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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라는 표현 하에 경쟁과 입시몰입교육을 지양하고, 자치와 상생을 위한 교육을 하며, 학생들이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에서 여러 존재들과 좌충우돌하며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주객전도 : 주인과 손의 위치가 서로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선후·완급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

보통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사자성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행복감을 나타내는 표현이 되었다. 바로 그날 밤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전문가의 손을 빌려 홍보 동영상을 찍기까지

우리 학교는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절반보다 살짝 못 미치게 편성되어 있고, 나머지 비율은 대안교육과정의 과목들로 채워져 있다. 그중에 내가 맡은 과목은 '문화예술 중 문화탐방 분과', '문화예술 중 음악교양 분과', '뮤지컬'이다. 어떤 선생님은 수학교육을 전공하고서 제빵을 가르치기도 하고 국어교육을 전공하고서 밭에서 노작 활동을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 학교는 원래 일반계 학교였다가 4년 전 1학년 입학생부터 대안학교로 전환하였다. 교육감의 공약이었고 마을 사람들의 염원이었다. 보통 마을에서 대안학교를 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선정되면 거부하는 단체활동을 벌이곤 하는데, 소위 말하는 '안 좋은 아이들'이 유입될까 걱정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이곳은 거꾸로 마을 사람들이 혁신교육과 대안교육, 다시 말해 미래교육과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고 힘을 합쳐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를 마을 안에 두는 데에 성공했다. 전환 이래로 4년의 세월 동안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방향성은 명백하게 긍정을 향해 가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며 더불어 행복한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경쟁을 지양한 진정한 개별화 교육을 위하여 학급당 정원을 15명 이내로 한정했다. 그마저도 어떤 과목은 한 반을 두 개로 쪼개어 두 명의 교사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사 1인이 맡아야 하는 과목 수가 많아서 교원의 정원이 다른 학교에 비해 조금 웃돈다.
 
본교 북카페에서 학생자치회 아이들에게 교장선생님께서 특강을 하고 있다.
 본교 북카페에서 학생자치회 아이들에게 교장선생님께서 특강을 하고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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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있는 자유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학생생활교육 및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학생자치안전부장이 직접 진행하고 있다.
 "품격있는 자유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학생생활교육 및 학교폭력예방교육을 학생자치안전부장이 직접 진행하고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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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2년 차 교사로서 이 학교에 전보 왔다. 대단한 경력은 아니지만 단연코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학교의 교사들만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는 곳을 본 적이 없단 점이. 본교 대부분의 교사는 학생들의 꿈과 현재의 마음 상태,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세세히 안다.

문제풀이식 수업이 아닌, 활동 중심 수업으로 인해 학생들과 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기숙학교인 이곳에서 사춘기의 뾰족함으로 서로를 찔러가며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의 삶을 관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마음에 어려움이 생기면 너 나 할 것 없이 "쌤..."을 나지막이 부르며 멘토(Mentor) 역할을 해 주시는 선생님을 찾아간다.
 
학기에 두 번 있는 '정담회'에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학기에 두 번 있는 "정담회"에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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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해마다 1차 신입생 선발에서는 미달을 기록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본교 교사들은 그것 중에 가장 커다란 벽을 '대안교육에 대한 외부인들의 인식'으로 본다. 쉽게 말해 '대안학교는 부적응 학생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와의 화합이나 공동체에서의 적응이 힘든 아이들이 가는 대안학교도 있다. 서로의 목표가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대안학교는 '치유형 대안학교'로 표현하고 그와 다른 지점에 '미래형 대안학교'가 있다. 본교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시행하는 대안학교이다.

이와 무관하지 않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우리 학교가 가진 '학생 선발권'에 있다. 본교는 학교장 전형으로, 무조건 배치가 아니라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응시 인원이 모집 인원보다 적을 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받아야 하는 것이 교육청 하달 문서에 권고되어있다.

해마다 1차 면접에서 한두 명이라도 미달이 되면 정말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고서는 모든 학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우리가 목표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생활지도나 입시 공부의 측면에서 편리함과 안일함을 추구하고자 응시한 학생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편리와 안일을 위해 입학한 학생들은 오히려 우리 학교의 교육과정을 경험하며 적잖이 당황하곤 한다. 오히려 큰 학교에서 적당히 또래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학교는 대부분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감수성이 다양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폭력이나 생활지도 측면에서 사안을 매우 민감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동이 거칠거나 교육과정에 참여하기를 불응하는 학생들은 제풀에 지쳐 전학이나 자퇴를 결심하기도 한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에 모두가 마음을 모았다. 우리가 어떤 교육적 고민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수업하며, 어떻게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는지를 최대한 알리는 방법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의 교육 목표인 '나를 사랑하고 더불어 행복한 민주시민 교육'에 동의하고, 교육 철학인 '자율', '창의', '상생', '평화'에 맞추어 자신을 가꾸어 나가기를 원하는 학생이 최대한 많이 응시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학생의 질을 따져서 쭉정이를 걸러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본디 목적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여 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을 만들어보자는 것에 더욱 가깝다.

행복한 주객전도가 일어났던 어느 밤

우리 학교의 본 모습과 지향점을 알리기 위해 전문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홍보 동영상을 찍기로 했다. 마침 전국구로 연극 공연을 하고 다니는 1학년 학생이 있어서 출연시키기로 했다. 다만 해당 영상 및 카메라의 특성에 맞게 연기 톤을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일주일 동안 연기학원에서 맹연습하기로 했다.

