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5 07:15최종 업데이트 23.09.25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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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5개월, 사회 각 부문에서는 급격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탄압으로, 또는 퇴행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각계 우려가 깊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기획 - 윤석열 정부 전&후>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부문별 평가와 더불어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나라의 외교·안보 정책이 잘 작동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판단 기준은 그 나라가 이전보다 더 안전해졌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한반도 정세는 이전보다 더욱 안전해졌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으나 저의 답은 분명합니다. 한반도는 윤석열 정부 들어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대화 배제하고 '강대강' 치닫는 한반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한미일 준동맹 체제를 확립한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에서 돌아온 뒤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번 정상회의를 놓고 '안보가 위험하다'라는 주장이 있다"라며 "3국의 협력을 통해 우리가 강해지면 외부의 공격 리스크가 줄어드는데, 어떻게 안보가 위험해진다는 것이냐"라고 되물었습니다. 3국이 협력함으로써 안보 위험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경제도 우리 기업과 국민이 진출할 수 있는 더 큰 시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런지 살펴보겠습니다. 국제정치학 용어로 '안보 딜레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나라가 안보를 튼튼하게 하려고 군사력을 증강하면 불안해진 상대국도 덩달아 군사력을 늘리기 마련입니다. 양쪽이 작용-반작용의 군비 경쟁을 벌이게 됨으로써, 서로 안보가 이전보다 더욱 취약해지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바로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 용어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한미 또는 한미일 군사훈련을 할 때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뿐 아닙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9월 13일 전격적으로 열린 북러 정상회담입니다. 이 회담에서 무엇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합의가 이뤄졌는지는 아직 안갯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가 일으킨 반작용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와 한미일 군사 압박에 처한 북한이 서로의 장점을 맞교환하며,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정찰위성,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첨단 우주·군사 기술을 이전받는다면 한반도의 위기는 훨씬 가팔라질 것입니다.

2018년 12월 14일 남북 체육회담 개최 이후 4년 9개월 이상 남북 당국 간 대화가 단절돼 있습니다. 1971년 남북대화가 시작한 이래 역대 최장기간 남북대화 단절입니다. 1970년대 이래 남북관계가 가장 험악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은 윤 정권이 내세우는 '힘에 의한 평화'가 얼마나 공허한 말장난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9월 19일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 인사말에서, "지금 남북 관계가 매우 위태롭다"라면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함께 진정성 있는 대화 노력으로 위기가 충돌로 치닫는 것을 막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점이 바로 문 정권과 윤 정권 대북 정책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3국 정상회담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AP=연합뉴스

 
'한미일 대 북중러' 부활과 동북아 신냉전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는 북한의 반발과 긴장만 불러오는 게 아닙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면서 동북아시아 판도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준 군사동맹과 비슷하게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합동 군사훈련 실시도 수면 위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한미일 준 군사동맹에 맞선 북중러 군사협력이 가능성에서 현실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정을 보면서도 한반도가 이전보다 더욱 안전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 및 정상회담 비교 ⓒ 오태규

  
윤석열 정권이 문재인 정권에 비해, 한미일 군사협력에 얼마나 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의 횟수와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 정권은 임기 5년 동안 단 두 차례 한미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그것도 모두 임기 1년 차 때였고, 주제도 북핵 대응에 한정됐습니다.
 

2021년 5월 21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지난 2022년 6월 28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서 열린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 기념촬영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 나토 정상회의 사무국 제공

  
하지만 윤 정권은 임기를 시작한 뒤 1년 반 만에 3차례나 3국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한미일 세 정상은 2022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3자 회담을 한 뒤,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협력의 내용도 북핵을 넘어 러시아와 중국 비판으로 강도를 높였습니다. 급기야 올해 8월에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만나 3국의 준 군사동맹을 방불케 하는 내용의 '캠프데이비드 정신'이란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미일 세 나라가 북한을 넘어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군사와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결 자세를 취하면서 한반도 주변에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을 축으로 한 신냉전의 바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전격적인 북러 정상회담과 다음 달로 예정된 중러 정상회담은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윤 정권은 한미일 군사협력이 북중러를 결속시키는 역풍을 불러일으키자, 부랴부랴 발등의 불 끄기에 나섰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갈라치기가 그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살상무기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러시아와 북한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면서 "대한민국과 동맹, 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앞서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주한 러시아 대사를 불러 북러 군사협력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반면, 윤 정권은 중국에 대해서는 연내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고리로 중국 끌어당기기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윤 정권의 중러 갈리치기 외교가 과연 효과를 나타낼 것인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하지만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강화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동북아 신냉전의 큰 기류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봉인' 대일정책 전환의 결과

윤 정권이 북한과 대결 자세를 분명하게 하고, '가치 외교'를 앞세워 중국과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데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국, 일본과 강력한 연대의 형성입니다. 윤 정권은 한미일이 단단하게 뭉쳐야 중국을 움직일 수 있고, 또 중국을 통해 북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여 있는 역사 갈등이 한미일 3국 연대의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역사를 먼저 청산하지 않으면 좋은 미래를 구축할 수 없다는 자세를 취한 문재인 정권과 달리, 윤 정권은 서둘러 역사 갈등 해소에 나섰습니다.

역사 갈등을 해소하고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이루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윤 정권의 갈등 해소 방법은 너무 굴욕적이었습니다. 국가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채 일본이 원하는 것을 모두 받아들인 굴종적인 해결 방안이었습니다. 일본의 전범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라고 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윤 정권은 이를 무시하고 '제3자 변제'로 대신하는 것으로 매듭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런 굴욕적인 대일 외교의 결과로 얻은 것이, 한일관계 개선입니다. 한국이 완전한 저자세로 나오자 일본의 태도가 싹 바뀌었습니다. 22년 9월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있는 장소에 찾아가 겨우 만난 것을 '간이 간담'이라고 냉소하던 일본이, 한국이 저자세로 나오자 윤 대통령을 칙사 대접하고 나섰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6번 한일 정상회담을 했는데, 윤 대통령은 1년 반도 안 돼 7번이나 일본 총리와 회담했습니다.
 

지난 9월 1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인도 뉴델리의 정상회의장인 바라트 만다팜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것은 '역사'와 '안보'를 교환하며 한일관계를 정상화한 1965년 한일협정 체제로 한일관계가 되돌아간 것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일본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반도를 자신의 지배 아래 뒀던 1905년 체제의 부활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대결이라는 지정학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역사를 포기하고 이룬 한일관계 개선의 종착역이 '캠프데이비드 원칙'이라는 한미일 준 동맹체제, 더 나아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와 한반도 신냉전으로 귀결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구도가 그때와 달리 총탄이 난무하는 전화로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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