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오세혁 연출 뮤지컬 <첫사랑>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오세혁을, 연습이 한창이던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가곡을 활용한 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구상한 지 몇 년 후, 실제로 가곡으로 뮤지컬을 만들자는 재단의 제안이 왔을 때 그는 거부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다.

▲ 호불호 ”모든 창작자 분이 그렇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특히 더 좋아하는 분도 있고, 안 좋아하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분위기를 보면 ‘또 이렇게 새로운 거 하나 보다’라는 느낌은 항상 갖고 계신 것 같아요. ‘늘 하던 걸 한다’는 느낌보다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거, 또 어떻게 보면 이상한 거 하는 창작자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를 좋아해주시는 시선도, 안 좋아하시는 시선도 다 제게는 고마운 지점이 있어요.“ ⓒ 곽우신

 
"이진욱 작곡가랑 몇 년 전부터 가곡을 중심으로 공연을 한번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얘기를 계속 나눴었어요. 구체적으로 '뭘 하자'고까지는 하지 않았었는데, 작년에 마포문화재단에서 김효근 선생님의 곡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드는 작업이 있는데 생각이 있느냐고 연락이 왔죠. 마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잘 됐다' 싶어서 이제 저희 둘이 같이 들어오게 됐습니다."
 

지난 7년간 11번의 호흡을 맞췄던 오세혁 연출과 이진욱 작곡가가 또 다시 손을 잡았다. 다만, 이번에는 대학로가 아니라 마포구였다. 서울시의 각 자치구별로 문화재단과 아트홀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많지만, 개별적으로 극을 창작하고 의욕적으로 작품을 올리는 곳은 손에 꼽는다. 마포문화재단은 최근 마포아트센터의 전면 리모델링 후 재개관에 맞춰서 여러 가지 실험을 의욕적으로 하고 있다. 뮤지컬 <첫사랑>은 극작과 연출의 오세혁과 작곡의 이진욱이라는 '검증된' 페어가 다시 뭉친 작품이자, 재단의 의지가 녹아든 극이다.
 
처음 보도자료를 받아들었을 때는, 뮤지컬 <첫사랑>의 시놉시스와 오세혁 연출의 이름이 잘 매칭되지 않았다. 그가 극작으로 빛을 발했던 것은 <괴벨스 극장> <보도지침> <초선의원> 등 묵직한 문제의식을 투박하면서도 울림 있게 풀어내는 작업들이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처럼 날을 잔뜩 세운 작품도, <라흐마니노프>처럼 다정한 극도, <홀연했던 사나이>처럼 유쾌한 공연도 있다.
 
하지만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것처럼 말랑말랑하고 풋풋한 느낌을 그에게서 단박에 떠올리기는 어렵다. 2022년의 오세혁 연출은, 분명 대학로에 처음 데뷔했을 때처럼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만 받는 이는 아니다. 부침이 있고,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물도 있었고, 여전히 신뢰와 불신, 호와 불호를 오가는 작업을 해가고 있다. 
 
그런데 조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곧장 또 끄덕이게 된다. 뮤지컬 <첫사랑>에 가장 적합한 건, 다양한 경험을 갖추고 여러 이야기를 풀어내본 사람, 어느 작품에서든 언제나 인간애를 잃지 않는 결과물을 내기 위해 애쓴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뮤지컬 <첫사랑>은 여러 면에서 상업극 내 주류 장르와는 궤를 조금 달리한다. 50대 남성이 주인공이라는 점, 가곡을 바탕으로 뮤지컬화했다는 점, 기획사가 아니라 재단을 통해 창작된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렇기에 더더욱 오세혁 연출에게 적합한 자리였을지 모른다.
 
마당극에서 시작해 연극을 거쳐 뮤지컬, 최근의 영화 <헌트>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에 참여한 사람이 바로 그이다. 상업극과 비상업극을 다 해봤고, 극단과 공연 기획사, 재단과 모두 일해 본 경험이 있다. 극작과 연출, 각색까지 정말 많은 발자취가 지금의 그를 증명한다. 특히 <전설의 리틀 농구단>처럼, 재단과의 작업으로 훌륭하게 안정적으로 재공연되고 관객들에게 소구되는 작품을 띄운 데도 오세혁 연출의 공이 꽤 있다. 그리고 그의 이력에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서정적인 작품도 분명 크게 자리하고 있다.
 
