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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선심성 행사에 도민 혈세 수십억 원이 들어가는 것도 막을 것이다. 평창평화포럼과 평창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이다. 타당성 없는 보조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 꼭 필요한 곳에 도민 혈세를 쓰도록 하겠다."
- 김진태 강원도지사, 지난 8월 17일 <조선일보> 인터뷰 "강릉에 제2청사 설치, 동해안 관광산업 육성"

새로운 관광산업 유치를 천명해 놓곤 이제 궤도에 오르려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막겠다고 나섰다. 반면 최문순 전 지사가 시작한 강원도청 신 청사 건립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 도민 혈세 사용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공교롭게도 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일이기도 했던 지난 6월 23일 당선인 신분이던 김 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전임 최문순 도지사가 지원해왔던 각종 보조금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천명했다.

김 지사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해 당선인 시절부터 "취임 후 도지사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예산 집행 중단을 암시한 바 있다. 콕 짚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평창평화포럼과 문성근 이사장이 이끄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지목했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26일 오전 강원도청 브리핑룸에서 도청사 건립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26일 오전 강원도청 브리핑룸에서 도청사 건립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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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실제 영화제의 지자체 지원 예산이 축소됐다. 이제 4회를 맞은 국제영화제가 이를 버텨낼 리 만무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예산은 강원도, 평창군 지원과 외부 후원을 포함해 총 22억 규모로 알려졌다. 지자체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이를 두고 지난 8월 <강원도민일보>는 "영화제 측은 도의 긴축 재정과 예산 축소 가능성 등에 대비해 다양한 선택지와 대안을 마련해 왔으나 아예 사라지는 결과를 맞았다"고 전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김 지사가 수십억 규모의 상업영화를 보고 게시한 글이 여론의 뭇매를 맞아 눈길을 끈다.  

<정직한 후보2> 배급 담당자의 호소 

 
지난 26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배우 라미란씨의 입간판 옆에서 찍은 인증샷과 함께 트위터에 올린 글
 지난 26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배우 라미란씨의 입간판 옆에서 찍은 인증샷과 함께 트위터에 올린 글
ⓒ 김진태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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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직한 후보2' 시사회를 가졌습니다. 라미란씨가 국회의원에 떨어지고 강원도지사가 돼서 겪는 스토린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강원도청 올로케여서 실감났고요,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까지 딱 제 얘기더라고요ㅋ." 

지난 26일 김 지사가 배우 라미란의 입간판 옆에서 찍은 인증샷과 함께 본인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짧은 글에 흥미로운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치인인 김 지사가 거짓말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풍자 영화인 <정직한 후보2> 속 정치인 '진실의 주둥이' 주상숙(라미란)이 거짓말을 못한다는 설정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현실 정치인들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다. 잠시 영화를 소개하자면 선거전을 그린 1편에 이어 2편은 지자체 내 이권 다툼과 건설 마피아, 이에 기생하는 비리 공무원들을 속 시원하게 까발린다. 영화는 이에 편승하려던 주상숙도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상숙은 강원도지사에 당선하고 나서 인기를 누리며 오만해졌지만 결국 도민과 정의를 위해 싸우게 된다. 그런 주인공과 본인이 닮았다는 김 지사의 주장은 영화의 배경이 강원도와 강릉이라는 것 말고는 핀트가 어긋나도 많이 어긋나 보인다. 이 같은 김 지사의 게시글이 1편에 이어 흥행이 기대되는 상업 영화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자기 홍보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28일 개봉한 <정직한 후보2>의 배급 담당자가 딱 그랬다. 
 
"지사님... 저 이 영화 배급 담당자인데요. 일단 강원도청 올로케도 아니고요. 이 트윗 덕분에 평점 테러 당하고 있어서 죽을 맛입니다. 전임 도지사님 때 찍은 영화인데 왜 숟가락을 올리실까요. 살려주세요. 여러 사람들이 이 영화에 목숨 걸고 일했고 흥행 결과에 밥줄 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ㅠ.ㅠ"

28일 오후 읍소에 읍소를 거듭하는 트위터 글이 화제가 됐다. 실제 <정직한 후보2>의 배급사 직원이 게시한 이 글에 격한 호응이 이어졌다. 정작 촬영을 허락해 준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김 지사만 숟가락을 얹은 것이요, 자신과 크게 상관없는 영화에 숟가락을 얹으려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의 수많은 관계자에게 피해만 입힌 꼴이 됐다. 예산과 같은 영화 촬영의 현실적 이유로 '강원도청 올로케'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김 지사는 애먼 영화를 홍보 수단으로 삼으려던 자신의 행위가 도리어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평점 테러라는 어마어마한 악영향으로 되돌아올 것을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배급 담당자가 읍소에 읍소를 거듭했는지, 왜 관객들이 눈살을 찌푸리는지 이해는 하고 있을지 의문이다(29일 오전 9시 현재 이 글은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다). 

"죽을 맛"이라는 영화인들

국제영화제 폐지와 정치풍자 영화에 숟가락 얹기. 영화라는 문화예술에 대한 김 지사의 이중적인 인식과 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해당 영화는 부패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영화 아닌가. 김 지사의 게시글 자체가 블랙코미디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영화제에 밥줄이 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영화제 내 개별 정규직·비정규직들의 밥줄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네 번이나 진행된 국제영화제를 구체적인 조사없이 "일회성·선심성 행사"로 규정해 버렸다. 이후 "도민 혈세 수십억 원"이란 경제 프레임에 몰아넣고는 스스럼없이 자기 정치를 강행해 버렸다.

거기에 영화제가 지닌 문화예술로서의 가치 및 기대 창출 효과, 관광산업과의 연계 등 경제적 파급력에 대한 고려가 자리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랬던 김 지사가 애먼 상업영화를 자기 정치 홍보의 일환으로 활용해 보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직한 후보2>의 배급사 담당자 트위터 글 또한 단 몇 시간 만에 수천 회가 리트윗됐고, 김 지사를 질타하는 글이 쏟아지는 중이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22억짜리 국제영화제 구성원들의 밥줄을 단숨에 끊어버리고, 또 본인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애먼 영화에 숟가락을 올리는 행태에 대한 질타도 적지 않았다. 
 
지난 24일 '영화제 지원 축소 및 폐지에 따른 영화인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중인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지난 24일 "영화제 지원 축소 및 폐지에 따른 영화인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중인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 하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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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도 듣지 않고 민주적 절차마저 무시하는, 있을 수 없는 제왕적 만행을 저지른 것에 우리 영화인은 분노한다."
-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지난 24일 '영화제 지원 축소 및 폐지에 따른 영화인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에 나선 김 집행위원장은 김 지사의 "문화예술에 대한 천박한 인식"과 "예의도 존중도 없는 경악스런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문화예술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껌 같은 것이 아니다. 한때 극우 집회 발언 등을 통해 영화인들에 대한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던 김 지사가 자기 홍보를 위해 애먼 영화를 활용하는 동안 또 다른 편에선 그 영화를 제작한 영화인들이 "죽을 맛"을 체험 중이다. 강원도에서 2개 국제영화제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강원도지사는 얼마나 더 많은 영화인들에게 "죽을 맛"을 선사해야 만족하실 건가.  

태그:#김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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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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