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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두고 1박 2일로 훌쩍 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원 석사 졸업 후 이어지는 학술 발표에 대한 압박과 진로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우울하고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밤새 번민에 휩싸여 혼술을 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만 같아서, 즉흥적으로 통영행 티켓을 끊었다.

영화 <한산>을 보고 떠난 통영 여행

굳이 통영을 고른 이유는 올해 여름에 본 영화 <한산: 용의 출현> 때문이었다. 관객수 700만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는데, 어릴 적부터 이순신 장군을 흠모했던 나 역시 너무나도 재밌게 봤다.

천만 관객 돌파를 돕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관에서만 두 번 관람했고, OTT 서비스가 시작된 후로는 거의 매일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반복 감상하고 있다. 누군가 "인생작이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한산>이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영화 <한산>의 감흥이 희석되기 전에 영화 속 배경이 된 장소, 통영을 한번 찾아야겠다 벼르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남쪽 바다 통영에 도착했다. 꼭 10년 만에 다시 찾는 통영이었다. 영화의 여파로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할 줄 알았던 통영은 연휴 직전이라 그런지 너무나도 '한산'했고, 덕분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활을 들고 떠난 여행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이번 여행의 컨셉이 있었다. 바로 '활터 기행'이었다. 나는 작년 12월부터 국궁(전통활쏘기)을 배우기 시작했고, 최근엔 서울 우장산 기슭에 위치한 '공항정'이라는 활터에 정식으로 입사해 활량으로 살고 있다.

이순신 하면 역시 활이 아닌가. 요즘 나는 밤마다 틈틈이 <난중일기>를 필사하고 있는데, 자주 등장하는 구절 중의 하나가 바로 '出東軒公事後射帿(출동헌공사후사후: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을 쐈다)'라는 구절이다. 습사(활쏘기)는 장군이 심신을 단련하는 수단이자 전란으로 인한 근심을 달래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활이라는 특별한 아이템과 함께 했다.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자리하고 있던 '세병관(洗兵館)'을 찾았다. 매표소 직원의 안내로 알게 된 사실. 이곳 역시 <한산> 촬영지였다고 한다. 영화 초반, 번민에 휩싸인 이순신(박해일 분)이 야밤에 홀로 습사를 하던 장면을 바로 세병관 앞에서 찍었다고. 이곳에서 빈 활을 당겨보니 잠시나마 '통제영 궁수'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이순신(박해일 분)이 활을 쏘던 이 장면은 통영 세병관 앞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이순신(박해일 분)이 활을 쏘던 이 장면은 통영 세병관 앞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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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은 엄밀히 따지면 이순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본래 이순신의 통제영은 한산도에 있었으나 전란이 끝난 후인 선조 36년(1603)에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지금의 자리에 통제영을 세웠다 한다.
 
통영 세병관 앞에서 빈 활을 당기며
 통영 세병관 앞에서 빈 활을 당기며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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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병관 일대는 초대 통제사로서 구국의 영웅이었던 이순신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했다. 통제사의 집무실이었던 경무당(景武堂)은 이순신을 우러러본다는 뜻을 담아 명명됐는데, 현재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칭송하는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통제사의 집무실이었던 '경무당'. 이순신 장군을 우러러본다는 의미로 명명됐으며 현재는 이순신의 업적에 대한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통제사의 집무실이었던 "경무당". 이순신 장군을 우러러본다는 의미로 명명됐으며 현재는 이순신의 업적에 대한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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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모신 활터, 열무정

세병관을 나와 남망산 기슭에 위치한 '열무정(閱武亭)'이라는 활터를 찾았다. 예로부터 열무는 왕이 친히 군대를 사열한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그 이름부터가 의미심장했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활터 풍경이었다. 활터에 오르니 과녁 옆으로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산해전이 벌어진 바로 그 현장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 과녁 옆으로 한산도가 보이니 이보다 더 경치가 좋을 수가 없다. 역사적 의미는 말할 것도 없고.
 
통영 남망산 기슭에 위치한 활터 '열무정'. 과녁 옆으로 한산도가 보인다.
 통영 남망산 기슭에 위치한 활터 "열무정". 과녁 옆으로 한산도가 보인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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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같이 활 좀 내도 되겠습니까?"

습사 중이던 열무정 사원 분들에게 인사드리니 다들 반가워하면서 자리 하나를 내주었다. 그렇게 열무정 사원들과 어울려 몇 순을 냈다.

