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과 코스타리카 축구 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 손흥민이 프리킥으로 득점해 동점을 만들고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2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과 코스타리카 축구 대표팀 평가전 ⓒ 연합뉴스


2022 카타르월드컵을 약 두 달 앞두고 열린 9월 평가전은 축구대표팀의 전력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어야 하는 경기다. 본선 참가국들은 최종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A매치 기간에 최정예 전력을 꾸려서 점검에 나선다. 여기서 어떤 성과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사실상 분위기가 월드컵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벤투호'에는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국내에서 9월 A매치 2연전을 치르는 벤투호는 지난 23일 북중미의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2-2로 비겼고, 27일에는 아프리카의 카메룬과 경기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평가전의 상대와 환경, 경기의 내용과 성과, 실험을 통한 수확 등 모든 면에서 '카타르 월드컵을 대비한 모의고사'로서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번 9월 평가전은 이미 처음 기획 단계부터 잡음이 많았다. 대부분의 본선 출전국이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나서 평가전을 치르며 '원정 적응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 것과 달리, 한국은 이번에도 편안한 안방에서 평가전을 치렀다. 상대팀 섭외도 늦어져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9월 평가전 일정이 확정된 이후에야 뒤늦게 남은 상대인 코스타리카-카메룬을 그나마 섭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월드컵은 세계 최고의 무대인 만큼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2002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당시,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였음에도 당시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많은 해외 전지훈련을 단행했다. 힘들더라도 강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경험을 쌓는 것은 물론, 모든 것이 편안한 안방에서 누리는 홈어드밴티지를 벗어나 원정을 통하여 다양한 돌발상황들에 대처하는 적응력을 키우자는 게 목표였다. 히딩크호 이후의 대표팀들도 '최종엔트리 확정 직전의 A매치는 해외 평가전'이 자연스러운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굳이 명분도 실리도 적은 국내 평가전을 강행했다. 최근 축구협회는 코로나19 여파로 재정 부담이 커진 데다 지난 동아시안컵에서의 성적 부진 등으로 축구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있는 상황이었다. 굳이 비용도 많이 들고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원정 평가전 대신, 국내 평가전으로 대표팀에 불리한 여론을 반전시키고 A매치 티켓수익도 챙기려는 계산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평가전 상대팀들의 면면도 월드컵 플랜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 코스타리카와 카메룬은 모두 월드컵 본선진출국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만날 상대팀들을 대비한 파트너로는 적합하지 않았고 한국 원정에 최정예 전력을 가동하지도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첫 상대인 코스타리카는 정작 벤투호가 월드컵에서 만나지도 않는 북중미팀이었다. 코스타리카는 한국전에서 '선수비 후역습'에 가까운 스타일로 경기를 임했는데, 벤투호가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 이런 스타일의 상대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벤투호는 지난 6월 남미 4연전과 7월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상대의 '전방압박'에 빌드업이 봉쇄당하여 점유율 축구가 무력화되는 문제점을 드러냈기에, 본선에서 이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나마도 한국은 코스타리카의 역습에 쩔쩔매며 고질적인 수비불안을 다시 드러냈고, 하마터면 역전패를 당할뻔 하다가 간신히 홈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홈어드밴티지를 등에 업고 최정예 전력과 플랜A(빌드업과 점유율축구)까지 모두 정상 가동한 최적의 조건이었음에도 유일하게 건질 수 있었던 '승리'라는 성과마저 놓친 것이다.
 
그렇다면 대표팀 전력을 점검하기 위한 '실험'으로서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벤투 감독이 코스타리카전에서 시도한 유의미한 변화라면 오른쪽 풀백 자리에 윤종규의 선발출전, 수비형 미드필더에 손준호의 후반 교체 투입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둘다 현재 벤투호의 최대 취약 포지션으로 꼽히는 자리다. 하지만 미디어로부터 많은 기대와 푸쉬를 받았던 이강인의 투입은 이번에도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두 번째 상대인 카메룬은 조별리그 가나전을 대비한 가상의 상대라는 점에서 코스타리카전보다는 명분이 있지만, 역시 핵심 전력들을 가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김이 빠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카메룬이 한국전에 앞서 우즈베키스탄에 0-2로 무기력하게 패하면서 의구심은 더 커졌다.