영상의 거의 모든 부분은 우리 학교에서 이루지고 있는 수업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구성하였다. 내가 맡고 있는 뮤지컬 수업에서는 창작뮤지컬 악곡을 방송실에서 레코딩하는 장면을 넣었다.

바리스타, 댄스, 제과제빵, 컴퓨터, 헬스, 이·미용 분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세 시간 동안 연강으로 실습을 하는 수업인 '발상과 표현' 시간, 손수 작물을 키워보는 '노작' 시간, 토론과 활동 중심으로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한국사' 시간 등을 촬영했다. 

방과후 수업과 자율동아리인 '유도부'의 활동 영상도 찍었고, 우리 학교의 자랑인 사회적 협동조합 '고순도순'에서 아이들이 오순도순 사회적 경제를 체험하는 장면도 꾹꾹 눌러 담았다. 출연하는 아이들은 시종일관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했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20년 겨울 깜짝 이벤트로 실시했던 운동장 야영.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의 안위를 살피다 별이 아름다워 핸드폰으로 담은 것.
 2020년 겨울 깜짝 이벤트로 실시했던 운동장 야영.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의 안위를 살피다 별이 아름다워 핸드폰으로 담은 것.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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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홍보 영상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교무부장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야간에 운동장에서 캠핑을 하고있는 장면을 찍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자 부탁을 하였다. 우리 학교는 45명 정도가 백패킹을 떠날 수 있을 정도의 장비를 갖춰놓고 해마다 2학년 학생들이 일주일 정도의 기간에  '통합기행'을 떠난다.

이는 수학여행 같은 단기간의 행사 활동이 아니다. 1년짜리 수업이고 학년마다 각기 다른 과정으로 존재한다. 2학년 통합기행은 9월이 되면 실제 기행에 대한 사전 연습으로 운동장에서 텐트와 타프를 치고, 요리를 하고, 모닥불을 피워놓기도 한다. 분명히 수업인데,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재미있게 논다. 영상 기획팀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필름/Ektar100)2020학년도의 2학년 통합기행 모습.
 (필름/Ektar100)2020학년도의 2학년 통합기행 모습.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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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팀은 9시에 온다고 했다. 7시부터 9시까지 운영하는 유도 자율동아리 수업을 8시에 마치고, 유도부 아이들과 함께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 치기가 손에 익은 아이들은 텐트 세 개를 10분도 채 안 걸려서 뚝딱 쳤다. 나는 방염포 위에 화로대를 설치하고 모닥불을 피웠다.

아이들은 의자를 펴고 텐트의 자리를 마저 잡으면서 연달아 환호성과 감탄사를 쏟아냈다. 변화무쌍하면서도 엄청난 장관을, 하늘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은 노을이 지기 전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방과 후 학교 곳곳에서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내가 옆을 지나칠 때마다 하늘이 너무 예쁘지 않냐며 수다를 떨어댔던 날이었다.
 
저녁이 되기 전부터 심상치 않았던 하늘
 저녁이 되기 전부터 심상치 않았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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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아이들의 발걸음을 멈추었던 저녁 노을
 숱한 아이들의 발걸음을 멈추었던 저녁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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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하늘 밑에서 아이들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고 의자를 조립한 아이들은 앉아서 모닥불을 촬영하고 있다.
 보랏빛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하늘 밑에서 아이들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고 의자를 조립한 아이들은 앉아서 모닥불을 촬영하고 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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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에 살포시 떠 있던 하얀 낮달은 금세 노란 빛을 띠었고, 빨갛게 물들었다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던 구름은 오히려 밤이 되자 하얀 느낌을 되찾았다. 여름철 대삼각형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선명하게 빛났고 그보다 더 반짝이는 영혼들은 운동장에 둘러앉아 하늘과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내 옆에 앉아있던 학생 하나가 나를 불렀다. 눈망울에 촉촉한 연민과 넘치는 행복이 역설적으로 그득하게 담겨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는 비속어를 섞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OO 행복해요."

땡땡으로 처리한 그 단어는 '매우'를 뜻하는 속된 말이었다. 이 짧은 문장이, 그 안에 들어있는 조금은 상스럽고 귀여운 그 표현이, 성큼 싸늘해진 초가을 밤공기 속에서 후끈한 열기를 띠고 내 뺨을 달구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3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대단히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내가 선택한 반응은 아래 문장이었다. 꽤 큰 소리로 외쳤는지 모든 아이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선생님도 엄청, 매우, 진짜 행복하다!"

다시 생각해도 좋은 처사였다. 그 순간 "얘야. 그런 말을 하다니. 그것도 선생님에게 말이야"라는 잔소리를 했다면 시쳇말로 '갑분싸'가 되었거나 그 아이의 마음에 흘러 넘치고 있는 행복감을 조금은 덜어냈을 테다.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두었거나 웃어넘기기만 했다면 교육적으로는 부적절했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선택한 저 문장은, 잔소리 대신 그 학생의 놀랍도록 행복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되 비속어를 섞지 않은 언어로 살짝 바꾸어 반영해준 것이다. 다행히도 그 의도가 정확하게 잘 먹혔다. 학생은 미세하게 '차렷'하는 눈빛을 비추면서도 함지박만한 웃음을 그대로 유지했다.

촬영은 20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늘한 밤바람을 마음속으로 관통시키며 수다를 쏟아냈다. 본래의 목적은 이미 뒷전이었고 서로의 존재와 현재의 시간을 즐길 뿐이었다. 행복한 주객전도의 현장이었다.

태그:#미래교육, #대안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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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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