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 3월 12일과 29일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두 기사에 대해 반론 성격의 글을 보내왔다. 이에 과거 두 기사의 링크와 함께 조 교수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의 "성폭력 보도에 담긴, 한 언론의 치명적 무지함" 제하의 기사는 시의적절 했으며 "미투 관련 보도를 다루는 언론의 문제점 다섯 가지"의 내용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미투운동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다만 언론에 대해 비판적인 보고서임에도 필자의 발언은 여전히 왜곡되어 있어 이 부분을 바로잡고자 한다.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조기숙 교수가 "미국에서 미투 운동은 위력과 위계에 의한 반복적이고 상습적인 성폭행을 폭로하는 데에서 시작됐다"며 이른바 '사이비 미투론'을 들고 나왔을 때, <국민일보>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조선일보> <스포츠서울> <서울신문> <머니S > <동아일보> <뉴시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 <뉴스웨이> 등 수 많은 매체가 조 교수의 발언을 제목으로 부각한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전한 언론사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이러한 보도 태도는 해당 주장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뿐입니다.(2018.3.29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 보고서 중에서)

<국민일보>와 <오마이뉴스>를 제외한 대부분 언론이 필자가 전혀 하지도 않은 발언으로 허위 제목을 뽑았음에도 필자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는 건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된다. 언론 모니터링 보고서가 어떻게 언론의 왜곡 보도도 걸러내지 못하고 기정사실화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성폭력과 오보, 왜곡보도의 유사성

언론의 오보, 왜곡 보도는 성폭력 범죄와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성폭력이 인간의 성 자기결정권을 침해함으로써 육체를 유린하는 것이라면 언론의 왜곡, 오보는 인간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정신을 유린하는 것이다. 그러한 왜곡 보도를 기정사실화하는 언론의 보도나 보고서는 언론의 왜곡보도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투 운동은 여성 운동이 아니다. 약자가 강자로부터 받던 부당한 대우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 평등한 대접을 요구하는 인권 운동이자 갑질 근절운동이며 그 정신적 뿌리는 유럽의 신좌파 운동에 있다. 신좌파 운동은 기본적으로 어떤 권위도 거부한다. 이 말은 미투 운동에 어떤 정석이 있는 게 아니라 시행착오 가운데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면서 진화되어 가야함을 의미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미투 운동에서 이런 건 바람직하고 이런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권리와 자유가 있으며 이러한 권리와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있지 않다. 오로지 합리적 토론에 의해 잘못된 관행은 걸러지고 다수의 지지를 받는 관행이 운동으로 자리 잡아감으로써 우리 사회의 의식과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람직한 미투 운동에 대한 다양한 논의 허용돼야

미투에 대해 무슨 말만 하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며 입을 막는 건 빨갱이 마녀사냥하는 파시즘과 다르지 않다. 누구의 발언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거나 오만한 발언이라는 평가야 말로 미투 정신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자신의 지적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타인을 무시하고, 이견을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하지 않고 오만하다고 폄훼하는 행위야말로 권위주의적 행태이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뿌리도 권위주의에 있다는 점에서 미투운동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될 태도는 그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권위주의적 태도이다.

대다수 언론이 필자의 발언을 매번 왜곡하는 이유는 필자가 언론을 비판해온 데 대한 사적 보복의 성격이 가장 크다고 본다. 언론 권력을 이용해 미운 놈에게 보복하겠다는 권위주의적, 특권적 태도가 왜곡 보도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성폭력과 그 뿌리조차 유사하다.

필자의 SNS 발언 관련 '조기숙 "미투, 사이비 미투에 의해 오염되기 시작"' 제하의 <오마이뉴스> 보도도 정확했던 건 아니다. 이주연 기자는 다른 언론 같은 악의적 왜곡은 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필자의 주장을 심각하게 곡해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1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 조기숙 페이스북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필자가 미투 운동에서 문제를 삼은 건 피해자가 아니라 언론의 보도 행태였으며, 구체적으로 "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회적인 성추행(으로 느꼈던 행위), 그것도 당시 권력이 없는 사람의 미수 행위, 여러 여성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이 한 번 경험한 성추행이라 여겨지는 행위에 대한 폭로"였다. 여기에 덧붙여 논리와 근거가 부족한 익명 폭로는 미투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그 범위를 매우 좁게 한정했다.

