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2 15:34최종 업데이트 23.06.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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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지난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실무 만찬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유럽이사회 의장,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석했다. ⓒ 일본 외무성

   
"우리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나 보호주의로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5월 20일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공동성명의 한 문장이다. 외교적 수사에 불과할 수 있지만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중국 정책에 중요한 변화가 감지된다.


최소한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통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자는 의도로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이후 약 3500억 달러(449조 원) 상당의 대중 관세를 부과하며 공세적으로 나아가던 미국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기조다. 왜, 무엇이 바뀐 것일까?

우선 꼽을 수 있는 원인은 중국의 희토류 자원 무기화 가능성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19년에 트럼프 정부의 대중 무역제재 조치들에 맞대응해 희토류 수출 및 기술 통제를 천명했다. 이후 실제로 관련 기업을 합병하고 생산 능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사실상 언제, 어떻게 희토류 수출 금지 카드를 쓸 것인가의 문제만 남아 있던 상황이다.

중국은 17종 희귀 광물 원소로 구성된 희토류의 채굴, 정제 및 가공, 합금 및 자기전환 등 전 생산공정에 걸쳐 압도적으로 독점적인 위치에 있다. 2021년 세계 희토류 채굴의 63%, 가공의 85%, 희토류 자석 생산량의 92%를 중국이 차지했다.

희토류에 대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특히 전기차 모터 등에 쓰는 더 무거운 중량 희토류 합금과 자석에 대한 수요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이 독점력을 더 키우고 기술 유출을 통제하려는 분야는 바로 이 중량 희토류 분야다. 현재로선 중국을 대체할 만한 나라도 시장도 없는 형편이다.

특히 중요한 점은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이나 채굴량이 아니다. 정제 및 가공, 합금 생산 공정에서 차지하고 있는 독점적 지위다. 2010년 중국의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 이후 일본, 호주 등이 전방위적으로 중국의 희토류 생산 독점체제를 깨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채굴 이후의 가공 공정이 중국에 의해 거의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 지질조사국 추정으로는 미국이 2020년 세계 희토류의 약 15%를 채굴했다. 하지만 이 채굴된 희토류는 모두 중국으로 보내 가공해야만 했다.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미국에는 희토류 가공 및 합금생산 시설이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16년에서 2019년 사이에 미국에서 사용한 희토류 화합물과 금속의 8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이런 중국 의존성을 탈피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 희토류 정제 및 가공, 합금 생산 시설들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희토류 자석 합금 생산 등은 202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그때도 중국 희토류 기업들과의 비용 경쟁, 그리고 폭증하는 희토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EU의 중국 의존도는 더 높다. 풍력발전, 수소 저장 또는 전기차의 모터 등에 사용하는 희토류 자석의 약 98%, 배터리에 쓰는 리튬의 97%, EU 지정 34가지 '중요 원자재' 중 하나인 마그네슘의 93%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2030년까지 이 중 40%를 EU 내에서 생산해 내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줄이거나 통제하면 미국과 EU의 전기차 및 대용량 산업용 배터리 생산이 어려워진다. 또한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려는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친환경 희토류 가공기술 같은 획기적 기술 개발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G7 정상회담은 상당 기간 동안 중국과 필수적으로 경제협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멕시코·베트남, 대미 수출 큰 폭 증가
 

2022년 11월 1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인도네시아 발리 누사두아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다음으로 미국의 대중 무역제재 조치들이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미중 간 무역은 2018~2019년 관세 부과 이전보다 오히려 더 늘었다. 작년 미중 무역은 전년 대비 2.5% 성장하여 6903억 달러(884조 원)로 사상 최대 규모다. 대중 무역적자도 별로 줄지 않았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이다. 작년엔 적자액이 전년 대비 8.3% 증가하여 3822억 달러(489조 원)에 달했다.

중국 시장에선 여전히 8600개가 넘는 미국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무역 갈등 속에 중국의 대미 투자는 격감했지만 미국의 대중 직접투자액은 오히려 꾸준히 증가해 작년엔 1200억 달러(154조 원)에 육박했다.

그렇다고 중국의 전 세계 수출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증가했다. 2017년엔 약 2.3조 달러(2944조 원)였으나 작년엔 3.6조 달러(4609조 원)를 넘어섰다. 특히 인도, 아세안과 EU 등으로 수출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아세안과 EU는 이미 중국에 미국보다 더 큰 수출시장이다.

대중 보복 관세는 미국 경제에 더 악재였다. 지난 3월에 발표된 미국 국제 무역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관세 비용의 대부분은 미국 수입업체가 부담했다. 컴퓨터 장비, 반도체, 가구 가격은 최대 25% 상승했고 이에 따라 미국 상품 가격이 3~4%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오히려 무역적자만 커졌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직접 수입은 주춤했지만 다른 나라들로부터 수입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멕시코와 베트남의 대미 수출 증가가 두드러진다. 2017년 이후 멕시코의 대미 수출액은 급격히 증가해 작년에는 4727억 달러(605조 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도 크게 늘어 작년엔 1100억 달러(141조 원)로 한국의 대미 수출액과 거의 같아졌다. 물론 대미 무역흑자도 크게 늘어 작년엔 멕시코와 베트남이 각각 1900억 달러(243조 원), 940억 달러(120조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 국가의 대미 수출이 늘어난 만큼 대중 수입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 시야를 좀 더 넓혀 보면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미 수출과 대중 수입이 동시에 늘었고 대미 무역흑자도 증가했다.

즉,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이 탈중국 기치 아래 대중 직접 수입을 줄이자 제3국을 통한 '중국+1' 혹은 '중국+2' 형태의  우회적인 대미 수출량이 늘었다는 의미다. 멕시코, 인도 및 아세안 국가들에겐 미중 무역 갈등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대미 수출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 증가 추세는 한국보다 더 빠르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의 대중 무역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와 아세안은 미중 갈등의 와중에 오히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오류라며 급격하게 탈중국, 미국 일변도의 한 방향으로 올인한다고 한국만의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과 시장 경쟁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영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판을 짜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G7 정상회담에서 왜 주요국 정상들이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방점을 찍었는지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강명구 / 뉴욕시립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 강명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강명구 교수는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경제 및 미국과 아시아 국제관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 재무성 및 프린스턴의 고등과학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방문학자를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제안보와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 문제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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