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2046'의 주연인 량차오웨이(梁朝衛, 양조위)가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오프토크에 참석,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자료사진).

지난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2046'의 주연인 량차오웨이(梁朝衛, 양조위)가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오프토크에 참석, 취재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양조위, "사랑은 김치다"…이영애 애찬론도 '눈길'> (노컷뉴스)
<양조위 "이영애는 신비감이 넘치는 배우">(스타뉴스)
<양조위, 이영애 '기다렸던 만남'>(헤럴드경제)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최대 화제는 배우 양조위와 이영애의 오픈토크였다. 양조위가 출연한 개막작 < 2046 >은 '왕가위 신드롬'의 여진이 남아있음을 확인시켜주듯 당시 국내 영화팬들의 기대를 잔뜩 모았다. 드라마 <대장금> 출연 직후였던 이영애는 개막식 사회자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틀째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정원에서 열린 '빅 이벤트' 현장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마도 당시 부산을 찾은 사진/영상 기자들은 총집합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카메라 기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생애 최초였으리라. 당시 어느 연예전문기자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해보다 두 배 이상의 기사가 나왔다"라고 말하며 양조위와 이영애의 오픈토크가 이를 견인했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물론 대화 자체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양조위 특유의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이 밴 언행이 인상에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다. 양조위의 파란색 트레이닝복 상의는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고, '대장금'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새침한 분위기의 이영애가 함께 찍은 '투 샷'은 이후로도 영화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학생 신분이었음에도 멀찍이서나마 양조위를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모 영화전문지와 모 대기업 통신사가 모집한 '모바일 기자단'으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BIFF가 아니라 PIFF였고, 남포동과 해운대가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 대기업 통신사가 무료로 제공한 숙소는 지어진지 얼마되지 않았던 '신상' 유스호스텔이었다. 영화계로 자본이 모이고 산업으로서의 활력이 넘치던 시기였다. 영화계는 '시네필' 문화와 함께 여전히 한국의 대중예술을 선도했고, 그 선두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18년 만에 부산 찾은 양조위, 그에 관한 추억
 
 
지금으로부터 무려 18년 전 얘기다. 그랬던 양조위가 올해 다시 부산을 찾아 레드카펫을 밟았다. 역시나 딱 18년 만이다. 5일 저녁,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정상화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 수상자로 양조위가 다시 개막식 무대에 섰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장이 아닌 영화의전당 무대였다. 감개무량이란 표현을 떠올린 것은 비단 양조위 본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배우 한예리의 헌사가 있어 특히 그랬다.

"영화는 제게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흠모하는 마음 또한 말입니다. 저는 스크린 속에서 너무나 무해한 얼굴에 고독하고 처연한 눈빛을 가진 한 배우를 오래도록 존경하고 흠모해 왔습니다. 그는 말하지 않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의 몸짓은 여백을 남겨두는 동시에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크기를 연기합니다. 많은 감독들이 그를 통해 영화라는 꿈을 이어왔습니다. 수많은 인생을 투과한 스크린 속 그는 언제나 온전하게 아름다운 강인한 배우였습니다. 저는 그의 연기 앞에서 늘 가장 순수한 관객이 되고 담고 싶은 면모들을 기쁘게 발견하는 동료가 됩니다."

<미나리>로 아카데미 레이스를 펼쳤던 30대 중반의 한국 배우가 양조위에게 바친 헌사는 온전한 '팬심'의 발로였으리라. 한예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가장 흠모하는 위대한 배우에게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끝인사로 그러한 팬심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곡가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명곡인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의 주제곡이 울려퍼졌다. 18년 전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전 세계 최초로 관객들을 만났던 바로 그 곡이었다. 그 명곡의 선율 위로 초기작인 <1997 대풍광 >부터 근작인 '마블'의 <샹치와 텐 린즈의 전설>과 신작인 홍콩영화 <웨어 더 윈드 블로우스>(풍재기시)까지 양조위의 영화 여정이 소개됐다.

'페르소나' 양조위를 세계적 배우로 발돋움 시킨 왕가위 감독 영화들 만이 아니었다. <영웅>의 장예모, <첩혈가두>, <첩혈속집>의 오우삼, <색,계>의 이안, <무간도> 시리즈의 유위강, <암화>의 두기봉(제작, 감독 유달지), <빅타임>의 성룡(제작, 감독 곡덕소), <씨클로>의 트란 안 홍, <비정성시>, <해상화>의 허오 샤오시엔까지 홍콩과 대만의 거장들은 양조위의 연기를 스크린에 투사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작품 세계에 한껏 깊이감을 부여했다.