<첫사랑>은 세월호 추모곡 '그 영혼 바람되어'로도 유명한 작곡가 김효근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의 가곡을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쥬크박스 뮤지컬이다. 이름 있는 사진작가였던 '태경'이 과거 학보사 기자였던 자신을 떠올리며, 자신의 인생에 강렬하게 남은 한 사람 그리고 노래를 추억하는 이야기이다. 뮤지컬 <첫사랑>은 2일부터 4일까지, 단 3일간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공연된다.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 8월, 오세혁 연출을 마포아트센터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중 일부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한 내용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오세혁 연출 뮤지컬 <첫사랑>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오세혁을, 연습이 한창이던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가곡을 활용한 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구상한 지 몇 년 후, 실제로 가곡으로 뮤지컬을 만들자는 재단의 제안이 왔을 때 그는 거부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다.

▲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 “제가 한 작품들 중에 사실 저희 어머니가 보시러 올 만한 공연을 떠올리려고 하면 많지가 않거든요. 예전에 어머니께 우연치 않게 뮤지컬 영화를 검색해서 보여드렸는데, 엄청 좋아하시면서 ‘너는 왜 뮤지컬 안 하느냐’라고 하시더라고요.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어머니가 봐도 되게 좋아할 만한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게 컸어요.” ⓒ 곽우신

   
- 이전 작품에서 오세혁과 함께 작업해본 이력이 없는 배우들로 팀이 짜였다. 함께 연습해보니까 어떤가?
"이번에 주인공을 맡게 된 윤영석, 조순창 두 선배들이 진짜 감동이었어요. 윤영석 선배께서는 대극장에서 공연들을 계속 많이 해오셨잖아요. 그런데 첫날 상견례 때 오셔서, 리딩을 하고 나서 눈이 글썽글썽하셨어요. 그리고 제게 '내 나이에 맞는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어줘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귀하다'라고 해주셨어요. 선배의 딜레마는 이제 그런 거죠. 배우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배우에게 맞는 나이대의 인물이 주인공인 공연이 많지가 않은 거죠. 저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표현해주시고, 연습하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계시고, 진짜 늘 웃고 계세요.

조순창 선배는 저하고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요. 한동안 공연을 좀 쉬셨잖아요. 실제로 배우를 잠깐 멈출 생각을 하셨대요. 커피 관련 사회적 기업도 순창에서 운영하고 계시고요. 그런데 머리로는 '이제 배우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쉬운 게 있으셨나봐요, 대본을 받고 나서 혼자 다 읽으시고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끓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가곡 뮤지컬이다 보니까 두려움도 크셨고, 발성도 다를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정말 계속 배우의 꿈을 꿀 수 있는지, 이 작품을 통해서 고민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오셨더라고요.

두 분이 연습할 때마다 정말 그 마음이 느껴지고 그러니까, 저도 그게 너무 뭉클하게 다가와서, 저도 계속 열심히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 두 분과 함께하게 된 것이 저한테도 정말 좋은 계기인 것 같아요."

- 첫사랑과 가곡, 그리고 마포문화재단이라는 조합이 신기하다. 이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나?
"마포문화재단 대표께서 처음에 이 작품을 제안을 한 이유가 있어요. 대표께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시절에 어떤 분하고 잠깐 시간을 보내고 싶으셔서 고민을 하다가 대학가곡제 티켓을 2장을 구해서 같이 보러 갔는데, 거기에서 김효근 선생님이 처음 데뷔했던 '눈'이라는 가곡이 나왔대요. 그래서 그 순간이 되게 기억이 난다고 하시면서 '첫사랑의 기억이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때 그 첫사랑을 하면서 열렬하게 에너지를 쏟아냈던 그 시절의 자기를 좀 더 만나고 싶은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기가 사랑했던 대상이 그리운 게 아니라 누군가를 그렇게 뜨겁게 사랑했던 자기 자신이 그리워서 계속 첫사랑을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씀이셨는데, 그 말이 저한테는 되게 공감이 됐어요. 저도 살면서 이제 사람이 됐건, 아니면 어떤 일이 됐건, 뭐가 됐든지 간에 에너지를 뜨겁게 뿜어내는 경우들이 많지가 않게 됐는데, 이 작업을 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그걸 되찾았어요. 대학 때 처음 연극을 보고, 평생 이 공연 일을 하면서 살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그때의 첫사랑 같은 거죠.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 오세혁 연출에게도 '첫사랑'이 있었을텐데, 본인의 첫사랑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제가 얼마 전에도 배우들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솔직하게 말을 했는데, 저는 신기하게 그 첫사랑이 중학교 2학년 때라는 것만 기억이 나고 이름하고 얼굴이 진짜 기억이 안 나요. 대신 윤종신의 '오래 전 그날' 노래가 기억이 나요. 제가 그때 누구를 좋아해서 고백을 했는데 어떻게 잘 안 돼서, 독서실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서 울고 있었죠. 그때 친구가 '이거 들어'라고 워크맨을 놓고 딱 귀에 꽂았는데, 꽂자마자 가사가 흘러나오는데 그 자리에서 너무 오열을 해서, 진짜 한 100번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걸 듣고 밤을 새고 집에 갔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그거를 밤새 듣고 나니 해소가 좀 됐던 기억이 있죠.

