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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은 2022년 협소한 '법적 가족' 규정을 넓히고, 다양한 가족 실천을 포괄할 수 있는 법·제도·문화로의 변화를 촉구하는 '뚝딱뚝딱,'가족' 법·제도·문화를 다시 짓다' 사업을 진행합니다. 사업의 일환으로 온라인 설문조사 〈국가야, 내 '가족' 여기 있다! :법·제도상 가족규정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와 3회의 주제별 집담회 〈뚝딱뚝딱,'가족' 새로 짓기〉가 실시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설문조사와 집담회를 통해 모은 시민들의 의견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기자말]
가족의 요건 1순위, 서로 돌보기

우리가 힘들 때, 외로울 때, 아플 때... 누가 곁에 있어 줄까? 일상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게 나를 돌보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돌봄을 주변적 문제로 치부하는 이 사회에서는 막연하게만 들리는 이 질문들이, 삶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대개 '가족'이란 관념과 뒤섞여 온다. 뉴스에서, 드라마에서, 사람들의 수다 속에서.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 결국은 '가족'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려온다. 돌봄의 현장에서는 자꾸 '가족'을 데려오라는 요구에 맞부딪힌다. 그런데, 나를 돌봐줄 수 있고 내가 돌보고 싶은 내 가족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족'과 꼭 같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돌봄을 생각할 때, 가족을 함께 질문할 수밖에 없다.
 
〈국가야, 내 ‘가족’ 여기 있다!〉 설문조사 문항 3번 답변 통계
 〈국가야, 내 ‘가족’ 여기 있다!〉 설문조사 문항 3번 답변 통계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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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혼인, 입양. 한국의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단 세 가지 요건만이 가족 관계를 구성한다고 규정한다. '법적 가족'의 정의이다. 이러한 정의가 현실과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족의 요건 가운데 무엇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가장 높게 나타난 답변은 바로 '서로 돌봄'이었다. 사람들은 가족이란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마음을 쓰며 챙기는 관계임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혈연 또는 법률혼 관계라도 서로 돌보는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고, '법적 가족'이 아니라도 가장 밀접하게 서로를 돌보는 관계라면 가족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명제에도 많은 이들이 생각을 같이 할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 가족관계증명서

그럼에도 돌봄을 담당하는-또는 해야만 하는- 주체는 가족이고, 그 가족이란 혈연과 법률혼으로 구성된 '법적 가족'이라는 통념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리고 그 통념에 의해 각종 제도의 수립과 집행과정에서, 의료와 돌봄의 현장 안에서 매우 좁은 범위의 사람들에게만 주 돌봄자, 보호자의 '자격'이 부여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보호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자로서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법적 가족'이라고 하는 테두리는 맨 마지막 가장 결정적인 곳에서 힘을 발휘해요. 진단서를 뗀다거나 환자를 도와서 같이 일을 하려고 해도 가족관계증명서를 가져와야 하는 게 되게 많더라고요. 호스피스로 가는 상담을 할 때도 환자 본인이 못 움직이면 제가 대신 가야 하는데 가면 가족이어야 한다고, 네가 왜 오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환자의 동의서, 위임장 이런 걸 바리바리 싸 들고 눈물로 호소하고······."
〈뚝딱뚝딱, '가족' 새로 짓기〉 3회차 "서로서로 잘 돌보는 공동체를 상상하다" 집담회 사례 中
 
시급하게 수술동의서를 써야할 때, 보호자로서 구급차에 동행하거나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병실에 함께 머물러야 할 때, 진단서와 같은 각종 서류를 발급받거나 의료·돌봄 기관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할 때, 법정 가족돌봄휴가를 써야 할 때... '법적 가족'이 아닌 이들은 번번이 관계 증명의 벽에 가로막힌다.

사실 현행법 가운데 이 같은 보호자 권리를 '법적 가족'만 행사할 수 있다고 명문화한 규정은 많지 않다. 그러나 행정기관, 의료기관 등 돌봄 현장의 책임 주체들은 다양한 관계들을 인정하는 데에 수세적인 태도를 보인다. '괜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법적 가족'에게만 모든 돌봄의 권한과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의료, 주거와 생활, 복지제도, 노동, 더 나아가서는 장례까지 긴밀하게 얽혀있는 돌봄의 현장에서, '법적 가족'을 우선시하는 법률과 지침, 관행들은 언제 어떻게 튀어나와 영향력을 발휘할지 알 수 없다.
 
