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 테노레> 포스터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일 테노레>가 드디어 첫 선을 보인다. 12월 19일 시작된 <일 테노레>는 내년 2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 뮤지컬 <일 테노레> 포스터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일 테노레>가 드디어 첫 선을 보인다. 12월 19일 시작된 <일 테노레>는 내년 2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 오디컴퍼니


일본 식민주의가 조선을 덮쳤을 무렵, 의사와 성악가라는 이중생활을 한 청년이 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나온 젊은 의사는 음악을 향한 꿈을 품고 있었고, 끝내 오페라를 하기 위해 밀라노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경성 부민관에서 독창회를 열었으며, 해방 후에는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선보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테너, 한국 오페라의 개척자로 불리는 이인선(1907~1960)의 이야기다.

<일 테노레>는 성악가 이인선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허구적 이야기로 각색한 창작 뮤지컬이다. 작품의 제목인 '일 테노레(Il Tenore)'의 의미는 단순하다. '테너', 이탈리아어로 '테너'라는 뜻이다. 작품은 말 그대로 테너, 그 테너의 탄생 이야기를 담았다.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테너를 꿈꾸게 된 젊은 청년과 친구들의 이야기.

연말 초연으로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이게 된 <일 테노레>는 최고의 스타 홍광호, 박은태와 라이징스타 서경수를 조선 최초의 일 테노레 '윤이선'으로 내세웠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연극을 만드는 연출가 '서진연'에는 김지현, 박지연, 홍지희가 분하고, 그 연극의 무대를 만드는 건축학도 '이수한'에는 전재홍, 신성민이 분한다. 12월 19일 시작된 <일 테노레>는 2024년 2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예술의 이유

나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또 예술이 다른 분야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는다. 바꿔 말해 예술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게 있고, 어떤 면에서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예술보다 더 효과적인 건 없다고 믿는다. 예술은 아무 것도 생산해내지 않는 비효율적인 것이라는 비판에도 살아남았고, 무용한 것이라는 공격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예술의 역할 덕분이지 않았을까.

<일 테노레> 속 '문학회' 멤버들도 이런 예술의 역할을 믿었던 듯하다. 항일 의지를 불태우던 경성의 학생들은 여러 제약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고민하다 '문학회'를 조직한다. 식민지 상황을 부각하는 연극을 만들어 사람들의 애국심과 독립 의지를 고취하고자 했다. 학생이지만 동시에 연출가인 '서진연'과 무대 디자이너인 '이수한'이 문학회의 주축이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검열은 점점 강화되었고, 급기야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다룬 '조선 연극'이 금지당한다. 준비하던 연극을 어느 날 갑자기 올리지 못하게 된 문학회 멤버들에게 '윤이선'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오페라, 즉 서양 창극을 하자는 것. 배경은 식민지 조선이 아닌 다른 나라. 그러나 침략과 강탈 속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선보임으로써 조선인들에게 작금의 상황을 고민하게 하자고. 그렇게 문학회는 <I Sognatori>, 우리말로 <꿈꾸는 자들>이라는 이름의 오페라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오페라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었다. 하루아침에 큰 변화가 찾아오지 않더라도, 그저 자신들의 공연이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 데 자그마한 발판이 되길 소망했다. 각종 제약이 잇따랐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다며 자신들의 역할을 고민했다.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조정하며 우회했지만, 그 누구보다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예술의 역할을, 자신들이 오페라를 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용기 있는 자들이었다.

예술가의 이유

과연 문학회의 애당초 뜻대로 이후 상황이 흘러갔을까? 그렇지 않다. 오페라 공연 당일,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며 악명을 떨친 '까마귀'가 극장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수한'과 '서진연'은 까마귀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까마귀 암살은 공연 도중 블랙아웃(Blackout; 무대 암전)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했고, 따라서 오페라 <꿈꾸는 자들>은 완전한 무대를 선보일 수 없었다.

만약 원래 뜻대로, 특히 '윤이선'의 꿈대로 오페라를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고, 세상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뮤지컬 <일 테노레>는 '예술을 통한 혁명 이야기' 정도에서 끝났을 것이다. 오페라는 혁명에 가려지고, 무대 위 일 테노레 '윤이선'은 변화에 소모된 수단 쯤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결국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덕분에 '일 테노레'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일 테노레'를 남겨둠으로써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일 테노레>가 '예술가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고 봤다. 더 정확히는 '예술가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 더 구체적으로는 '윤이선이 오페라 테너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

소설가 김영하는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이유가 아니라, 되어야만 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한 사람을 예술가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윤이선'에게는 그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문학회에 막 발을 들이고 첫 임무를 수행하던 '윤이선'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홀려버린다. '윤이선'은 소리를 따라 걸음을 재촉하고 성악 수업이 진행되던 이화여전의 한 강의실에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윤이선'은 오페라라는 것을 처음 접하고, 이때부터 뮤지컬 <일 테노레>는 본격적으로 달려간다.

오페라를 처음 접한 바로 그 순간 '윤이선'은 테너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깨달은 듯하다. 이후에도 '윤이선'은 세상 사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거창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저 '운명'이었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그러나 여느 예술가들이 그렇듯 '윤이선'도 '테너가 될 수 없는 이유'를 계속 맞닥뜨리게 된다.

'윤이선'의 아버지는 오페라를 하겠다는 아들의 꿈에 반대한다. 문학회는 검열을 피해 연극을 오페라로 바꾸었지만, 이후 학생이 하는 공연을 모두 금지하는 조치가 추가로 내려지며 위기를 맞는다. 연습이 삐그덕대고, 예기치 않은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하는 듯했으나, 까마귀 암살 작전으로 오페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선보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윤이선'은 노래한다. 그에게는 일 테노레(테너)가 되어야만 하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윤이선'은 노래로 세상을 바꾸지 못했지만, 노래하는 사람이 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렇다. <일 테노레>는 예술로 암울한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가 아니라, 암울한 세상에서도 예술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 아니 예술을 해야만 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목적을 위해 예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그저 예술가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다.

"허락해 주오 허락해 주오
내 마지막 이 노래" (넘버 'Aria 1: 꿈의 무게')
덧붙이는 글 <일 테노레>의 제작진으로 참여한 변희석 음악감독이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바 있음을 밝힙니다. 당시 변희석 감독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을 모두 인정했고, 이러한 전력으로 한동안 뮤지컬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일 테노레>로 뮤지컬계에 복귀하자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공연 뮤지컬 일테노레 오디컴퍼니 예술의전당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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