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15 04:36최종 업데이트 23.05.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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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포럼 사의재>와 함께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전 영역에서 윤석열 정부를 집중진단하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총 열 세 편의 글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이 글은 그 아홉 번째로 노동입니다. [편집자말]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2022년 7월 120개 국정과제 확정)에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약속했다. 주요 과제로 노동시간 선택권 확대 및 직무 성과 중심의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 확산을 꼽았다. 그 외에 공정한 채용, 공정한 노사관계 구현, 참여·협력적 노사관계 구축, 노사 법치주의 확립 등도 주요 과제에 포함됐다.

지난 1년 동안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 실현이라는 약속은 제대로 지켜졌을까? 그렇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청년과 미래세대를 위한 공정한 노동시장 정책으로 포장되었지만, 그 실상은 기업 편향적 정책이었고 거기서의 공정은 단지 무한한 시장적 자유경쟁을 향할 따름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주 69시간제 도입'이다. 겉으로는 '시간 주권의 보장'이란 목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 정상화를 위해 추진한 '주 최대 52시간제'를 무력화하고, 예외인 '장시간 노동'을 일상화하기 위한 퇴행적 정책이었다.

전 정부 지우기 위해 활용된 '청년과 공정'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 69시간제'에 대한 노동 현장과 청년의 반응 역시 싸늘했다. 정부가 발표한 '주 69시간제' 속에는 청년도, 공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소원 수리를 위한 친기업적 정책이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지난 대선에서 청년들은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 공정이라는 가치를 가장 일선에 두고 정책을 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 정부는 청년들, 특히 MZ세대들의 지지를 의심하지 않았고, 언론도 교묘히 MZ세대들의 입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노동개혁에 시동을 걸자마자, MZ세대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정부는 곤혹스런 상황에 빠졌다. 결국 주 69시간제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정부가 정책 추진과정에서 이렇게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정부는 주 69시간에 악의적인 프레임이 씌여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본질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정책의 철학 없이 지난 문재인 정부의 성과 지우기에 급급했다는 점에 있다. 그러다 보니 갈팡질팡하며,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청년'과 '공정'이라는 키워드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성과를 왜곡하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유용한 도구였다. 하지만 그동안 '문재인 정부 지우기'를 위해 활용된 '청년'과 '공정'의 이용 가치도 한계에 달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정무적으로 활용되는 노조 혐오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 내 하청 노동자의 농성 모습. ⓒ 정영현

 
출범 당시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보다, 법과 원칙이라는 구호 아래 대증적 요법에 주력했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파업에 대한 불법파업 공권력 투입 시사,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강행 등이 대표적 예이다.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파업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법치주의는 확립돼야 한다"라면서 "산업 현장의 불법 상황은 종식돼야 한다"라고 천명했다. 2022년 12월 화물연대 파업 때는 "화물 파업,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했고,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북한의 공갈·협박 전략과 민주노총의 행태가 똑같다는 이야기"라고 부연 설명한 바 있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은 '반노조 정서에 기댄 정치적 활용'이라 진단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2월 화물연대 2차 파업 대응 과정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지지율 상승을 경험한 바 있다.

이후 '지지율 반등을 위한 노조 때리기'는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전 국민마저 아는 공식이 되었다. 노조 때리기가 거듭될수록 노조는 부패세력으로 낙인찍혔고, 고용세습 단절, 회계 투명성 강화, 건설노조 폭력행위 엄단 등을 통한 노사 법치주의 확립은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제1과제로 부상했다.

노조 혐오에 기반한 대증 요법의 무분별한 추진은 실제 노동개혁이 필요한 이슈에 대한 정부의 책무를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윤 정부 출범 당시 과제로 삼은 '공정한 노사관계'와 '참여․협력적 노사관계'의 구축은 구두선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극화 심화의 원인마저도 노노간 이중구조, 노노간 착취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한다는 점이다(2022년 12월 21일 국민경제자문회의).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맞이한 첫 노동절에, "진정한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우리 헌법 정신에 위배 되는 기득권의 고용세습을 확실히 뿌리 뽑을 것"이라 경고했다. 윤 대통령은 노동 약자를 언급하면서도 그와 대비해 노동조합을 기득권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인식 탓에 노동문제에 대해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구호뿐인 노동정책만 남발하고 있다.

진짜 노동개혁을 위한 시작, 사회적 대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주 최대 52시간제 도입, 전 국민 고용보험 및 국민취업지원제도 도입에 따른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 ILO 핵심 협약 비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성과다. 문 정부 5년 동안 취업자 수와 고용률, 일자리의 질, 노동시간, 노동소득분배율 및 임금 불평등 등 주요 고용지표가 역대 정부와 비교해 개선되었다.

물론 이 같은 성과는 문재인 정부의 성과로만 평가할 수 없고, 우리 사회가 지지하고 이끌어 준 국민적 성과다. 이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가 노동 의제를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증폭시키는 방향으로만 소비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핵심 노동문제는 여전히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양극화, 불평등 문제의 개선이기 때문이다.

노동정책이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그만큼 이해충돌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책을 마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대화'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크고 작은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노동정책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 왔다. 윤석열 정부도 사회적 대화와 노동 참여를 보장해 소모적인 진영대결과 갈등을 자제하고 노동정책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2022년 12월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부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화물연대 파업 관련해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 추가 업무개시명령 발동’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노동정책이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공정하지 못한 제도부터 진단하고 개선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임금체계 개편은 임금격차 축소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장에 걸맞은 임금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반 노동자뿐만 아니라 건설근로자의 적정임금제와 화물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 등도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 문재인 정부에서 노조조직률과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었지만, 앞으로 더 진전되어야 한다.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노동법 일부만 적용된다. 위기에는 서비스업 등 취약한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직장을 잃게 되는 상황을 코로나19를 겪으며 지켜보았다. 노동개혁은 이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한국형 유연안정화(Flexicurity), 하후상박적 임금정책, 취약노동자를 위한 사각지대 해소 등 개혁의 접근원칙과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또한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사회적 대화 틀 내에서 마련함으로써 정부의 일방적인 독주가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 존중과 사회적 대화, 지속적 추진 필요 

지금 한국 사회는 예측 불가능의 시대에 놓여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었다고 하지만, 새로운 세계적 위기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는 여전히 예상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필수노동자들과 위기에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실시간 소득 파악 체계의 구축, 전 국민 고용보험 등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정책들은 앞으로 더 정교하게 설계·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감소하는 인구와 생산 가능 인구, 지역의 고용문제에 대해서도 정책 가능성을 더욱 넓게 열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다하지 못한 정책을 분석하고 확장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처럼 우리가 진지하게 논의하고 마련해야 할 노동정책들은 쌓여 있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중장기적 로드맵을 수립해 일관되게 노동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노동존중 실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민들이 노동정책을 체감하는 정도는 정반대다. 노동개혁은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는 따뜻한 노동정책이 되어야 한다. 일부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방식의 정책은 더 이상 지지받기 어렵다.

노동 존중의 원칙과 사회적 대화의 전통을 통해 한국 사회가 축적한 성과를 승계해야 한다. 진짜 노동개혁을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전 정부의 지우기에 급급하며 노동정책을 정쟁의 수단으로만 소모할 것인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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