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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평창으로

"아빠, 우린 올림픽 보러 평창 안 가?"
"평창? 안 가. 올림픽은 TV로 보는 게 제일 잘 보여. 가면 춥고 잘 보이지도 않아."

아이들은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부터 난리였다. 어린이집에서는 개막식 1주일 전부터 아이들에게 올림픽을 가르쳤으며, 아이들은 TV에서 평창올림픽과 관련된 영상만 나오면 환호성을 질렀다.

저리도 좋을까. 올림픽이 뭔지도 잘 모르는 녀석들이 왜 이리 호들갑일까 생각을 하다가 문뜩 1988년 서울올림픽 때를 떠올렸다. 당시 아버지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기회라며 어느 축구 예선전에 나를 데리고 갔었는데, 나도 그래야지 않을까? 잠실주경기장 앞에서의 희미한 기억.

그렇게 갈등을 하고 있는데 지난 7일 오후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운 좋게도 개막식 전날인 8일 저녁 평창올림픽 스키점프 예선 표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막식 전 주중 야간이어서 초대표가 꽤 풀린 듯 했다.

평소 같았으며 다음날 출근 때문에 갈등을 했겠지만, 때마침 친구들과의 주말 속초 여행 때문에 9일 금요일 월차를 냈었던 터라 우리 가족은 계획에도 없는 평창 행을 결정했다. 가자! 평창으로.

거대한 주차장 모든 관객은 여기다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 거대한 주차장 모든 관객은 여기다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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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6시 칼퇴근을 한 뒤 평창으로 차를 몰았다. 차는 막히지 않았다. 이 정도 교통상황이면 경기 시작인 오후 9시 30분까지는 충분했다. 운전 중에 모든 차량은 경기장 주변에 들어설 수 없고 무조건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걱정은 없었다.

평창IC를 지나 대관령 IC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깜깜하던 주위가 환해졌다. 올림픽 경기장의 조명이었다. 아이들은 뒤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였다. 드디어 우리가 평창올림픽을 구경하는 구나!

8시 30분쯤 도착한 평창. 아직 1시간의 여유가 있기에 아내와 나는 오늘 하루 묵기로 한 용평리조트에 가서 먼저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리조트에서 스키점프 경기장 까지는 차로 10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고 가서 보면 딱 알맞을 시간이었다.

악몽의 시작

올림픽은 올림픽이었다. 리조트에는 꽤 많은 외국인들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체크인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듯했다. 그러나마나 아이들은 그 분위기가 신기한 듯 옆에 가서 쭈뼛쭈뼛 안 되는 발음으로 '헬로우', '웨얼아유프롬' 등을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다.

체크인을 끝내고 나니 8시 50분. 프론트에서 셔틀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 식당을 찾았다. 스키점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6살, 8살, 10살 어린이가 저녁을 굶고 경기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고프다며 당장 집에 가자고 하겠지. 경기장 주위에 가면 뭐가 있을까도 싶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늦은 시간이었던 만큼 겨우겨우 식당 한 곳을 찾아 10분 만에 밥을 먹고 셔틀버스 정류장에 갔다. 프론트에서는 TS(Transport Spectators, 관중용 셔틀버스) 8번이 5분마다 한 대씩 온다고 했으나 웬걸 10분이 넘어도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TS 7번만이 그 시간에 5대 이상 왔다가 빈 버스로 출발했다.

이 버스 공덕역 안 가요 전국방방곡곡에서 평창으로 차량이 올라왔다
▲ 이 버스 공덕역 안 가요 전국방방곡곡에서 평창으로 차량이 올라왔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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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20분. 버스는 오지 않았고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조급한 마음에 TS 7번 기사에게 영문을 묻자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의 말로는 이번 올림픽 때문에 제주도를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약 1000대의 차량이 올라왔다는데, 기본적인 노선이나 인근 지역 등의 교육이 전혀 안 되어 있는 듯했다.

기사는 아이들을 보더니 춥다면서 우선 타라고 했다. 어차피 승객이 없으니 노선에서 이탈하여 스키점프 경기장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그러나 고마움도 잠시. 버스 기사는 내비게이션을 켜놓고도 스키점프 경기장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더 먼 곳으로 차를 몰았다. 보다 못 한 내가 내비게이션을 켜서 안내했고 그제야 버스는 유턴을 했다. 자동차로 5분 거리를 우리는 버스로 20분 이상 헤매야만 했다.

셔틀버스 주차장 복잡하다. 어렵다.
▲ 셔틀버스 주차장 복잡하다. 어렵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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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니 9시 45분. 정류장과 경기장은 멀었다. 게다가 경사진 언덕이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저기까지 어떻게 갈지 한숨을 쉬고 있는데, 옆에서 어느 자원봉사자가 교통약자를 위한 차량이 준비되어 있다며 다시 길을 건너라고 했다. 다행.