필자 주장의 핵심은 사인 간에, 피해자는 성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가해자는 합의하지 않는 행위 중에서도, 논리와 근거가 부족한 한 번 경험한 익명의 폭로일 경우 언론이 복수의 피해자가 나올 때까지 보도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조 교수에 따르면, 권력관계에 놓인 남녀에게서 발생한 상습적 성폭행을 피해자가 실명을 걸고 폭로해야만 '#Me too'의 조건에 부합하는 일인 셈이다"라는 이 기자의 보도는 논리학의 기초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논리학의 기초에 충실한 기사 써야

'A(사인 간)+B(범죄소명에 대한 합의부재한 성추행이라 여겨지는 행위)+C(논리와 근거 부족)+D(익명의 폭로)+E(한 여성이 한 번 경험한 경우)'처럼 제한적인 경우에는 추가 폭로가 있기 전까지는 언론이 보도에 신중을 기하라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이 말은 역으로 위력관계이거나 가해자가 피해자의 피해사실에 동의를 하는 경우이거나, 논리나 근거가 일관성이 있거나, 실명의 폭로일 경우, 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경험하거나 2명 이상이 유사한 경험을 한 경우에는 미투에 부합한다는 게 올바른 논리적 추론이다.

결론 부분에 "위계와 위력에 의한 상습적 성범행만이 폭로에 의해 국민적 공감을 얻는 미투로 자리 잡을 수 있다"라는 대목 때문에 기자가 필자의 의도를 곡해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SNS는 긴 글을 잘 읽지 않는 특성이 있고 데스크에 의한 편집 기능이 없기 때문에, 또 앞에서 미투에 부합하지 않는 조건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그 외의 상황을 간략히 정리하는 과정에서 진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책임은 필자에게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신체부위를 노출했거나 빌미를 줬다고 해서 성폭력이 정당화되지 않듯이 필자의 핵심 주장을 읽었다면 논리적으로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려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특히 필자가 성추행이라고 여겨지는 행위라고 했던 이유는 성추행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회피하기 위해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객관적으로는 성추행이라기보다는 성희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추행은 폭력과 협박이 개입되는 성폭력이고, 성희롱은 강제성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 양자의 죄질은 매우 다름에도 우리 언론은 몰라서인지 의도적인지 무조건 싸잡아 성추행이라고 보도하는데 이는 가해자의 잘못을 악의적으로 부풀리는 나쁜 보도 행태라고 생각된다.

언론, 성추행과 성희롱 보도 구분해야

성희롱은 기본적으로 직장 내에서 징계의 대상이지만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반복성이 유죄 증명에 중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성폭행과 성추행은 당연히 범죄이므로 필자는 이 부분은 미투 의심사례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필자가 결론 부분에 의미한 성범행이란 성희롱을 지칭한다.

요즘은 피해자의 의식이 높아져 고발이 빈번해 현장범의 경우 성희롱도 처벌된다. 하지만 미투 운동은 십수년 전의 기억에 기초하고 있다. 남녀 사이엔 인식의 차이도 있고, 인간의 기억엔 항상 오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매우 희귀한 성희롱의 경우엔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보도에 신중하라는 의미이다.

짧은 SNS글로 인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전화로 질문하면 되는데, 왜 필자의 발언을 다른 사람에게 질문해 모욕적인 언사를 이끌어내고 이를 다시 보도해 갈등을 키우는 게 언론이 역할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은 직장 내의 권력 관계로 인한 해고나 불이익 때문에 성폭력에 항의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신변을 보호받는 장치로 실명 폭로를 하게 되었고 이를 권장한다. 또한 피해자가 SNS에서 주로 폭로하고 이 중에서 언론이 선별해서 보도했다.

하지만 우리 상황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고려할 때 익명폭로가 더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익명이 보장되는 만큼 언론은 사법재판에서 검사처럼 사실을 확인하고 범죄를 소명하기 위해 일관성 있고 책임 있게 보도하고 가해자와 그 가족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기본적으로 미투 운동은 여론재판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미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지만 우리 언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몇몇 언론만이라도 중심을 잡고 모처럼 시작된 의식문화혁명이 순항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s://www.facebook.com/kisuk.cho 에도 게시될 예정이다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