이순신의 고장에 산다는 자부심이 있어서일까. 모두가 활의 고수였다. 쏘는 족족 관중이다. 반면 나는 엉뚱한 과녁에 살을 날리고, 활 시위에 뺨을 맞는 등 평소 해본 적 없는 실수를 해서 부끄러웠다. 아마 내가 통제영 궁수였다면 장군님께 곤장을 정말 많이 맞았으리라.
 
열무정에서 활을 내다
 열무정에서 활을 내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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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열무정은 이순신 장군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정간(正間: 활터 중앙에 걸어두는 나무패) 옆에 이순신의 영정을 모셔두고 있는데, 사원들은 등·퇴정시 늘 장군의 영정에 절을 올린다고 한다. 열무정 사원 한 분은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늘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활을 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열무정에 걸린 이순신 장군 영정
 열무정에 걸린 이순신 장군 영정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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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정에서 만난 또 다른 사원 분은 영화를 보고 이순신의 흔적을 쫓아 통영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요즘 갈수록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데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찾아와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배워갔으면 좋겠다"라면서.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곳, 한산정

이튿날, 배를 타고 한산도(閑山島)로 건너갔다.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위치했던 제승당(制勝堂)이 이곳에 있다.
 
통제사의 집무실이었던 한산도 제승당
 통제사의 집무실이었던 한산도 제승당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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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이곳에 통제영을 설치했는데, 당시 집무실로 쓰인 건물이 바로 운주당(運籌堂)이었다. 정유재란 당시 운주당 건물은 소실됐고 영조 15년(1739)에 와서야 이 자리에 다시 건물을 세우면서 제승당으로 지었다 한다.
 
수루에서 내려다 본 한산 앞 바다
 수루에서 내려다 본 한산 앞 바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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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활터 '한산정(閑山亭)'이 있다. 한산정은 실제로 이순신이 부하들과 습사를 하던 곳이다. 사대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흐르는 독특한 구조다. 배 위에서 싸우는 수군의 특성을 고려해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한 습사가 가능하도록 일부러 바다를 끼고 조성했다 한다. '조선수군 실전훈련용 활터'인 셈이다. <난중일기>에는 이곳에서 부하들과 활 내기를 한 뒤, 진 편에서 떡과 술을 마련해 다함께 즐겼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활을 냈던 '한산정'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활을 냈던 "한산정"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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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여행에서 활을 들고 내려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곳 때문이었다. 활을 배우기 시작한 뒤로 한산정에서 활 한 번 내보는 게 로망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곳에서 습사를 한다면 얼마나 감개무량하겠는가. 간간이 이곳을 찾아 습사를 하는 이들이 있기에 나도 한 번 활을 들고 가봤다.

결과적으로 미션 실패. "한산정에서 활을 좀 내도 되겠느냐"고 문의하자 제승당관리사무소 측은 "여긴 사적지라 엄연히 절차가 있다"며 습사를 하고 싶으면 미리 예약하고 이용료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여럿이 온 건 봤어도 혼자서 활 쏘겠다고 온 사람은 처음"이라며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아쉬운 대로 장군이 서서 활을 냈을 사대에 서서 빈 활이라도 당겨보며 장군의 기운을 마음껏 받아 가고자 했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활을 당겨본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이순신 장군이 활을 내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이순신 장군이 활을 내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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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영정 앞에서

한산도를 떠나기 전 충무사(忠武祠)를 찾았다. 충무사는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텅 빈 사당에서 장군을 마주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왠지 장군의 눈빛을 마주하기가 부끄러웠다. 어릴 적에는 그저 장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그려진 영정이 참 멋있다고만 생각했는데(비록 상상화일지언정) 그날따라 장군의 형형한 눈빛이 참 매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열심히 살라고 꾸짖는 것만 같았다.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라는 말씀을 올리고 물러 나왔다.
 
충무사에 걸린 이순신 장군의 영정
 충무사에 걸린 이순신 장군의 영정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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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여행 한 번 다녀온다고 복잡했던 생각이 다 정리될 리 만무하다. 사실 돌아다니면서도 중간 중간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한산해전이 벌어졌던 바로 그 바다 위에서, 조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이순신 장군과 부하 장수들, 그리고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영웅들을 생각하니 오늘의 내 고민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러니 삶이 지치고 힘들다면, 무언가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다면 한산도로 훌쩍 떠나보길 권한다. 이곳에서 적어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는 채워갈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한산해전이 벌어진 바다 위에서
 한산해전이 벌어진 바다 위에서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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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산, #통영, #한산도, #이순신, #열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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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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