<화양연화>에 이어 양조위와 왕가위 감독의 팬이라면 더없이 친숙할 <중경삼림> 주제곡 'Dream'의 선율이 영화의전당을 가득 채웠다. 양조위가 무대 위에 올랐다. 예의 그 수줍은 듯 진중한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상을 주신 부산국제영화제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저의 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올해도 성공적인 영화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양조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8년 만에 부산을 찾은 양조위에게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헌정했다. 마침 양조위는 <샹치와 텐 린즈의 전설>을 통해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특유의 '눈빛 연기'를 공인받은 이후이기도 했다.

그런 양조위가 직접 고른 '양조위의 화양연화'라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왕가위 감독의 리마스터링 버전 < 2046 >,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와 <동성서취>, <무간도>, <암화>까지 6편이 상영된다. 핸드프린팅도 하고, 이번엔 해운대가 아닌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오픈토크도 열린다. '월드 스타' 양조위야말로 정상화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글로벌한 얼굴이라 할 만하다.

그런 양조위와 달리 충무로의 영원한 '월드 스타'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해 영화인들과 영화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지난 5월 7일 별세한 고 강수연 배우의 빈자리가 그렇게 컸다.

"강수연 배우 자체가 한국영화였습니다"
 
 고 강수연 배우를 추모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영상.

고 강수연 배우를 추모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영상. ⓒ 부산국제영화제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고 강수연 추모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고 강수연 추모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유성호

 

"강수연 선배님은 한국 영화를 연기로서 세계에 알리셨고, 이후 영화제의 일을 하며 한국 영화가 세계에 알려지는 일이라고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섰습니다. 마치 그 자신이 한국 영화인것처럼... 강수연 선배님 자체가 한국 영화였습니다."

이날 개막식 초반 강수연 배우의 유작이 된 <정이>의 연상호 감독이 전한 메시지다. '강수연 자체가 한국영화'라는 글귀가 뭉클하게 다가온다. 개막선언을 위해 선 무대에서 강수연 배우를 추모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필두로 '강수연 자체가 한국영화'라는 인상적인 정의를 부인하는 영화인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유명해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강수연 배우의 말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후배 영화인들을 위한 격려였다고 전해진다. 실제 강수연 배우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공동 집행위원장직을 맞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연주한 브람스의 '인터메조' 선율과 함께 영화의 전당 스크린을 통해 흐르는 강수연 배우의 필모그래피 자체가 198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역사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언니 잘 가요. 한국 영화에 대한 언니 마음 잊지 않을게요. 언니 가오도, 언니 목소리도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여기서는 같은 작품 못 했지만 이 다음에 우리 만나면 같이 영화해요... 우리."

후배 여성 배우 문소리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갈수록 과작이었지만 불과 3살 때인 1969년에 MBC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해 충무로의 큰 별과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이후에도 강수연 배우가 견지한 '영화인'으로서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고 더욱 강고해졌다고 한다. 

한 주 전 폐막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정상진 집행위원장 또한 개막식에서 강수연 배우를 호명한 바 있다. 향후 몇 년간 그러한 추모의 움직임이 이어질 전망이다. 강수연 배우의 연기를, 목소리를, 가오를 잊지 못하는 동료들이, 후배들이, 관객들이 함께 할 것이다. 그 헌정의 첫 테이프를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끊은 셈이다. 올해 개막식은 그렇게 강수연과 양조위란 두 월드스타에게 바치는 추모와 헌사를 통해 영화제의 부활을 알렸다.

이렇게,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정상화된 부산국제영화제의 성대한 막이 올랐다. 18년 전 오픈토크에서 만났던 양조위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고, 또 다른 배우인 이영애도 영화제 후반 '엑터스 하우스'란 특별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흐르는 세월만큼 성숙함을 머금은 두 배우가 18년 만에 '투 샷'을 남기다면 그때 그 시절 영화팬들은 물론 2022년의 시네필들에게도 더 없이 좋을 '깜짝' 추억을 선사할 수 있으리라.

참고로, 18년 전 양조위와 이영애의 만남에 열광했던 모바일 기자단 중엔 현재 호평을 받은 넷플릭스 시리즈와 상업영화를 연출한 감독도 있고, 활발히 활동중인 시나리오 작가, '헤드' 기술 스태프 등도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27살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그 영화청년들도 영화계의 일원이 됐다. 양조위와 이영애도, 그때 그 영화팬들도, 부산국제영화제도 그렇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언제나 새로운 영화, 새로운 관객들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부산국제영화제 양조위 강수연 이영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