신기한 게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오래 전 그날'만 흘러나오면 그 순간이 정확하게 기억나요. 제가 이 얘기를 배우들한테 왜 했냐면, '첫사랑이라는 작품이 그런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거였어요. 한 곡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곡은 한 곡이지만, 이 무대 위에는 되게 수많은 시간과 공간들이 스쳐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거였죠. 예를 들어 10년 전의 나와 10년 후에 내가 같은 공간에 있고,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랑 같은 공간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여기 바닷가에 있는 나랑 서울에 있는 내가 같이 흘러갈 수도 있고… 왜냐하면 제가 그 경험을 했으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노래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오세혁 연출 뮤지컬 <첫사랑>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오세혁을, 연습이 한창이던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가곡을 활용한 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구상한 지 몇 년 후, 실제로 가곡으로 뮤지컬을 만들자는 재단의 제안이 왔을 때 그는 거부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다.

▲ 연습할 때의 난관 “배우들이 거의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거의 눈물을 흘렸어요. ‘이렇게 초반부터 계속 눈물을 흘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작품의 내용이, 연기하고 노래하는 배우들로 하여금 자신의 어떤 또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매일매일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내가 못할 짓을 하나’라는 생각도 좀 했던 것 같지만…. (웃음)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 눈물이 슬픔의 눈물이라기보다는 이제는 내 안에서 사라져가서 더이상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발견하면서 흘리는 어떤 아름다운 감정의 눈물이라고 생각해요.” ⓒ 곽우신

 
- 작품의 열쇠말로 사랑, 사진, 기억을 꼽았다. 이 단어들을 토대로 작품을 구체화해나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나?
"가곡 '첫사랑' 같은 경우는 워낙 저희도 알려진 노래라서 되게 좋아하던 노래다 보니까, 흥미가 있었어요. 근데 이 작업을 하면서 이제 김효근 선생님께서 따로 본인의 연가곡 모음집이라고 그래서 사랑에 관한 곡들만 모아놓은 게 있어요. 처음에는 선생님들의 거의 모든 가곡을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계속 들으면서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이 연가곡에 포함된 곡만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봐야 되겠다 싶었죠.
 
특히 사랑의 기억에 관한 내용들이 많았어요. 긴 시간 속에서 어떤 짧은 순간,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만났던 순간이 있잖아요. 그 순간을 오랜 세월이 지나서 돌이켜보는 그런 곡들이 많아서 이거는 그 사랑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마포구에 대해서 이런저런 파악을 해보던 차에, 지금은 없어진 동네의 오래된 사진관이 있더라고요. 그 사진관을 원래 운영하던 분이 돌아가셔서, 자녀분들이 사진관을 정리하는데 사진관에 가보니까 벽에 되게 오래된 사진부터 최근 사진까지 다 붙어 있었는데, 이게 뭐냐면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사진들을 수십 년 전부터 계속 붙여놓으신 거였어요.

그게 찾아가지 않은 사진처럼도 보이지만, 그 사진관 사장님이 수십 년 동안 거쳐왔던 기억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 사진, 기억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접근을 해야 되겠다 해서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을 행복한 인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이 의외로 그 짧은 기억 하나로 되게 인생을 길게 살아가고 버티는 경우들이 많더라고요. 저희 어머니 같은 경우도 저희 아버지를 맨 처음 만났던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 이후에 어떤 안 좋은 일이 서로 있더라도, 계속 그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견디는 경우들을 많이 봤어요.
 
저도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아버지 유품인 핸드폰을 한 2년 동안 못 켜고 있었죠. 어느 날 술에 취한 김에 아버지 핸드폰을 켜봤는데, 사진 앨범을 보니까 저녁 골목길 가로등 사진만 이렇게 계속 찍어놓더라고요. 그때는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그리고 한 1년쯤 지났을까, 제가 술에 취해서 혼자 집에 걸어가는데 골목길에 가로등 불빛을 저도 모르게 찍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나서 그 자리에 멈춘 적이 있었어요.

저는 지금도 아버지가 왜 골목길 가로등을 찍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지만, 제가 그걸 찍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왜 찍었는지 알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몰려왔어요. 첫사랑을 접근할 때도 그런 마음들로 계속 좀 다가가고 있어요, 세월이라는 건 어쨌건 엄청 긴 시간을 말하는데, 사람은 그 긴 시간을 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살면서 가장 눈부셨거나 아니면 가장 어두운 어떤 한 순간들을 모아서 세월을 만든다는 생각을 했었죠. 결국은, 이 작품의 제목이 <첫사랑>이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기억에 관한 이야기인 거죠."