"제가 수술을 했을 때 돌봐준 사람이 법적 가족이 아니어서 겪은 어려움은 끊임없이 관계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 입원실에서 둘은 무슨 사이냐 그런 걸 묻는다거나.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원가족에게도 끊임없이, 제 동거인과 다른 가족들은 저의 돌봄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계속 우리의 관계를 어필하는 활동을 해야 했거든요."
〈뚝딱뚝딱, '가족' 새로 짓기〉 3회차 "서로서로 잘 돌보는 공동체를 상상하다" 집담회 사례 中

사회적 통념이 제도를 만들고, 통념에 따른 차별적 제도는 다시 사회구성원의 통념을 강화한다. '법적 가족'이 있어야만 안정적으로 돌봄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 제도 안에서 '법적 가족' 관계의 권위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럴수록 '법적 가족' 밖의 다양한 돌봄 관계는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되고, 개인들이 각자의 삶의 상황에 맞는 돌봄 관계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길은 가로막히고 만다.

"친구예요." "그럼 따로 오세요."

돌봄이 필요할 때 '법적 가족'이라는 조건 앞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는 경험은 우리 사회 일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자주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법적 가족'이 아닌 경우는 매우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웃돌고, '법적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함께 사는 비친족 가구원 수가 100만에 이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와 동료, 이웃, 연인과 서로를 챙기고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설문조사와 집담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풍부하고 다양한 '법적 가족' 밖의 돌봄 경험들을 나눠주었다. 집을 비우게 된 친구네 고양이를 대신 돌봐주고,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는 함께 사는 이에게 돌봄을 받은 경험. 함께 사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나머지 구성원들이 함께 모아둔 돈으로 그의 생활을 도왔다는 경험.

갑자기 입원하게 된 친구를 위해 친구의 집에 달려가 설거지와 청소를 해준 경험. 다리가 골절되었을 때 이웃과 직장동료들의 도움을 받은 경험. 장시간 투병하게 되었을 때 동네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돌봄단'을 꾸려 역할을 나누고 돌아가며 돌봄을 맡아준 경험. 투병 중인 파트너를 '독박 돌봄'하려던 자신을 위하여 주변 친구들과 공동체가 모두 나서서 돌봄을 나눈 경험... 생각을 조금만 넓혀보면, 우리 삶은 아주 사소한 데서부터 막중한 데까지 끊임없는 돌봄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동거인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게 됐는데 (관계를 묻는 질문에) '친구예요.' 말하니까 '따로 오세요.' 하는 거예요. 게다가 (동거인이) 부모와 절연을 했는데, 부모한테 연락이 가게 됐어요. 그래서 지역에 계시던 부모님이 새벽에 올라오셔서 혼돈의 상황이······."
〈뚝딱뚝딱, '가족' 새로 짓기〉 3회차 "서로서로 잘 돌보는 공동체를 상상하다" 집담회 사례 中
 
그리고 모두에게 충분하고 좋은 돌봄이란, 결코 '법적 가족' 안에 국한될 수 있는 것이 아님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돌봄은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이 서로의 상황과 필요, 의지를 알고 충족할 수 있는 밀접한 관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각자가 누구와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는 혼인·혈연·입양이라는 턱없이 좁은 틀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법적 가족'이 잘 돌볼 것이라는 통념만으로 실제 어떤 관계인지도 알 수 없는 '법적 가족'을 찾아댈 때, 얼마나 많은 돌봄의 '골든타임'이 흘러가 버리고 있을까?

서로서로 더 잘 돌보는 사회를 위해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 우리 삶을 이루고 유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측면이 돌봄임이 비로소 드러나고 이야기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이에 따라 모두가 돌보고 돌봄 받을 권리, 돌봄권이 시민적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돌봄권을 보장하기 위한 첫 단계는,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실제로 어떻게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돌봄에 관한 시민들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 가족'만을 돌봄의 주체로 호명하는 통념은, 실제 돌봄의 양상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모두가 돌보고 돌봄 받는 사회를 위해서는 우선 '법적 가족'의 틀로부터 돌봄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돌봄을 둘러싼 '법적 가족'의 틀을 깨기 위해, 수많은 제도 변화의 과제가 있다. 우선 실제로 돌봄이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주 돌봄자가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보호자로서 권리와 역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령 본인이 의사결정 능력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사전에 보호자로서 법정대리인을 지정해둘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의 개정 등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된다면, 생활을 함께하며 서로 돌보는 생활동반자 관계에 보호자로서 권리를 우선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협소한 '법적 가족' 규정을 삭제하고 서로 돌보며 서로를 가족이라고 여기는 관계가 가족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혈연과 법률혼 관계로 이루어진 '법적 가족' 안에서 돌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제를 깨고 나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많아진다. 국가는 '법적 가족'의 존재와 상관없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수요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함께 또는 가까이에서 돌봄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돌보며 살고 싶은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주거와 복지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해야 한다. 그리고 돌봄이 평등하고 정의롭게 분배될 수 있도록 사회적 차별을 개선하는 일이 국가의 주요한 책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껏 돌봄을 '법적 가족'이라는 협소한 틀에 가두어 둠으로써, 국가는 이 모든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서 그 책임을 묻고 변화를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 '뚝딱뚝딱,'가족' 법·제도·문화를 다시 짓다' 는 한국여성재단이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태그:#돌봄, #보호자권리 , #법적가족, #가족구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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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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