 ABS에 대한 불평은 자칫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생소한 한국무대에서 활약하면서 ABS도 처음이지만 아무 불만없이 적응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도 있다.
 
KBO 역시 ABS 제도를 충분한 적응기간도 없이 너무 급하게 추진한 것은 아닌가 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ABS는 정확도 문제 외에도 최근 심판의 판정조작과 은폐 시도, 덕아웃 송수신의 타이밍 차이 등 운영상의 허점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다.
 
물론 기존에 없던 시스템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도 없이 완벽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KBO는 제도 도입을 서두르면서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하지는 못했다. 어느 정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거나 적응을 위한 테스트기간을 두었다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ABS 시스템이 중단없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아직 좀 더 많은 시간과 개선의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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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 투구자동판독 류현진 황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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