그렇게 길을 건너 차량을 기다리는데 또 다른 자원봉사자가 다가오더니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차량이 모자라서 장애인만 대상이니 아이들은 다시 걸어서 올라가라는 것이었다.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이게 뭐하자는 건지. 다시 길을 건너 검색대로 갔다. 사람은 없었지만 철망으로 펜스를 만들어 놓아 우리는 미로 찾듯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10시 5분. 검색대를 통과하니 내부 순환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자원봉사자 말로는 걸어가나 버스를 기다려서 타고 가나 비슷하다며 도착하면 10시 20분, 10분 정도 경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슬슬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20분. 경기장에 들어가니 25분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스키점프대에서는 연달아 선수들이 창공을 날고 있었다. 어차피 텅텅 빈 좌석 칸에서 경기를 보려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오더니 우리 표는 입석이라며 터널을 지나 건너편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굳이 꼭 그래야 하는가 싶었지만 어쨌든 시키는 대로 입석 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0시 30분.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입석 칸. 펜스를 붙잡고 창공을 나는 선수를 보려고 하는데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오늘 경기 끝.

대성통곡하는 아이들 아~~~평창올림픽
▲ 대성통곡하는 아이들 아~~~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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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는 막내를 빼고 첫째와 둘째가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1시간 전부터 참아왔던 눈물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경기였는데, 이렇게 힘들게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제대로 경기를 못 봤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느 지나가던 관중은 아이들에게 울지 말라며, 한국 선수 중 그래도 한 명은 예선 통과를 했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올림픽 기념품을 찾아서

얼마나 울었을까.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아내와 나는 대신 올림픽 기념품을 사주겠다며 약속을 했다. 오늘은 늦어서 힘들지만 일요일까지 사주겠노라고 했다.

스키점프 경기장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모든 관중이 셔틀버스로 움직여야 했기에 그 추운 밤, 수많은 인파들이 조금씩 전진해갔다. 30분 이상 걸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자원봉사자들은 우리가 몇 번 버스를 타야할지조차 잘 몰랐고, 버스기사들은 자신이 막차 같다고 이야기했다. 정말이지 교육이 하나도 안 되어 있는 듯했다.

언제 집에 가나 모두 셔틀버스를 타야 하니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 언제 집에 가나 모두 셔틀버스를 타야 하니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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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우리는 오전에 월정사 구경을 한 뒤, 오후 개막식이 열리는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올림픽 기념품을 살 생각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관령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셔틀버스를 탔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수호랑 인형을 살 것인지, 반다비 인형을 살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들뜬 것도 잠시. 아이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기념품 매장은 스타디움 안에만 있는데 오늘 개막식에는 거기까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서 많은 귀빈들이 오니 통제하는 듯했다.

어쩌겠는가. 포기하고 오늘의 숙소인 속초로 향할 수밖에. 아이들은 풀이 죽었고, 나는 다음을 기약했다. 괜찮아. 기념품은 강릉 가서 사자. 내일 10일은 차량 2부제로 우리 차가 못 가지만 11일 서울 올라가면서 사면 될 거야.

개막식에는 못 들어가고 아빠가 기념품을 강릉에서 사준다고 했으니까
▲ 개막식에는 못 들어가고 아빠가 기념품을 강릉에서 사준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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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틀 뒤 11일. 우리는 오후 집에 가는 길에 강릉 올림픽파크로 향했다. 그곳에 기념품 매장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북강릉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셔틀버스를 타고 올림픽파크로 갔다. 이번에는 살 수 있겠지. 아이들은 다시 들떠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강릉 올림픽파크. 그러나 이번에도 우리는 기념품 매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후 4시도 안 됐는데 하루에 4200매만 판매하는 입장표가 매진되었다며 공원이나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허였다.

하지만 당시 공원에는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많았다. 수용가능한 인원을 통제하면 될 텐데 자원봉사자들은 앵무새마냥 오늘 입장권은 무조건 4200매까지라며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행정편의적인 발상일까.

파크 입장권 매진 왜 4,200명 밖에 입장할 수 있는 거냐
▲ 파크 입장권 매진 왜 4,200명 밖에 입장할 수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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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파크에 들어가지 못하는 미국 관객 그들도 황당해할 듯
▲ 올림픽 파크에 들어가지 못하는 미국 관객 그들도 황당해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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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 실망한 아이들. 진정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우리는 다시 '폭풍검색'을 시작했고 KTX 강릉역에 올림픽 기념품 매장이 있다는 또 다른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설마 매장이 폐쇄되거나 물건이 다 팔린 것은 아니겠지?

다행히 강릉역에는 올림픽 기념품 매장이 있었고, 그곳은 기념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결제는 VISA카드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눈에 거슬렸지만 내가 그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수호랑이 앞에서 결국 기념품을 샀다
▲ 수호랑이 앞에서 결국 기념품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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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선물 하나씩을 들고 차 안에서 2시간 내내 쫑알거렸다. 이번 여행은 너무 즐거웠다며, 어린이집에 가면 올림픽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다며 뿌듯해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언제 올림픽을 보러 갔겠냐며 우리의 수고를 위로했다. 그래, 20년이 지나도 너희들은 이 날을 기억하겠지.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운행 중인 셔틀버스에 대한 홍보 및 안내와 자원봉사자들의 교육이 우선되기를 바란다. 홍보와 교육은 기본이다.

올림픽 기념품 그토록 찾아 헤매야 했던
▲ 올림픽 기념품 그토록 찾아 헤매야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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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