한국으로서는 설사 반쪽짜리 전력의 카메룬을 상대로 이긴다고 해도 빌드업의 완성도나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 전술을 검증할 근거로서는 가치가 떨어진다. 심지어 이런 카메룬에게도 고전한다면 벤투호를 둘러싼 여론은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부담만 늘어났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이제 벤투호가 다양한 카드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와 옵션'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월드컵에서 상대팀보다 전력상 열세인 한국이 수비형 미드필더를 2명 기용하는 '투 볼란치 전술'을 써서 수비를 안정시키는 데 무게를 둬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벤투호는 기성용의 은퇴 이후 사실상 정우영이 3선의 유일한 붙박이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그런데 정우영은 수준급 팀들을 만났을 때 대인방어와 탈압박 능력에서 번번이 한계를 드러냈다. 그나마 유일하게 대안이 될수 있는 손준호는 소속팀 사정으로 대표팀에서 손발을 맞출 시간이 짧았다. 코스타리카전은 손준호를 활용한 투볼란치 전술을 제대로 점검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지만, 시간이 부족했고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오른쪽 풀백은 벤투호 출범 초기 붙박이였던 이용이 노쇠하면서 무주공산이 됐다. 월드컵이 코앞인데 윤종규-김태환-김문환까지 무려 3명의 풀백 중 누구 하나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좌측인 김진수-홍철 라인이 건재하지만 꾸준한 기회를 얻은 것에 비하여 수비가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역대 최장수 사령탑이라는 벤투 감독이 벌써 4년 넘게 대표팀을 이끌어오면서도 '경쟁없는 보수적인 운영'이 낳은 결과가 바로 이러한 빈약한 선수층이다.
 
미디어의 '뜨거운 감자'인 이강인의 활용을 둘러싼 논란도 바로 벤투의 전술적 유연성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월드컵을 두달 정도 남겨둔 시점이라면 대부분 참가국들이 이제 주전 경쟁은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추가멤버나 새로운 플랜B를 찾는 데 중점을 둔다. 이강인-손준호 등의 9월 A매치 발탁도 백업 경쟁의 의미가 강하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 감독은 당시만 해도 어린 유망주였던 차두리와 이천수를 대표팀에 깜짝발탁했다. 당시 황선홍-안정환 등의 발탁이 확실시되던 상황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동국이나 김도훈 같이 인지도 높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대표팀의 '3-4번째 공격수' 후보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에서는 기존의 주전들과는 다른 유형을 지닌 '히든카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나이는 어려도 유럽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차두리의 피지컬, 큰 무대에 주눅들지 않는 당돌함을 지닌 이천수의 배짱을 높이 샀다. 이들이 당시 주전감이거나 완성형 선수여서가 아니라, 기존 선수들과는 또다른 장점을 활용하여 팀의 전술적 다양성을 늘린 것이다.
 
이강인은 2022년의 벤투호에게 있어서 이런 다양성을 줄 수 있는 카드였다. 비록 피지컬-활동량-수비가담 등에서 약점도 뚜렷한 이강인이지만, 스페인 1부리그에서도 인정받은 창의적인 전진패스나 플레이메이킹은 A대표팀 내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선수를 찾기 드물다. 이강인의 스타성 때문에 '무조건 주전'으로 기용하라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짧은 시간내에 분위기를 전환시켜줄 수 있는 플랜B나 '조커'로서의 가치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이강인을 소집해놓고도 이번에도 아예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아무리 내부 훈련을 통하여 기량을 확인한다고 해도 실전과는 엄연히 상황이 다르다.

마지막 남은 카메룬전이 지나면 사실상 그 다음은 월드컵 최종엔트리다. 평가전에서 제대로 써먹어 보지도 않은 이강인을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만일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점유율 축구 위주의 플랜A가 월드컵에서 통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과연 어떠한 변화를 줄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팀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벤투 감독에게는 그동안 역대 그 어떤 감독보다도 팀을 만들수 있는 넉넉한 기회와 믿음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지금의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경쟁력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큰게 현실이다. 한국축구와 팬들이 오랫동안 믿고 인내해준 만큼, 이제는 벤투 감독이 희망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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