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9 10:19최종 업데이트 23.07.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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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한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바 있습니다.[편집자말]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입장을 밝히는 도중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이 기각된 후, 사람들은 나의 반응이나 소감을 궁금해했다.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로 글을 쓰며 세상에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진 내가, 과연 어떤 마음일지 궁금했던 것일까. 어떻게 이 사회가 그럴 수 있느냐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갖는다거나, 억울함에 복받쳐 슬픔이 차오른다거나 하는 등의 반응을 기대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나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그냥,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예상한 결과가 나온 것뿐이었다.  


참사가 벌어진 후, 나의 세상에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들과 나는 다른 세상에 살았던가. 일제히 언론에서도 분개하는 기사들이 쏟아졌고, 시민사회도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조금 낯설었고, 한편으로 원망 섞인 냉소도 쏟아냈던 것 같다. 

'다 잊은 거 아니었던가' 

참사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세상은 싸늘하게 온기를 잃어갔다. 계속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모든 순간과 과정에서 철저히 외면하는 것에 점차 익숙해져 갔으니 탄핵 기각에 놀라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가장 슬픈 것은 이런 현실과 상황을 받아들이고 체념해 버린 듯한 내 모습이었다. 연민이 아니다. 비상식에 익숙해져 버리는 무기력한 한 인간으로 자리 잡는 것이 어이없고, 우스워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한들 세상이 달라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지만 돌아오는 것은 철옹성같이 무너져 내리지 않는 이 세상의 비상식이었다. 

그럼에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곳곳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가 놓여있다. ⓒ 연합뉴스


참사가 벌어진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서, 우리 사회에서는 마음 아픈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다. 최근에는 두 명의 꽃다운 젊은이를 잃는 일이 있었다. 한명은 자신이 일하던 초등학교에서, 한명은 자신의 군복무 중에. '한국사회의 고질병'인가 싶어 가슴을 툭툭 쳤다. 

이태원 참사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사건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안전불감증 사회가 만든 안전에 대한 무지함, 그런 무지함을 가진 자들이 지도층이라는 사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진심으로 알지 못하는 극한 이기주의와 엘리트주의, 무엇이든 덮고 보면 좋을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방패라고 생각하는 위선, 신중함과 중립이라고 둘러대는 오만과 편견과 아집, 아이들을 위한다는 핑계, 사회 전체를 위한다는 핑계 삼아 애도를 막고, 슬픔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누구 하나 뚜렷하게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함. 여기에 아이를 위하고 사회를 위한 마음은 없다. 그저 보기 불편해서 덮어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만 있을뿐. 

세상은 참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낄 뿐인 현시점에서, 생존자로서 감정이 다 말라버렸다고, 분노할 여력도 없었노라고. 사실은 기대도 안 했다고 말한다면 너무 자조적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죽어야만 보이는 비상식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여전히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터.   

그럼에도 내가 왜 또 글을 쓰며 나서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는 현재에 대한 기대는 없어도, 미래에 대한 믿음만은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 세상이 비상식이기에 지금은 비상식적인 결과와 무책임이 난무하지만 먼 훗날에도 같은 모습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아이들이 제일 무섭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책임 안 져도 되던데요?' 하고 과거의 비상식을 그대로 학습해 미래에 비상식의 어른이 될까 봐, 그것이 무섭다. 학습은 힘이 세다. 특히 악한 학습은 강하고, 전염력마저 높다. 

당장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비상식이라는 것쯤은 지속적으로 말해줄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먼 미래에 당도해서는 조금 다른 세상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힐스버러 압사 사고, 그리고 이태원 참사
 

힐스버러 추모공간이 리버풀FC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에 마련돼있다. ⓒ Ken Biggs

 
영국의 힐스버러 압사 사고는 1989년 발생했지만, 34년 만인 2023년에서야 처음으로 영국 정부과 경찰의 잘못이 인정되었다. 시대가 흔들릴만큼 큰 사고는 받아들여지고 인정하게 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싶으면서 나는 이태원참사의 갈 길을 멀리 내다본다. 

힐스버러 참사도 34년간 그곳에 갔던 희생자에게 원인을 돌렸고, 현장 초기대응이 엉망이었던 것이 밝혀졌다. 제대로 된 사고 파악을 위해 독립 조사기구를 세워야 한다는 유족들의 오랜 싸움이 있었고, 첫 진상조사 결과는 참사가 일어난 지 20년도 더 지난 2012년에 나왔다. 그리고 2023년으로 건너와서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이것을 보며 장기전이라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만 이런 것이 아니라 참사라는 것이 원래 사회와 이리도 오래 싸우는 것이고, 비상식과 오래 싸워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체력을 아껴서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탄핵 기각 따위는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은 것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저 나는 미래에 희망을 걸고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아무도 사회적 참사를 책임지지 않는 비상식이, 아이들에게 당연한 상식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얘들아,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은 잘못한 것이란다. 사회가 잘못한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한 것이란다.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기 마련이니, 우리도 아마 영국처럼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국가가, 사회가 국민에게 사죄하는 날이 올 것이란다. 그때의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무렵이니, 멋진 어른으로 자라다오.

이 글을 읽고도 여전히 공감하지 못해 외면하고 덮어놓고 헐뜯기만 할 사람들을 가엾이 여겨주련.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작게나마 기억해 주면 참 좋겠다. 책임지지 않는 당신들은 잘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 글을, 오래도록 기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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