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직장인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 여러 개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중 하나가 바로 출장이다. 출장의 목적은 다양했다. 작게는 단순한 업무 협의부터 크게는 해외까지 나가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  

크게 부담 없는 출장이라면 좋은 날 밖에 나가 바람도 쐬고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나 올해 초 업무가 바뀌면서 출장 갈 일이 많아졌다. 회사의 중요한 사업을 관찰시켜야 하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출장은 짐을 챙겨 가는 일부터 시작된다.
▲ 출장 가는 길 출장은 짐을 챙겨 가는 일부터 시작된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출장은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1시간 남짓 되는 시간에 이 사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핵심이 담겨 있어야 했다. 길게 주저리주저리 적는 일은 쉽지만 줄이는 일은 늘 어렵다. 인고의 과정을 거치고 보고서가 최종 결재권자에게까지 통과되면 본격적인 출장 준비에 돌입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옷부터 챙긴다. 최대한 튀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무난한 복장은 역시 까만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였다. 만약 당일이 아닌 며칠 걸린다면 속옷이나 양복, 그리고 세면도구도 가방 안에 넣는다.

출장 전날은 다음날 좋은 몸 상태를 위해서 일찍 침대에 누워 보지만 생각이 많아서인지 늘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내일 있을 좋은 경우의 수와 나쁜 경우의 수를 반복하며 길고 긴 밤을 보냈다. 

간이 사무실로 변한 기차 안 
 
기차는 교통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출장의 유용한 교통 수단이다.
▲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가다 기차는 교통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출장의 유용한 교통 수단이다.
ⓒ 신재호

관련사진보기

 
출장 초반엔 회사 관용차를 많이 이용했는데, 비가 많이 오던 날 차가 막혀 예정 시간을 넘긴 적이 한 번 있었다. 30여 분 정도 늦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느껴지는 차가운 분위기에 결과도 역시 좋지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 기차를 타고 출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표도 끊어야 하고 시간 안에 맞추어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그보다도 훨씬 장점이 많았다. 우선 이동시간에 업무 자료를 검토할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와 전략에 관해 상의하고, 수정사항이 있으면 노트북을 이용하여 바로바로 고쳤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모의 연습도 했다. 그땐 열차 안이 잠시 간이 사무실로 변한 듯했다. 내가 주로 이용한 KTX 산천 열차는 좌석 아래에 콘센트가 있어 충전도 쉬웠다.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가면 가끔 그 안이 간이 사무실로 변한다
▲ 간이 사무실로 변한 기차 안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가면 가끔 그 안이 간이 사무실로 변한다
ⓒ 신재호

관련사진보기

 
원래 시험 보기 전에 잠깐 보는 정리 노트가 기억이 잘 나듯, 열차에서 상기했던 자료로 실제 사업 설명회 때 도움이 된 적이 많았다. 특히 통계 수치는 늘 헷갈리는데 기차 안에서 보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갔다. 피곤하면 잠시 눈을 붙이며 재충전의 시간도 가졌다.

사업 설명회 장소에 도착하면 드디어 출장의 정점을 찍는다. 몸 안의 세포 모두 긴장 상태로 돌입한다.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오롯이 자료와 말로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조금의 허점이라도 보이면 여지없이 치고 들어온다.

그럴 땐 당황해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곳곳에서 날아오는 화살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오롯이 논리란 방패 하나만으로 막아낸다. 설명회가 끝이 나면 나도 모르게 '휴'라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돌아오는 열차 안, 그제야 주변 풍경을 볼 여유가 생긴다. 출발할 땐 보이지 않는 평화로운 시골 풍경에 긴장이 풀리며 잠이 들곤 했다. 그래도 결과가 좋다면 마음이 편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내내 아쉬움이 맴돌았다. 동료와도 그때를 복기하며 안타까움을 나눴다.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출장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장 밖으로 만난 아늑한 풍경.
▲ 차장 밖의 풍경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장 밖으로 만난 아늑한 풍경.
ⓒ 신재호

관련사진보기


기차가 도착하면 어느새 하늘은 까맣게 변했다. 이상하게도 사업 설명이 잘 되면 잘 돼서 한 잔이 당기고, 잘 되지 못하면 잘 되지 못해서 한 잔이 당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길이 선술집으로 향했다. 잔에 술을 채우고 그날의 고단함을 털어냈다.

올 7월에 있었던 중요한 사업 설명회에서 우리 팀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 어느 때보다 준비를 많이 했지만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설명회를 망치고 말았다.

그땐 출장을 마치고 곧바로 집에 들어가기 힘들었다. 팀원들과 함께 기차역 근처에서 술을 마시며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를 반복하며 애써 처진 마음을 달랬다. 함께 고생한 동료가 있었기에 그리고 서로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기에 위로가 되었다. 그날은 밤이 깊도록 술자리가 이어졌다. 

부담되는 출장이 이어지는 업무를 맡고 나서는 내내 야근해야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사업 설명회에서 성과가 있다고 해서 월급이 올라가거나 승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매번 출장 갈 때마다 내 모든 것을 갈아 넣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비록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더라도 회사에 큰 이익이 되는 일이요, 그로 인해 종국에는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직장인으로서 주어진 일을 완수해야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다행히 올해(아직 3개월 정도 남긴 했지만) 맡은 사업 설명회에서의 성과가 평작 이상은 되었다. 

이번 달에도 출장을 계속 가야 한다. 다만, 올해가 마무리 되어 가는 시점에 관계 기관을 방문해서 업무 점검을 하는 일이라 전처럼 큰 부담은 없다. 그래도 지방을 계속 돌아야 하는 장기 출장이라 짐을 쌓고 풀기를 반복해야 할 듯하다.  

그래도 사업을 따내야 하는 전투에 나설 때보다는 한결 편안한 마음이다. 여유를 갖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도 감상하고 출장을 마치면 지역에 맛집도 찾아볼 예정이다. 출장은 어떤 종류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듯하다. 지금껏 열심히 달려왔기에 이번 출장은 내 마음대로 '힐링'이라 붙여보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출장, #중년, #업무, #직장, #성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