첫사랑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오세혁 연출 뮤지컬 <첫사랑>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오세혁을, 연습이 한창이던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가곡을 활용한 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구상한 지 몇 년 후, 실제로 가곡으로 뮤지컬을 만들자는 재단의 제안이 왔을 때 그는 거부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다.

▲ 그에게 무대란 “무대라는 것은 어찌 됐든 관객들이 와서 함께 서로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아야 되는 공간이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이왕이면 배우들도 관객들도, 모두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벗어날 때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갔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도 세상이 아직 살 만하구나’ 혹은 ‘저런 인간들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이길 수 있겠구나’라는 어떤 느낌을 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게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맞닿는 장르니까요. 저에게 아직 공연이라는 것은 어떤 광장 같은 느낌이에요. 광장에서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는 집회죠.” ⓒ 곽우신

 
- 그렇다면, 오세혁을 살게 하는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나?
"저에게도 빛나는 순간들은 많죠.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처음으로 연극을 봤을 때가 가장 빛났던 순간인 것 같아요. 대학교를 점수 맞춰서 그냥 온 거라 아무런 꿈이 없었는데, 학교 축제 때 마당극이 초청되어서 왔었는데 그때 박철민 배우가 나온 <대한민국 김철식>을 야외 광장에서 했어요. 모르는 사람들하고 둘러앉아서 봤는데, 같이 울고 웃고 하는 것들이 저한테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때 정말 마음속에서부터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내가 저런 일을 하겠다'라는 예감이 정확하게 들었었고, 그래서 다음 날부터 수업을 안 들어가고 계속 연극을 보러 다녔어요. 사실 처음에는 사람 많은 거 싫어해서 그 축제를 솔직히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간 거였거든요. 만약에 그때 그 연극을 안 봤다면 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고 생각해요. 제게는 그래서 연극이 첫사랑 같은 거예요.

또 <라흐마니노프>가 제 첫 뮤지컬이잖아요. 제가 시간이 지나서 그걸 다시 보니까, 진짜 그때 제가 처음이니까 '내가 되게 촌스러울 정도의 순수함이 있었구나'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이 참 착하잖아요.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착하지만은 않잖아요. 하지만 '내가 정말 사람을 저렇게 착하게 바라봤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마음이 힘들 때마다 저한테 위안이 되더라고요. 그 작품을 만들던 시절의 제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따뜻했고요."
 
- 중학교 2학년의 첫사랑으로 남은 노래, 대학생의 꿈이 되어버린 공연과의 첫사랑, 하나는 이루지 못했고, 하나는 이뤘다. 오세혁은 첫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나? 관객에게는 그 의미가 어떻게 닿기를 바라나?
"생각을 해보면 누구나 자기가 되게 빛났거나, 정말 행복했거나, 눈부셨던 어떤 짧은 한 순간은 꼭 한 번씩은 있었을 것 같거든요. 인생이란 게 그 순간들이 쌓인 것이라고 한다면, 눈부셨던 순간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다면, 그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인생은 순간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관객들이 무대 위의 어떤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그걸 보면서 오히려 자기 마음속에서 '나의 가장 눈부셨던 순간은 어떤 순간이었지' 하고 동시에 그걸 떠올리시고, 그 순간 덕분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저도, 저희 어머니도, 제 주변 친구들도, 작품을 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보면서 그런 걸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첫사랑을 정의할 때도 '내 삶에 가장 눈부셨던 짧은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첫사랑> 포스터에 어떤 가사를 적을지 고민하다가 '그토록 짧았던 시간이여'를 고른 것도, 정말 행복하고 눈부셨던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짧았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걸까요? 저만의 정의이지만, 제가 이걸 관객들과 함께 잘 공유를 해야 되겠죠? (웃음)"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오세혁 연출 뮤지컬 <첫사랑>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오세혁을, 연습이 한창이던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가곡을 활용한 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구상한 지 몇 년 후, 실제로 가곡으로 뮤지컬을 만들자는 재단의 제안이 왔을 때 그는 거부하지 않고 그 기회를 잡았다.

▲ 서투르지만 아직도 이야기를 쓰고 풀어낸다 “사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되게 서툰 게 사실이에요. 제 인생이 그렇게 격렬한 인생도 아니었고, 그냥 일을 하다 보니까 되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지금 같이 이렇게 잘 인생을 살고 있는 거죠. 다만, 저도 이제는 저와 같은 나잇대 보다는 좀 더 웃어른들하고 지내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그러면 어른들이 이제 자기의 어떤 그 순간, 어떤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을 저한테 하는 경우가 되게 많았죠.” ⓒ 곽우신

 

오세혁 뮤지컬 첫사랑 마포문화재단 마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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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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