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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주 전부터 밤만 되면 거실에 말벌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말벌은 전등을 맴돌며 거실을 누비고 다니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와 아들은 방에 들어가 있으라 하고 혼자서 전자 모기채와 살충제를 동원해 잡으려 진땀을 뺐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방충망도 모두 닫혀 있고 바깥에서 들어올 만한 구멍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체 어디서 들어오는 걸까? 밤중이라 누가 드나들지도 않아 출입문으로 들어왔을리도 없습니다. 어쩌다 한 마리 들어올 수는 있겠지만 거의 이틀 걸러 하루씩 말벌이 들어온다는 건 뭔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혹시 집 근처에 말벌집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집 부근에 말벌집이 있다 해도 말벌이 밤에 거실에 들어오기란 쉬운 일은 아닌데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다
 
집 뒤란 처마 밑 말벌집, 약간 노랗게 보이는 부위가 밖으로 나온 말벌집 일부다.
▲ 처마 밑 말벌집 집 뒤란 처마 밑 말벌집, 약간 노랗게 보이는 부위가 밖으로 나온 말벌집 일부다.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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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큰 비가 내려 지붕에 약간 손 볼 일이 생겼습니다. 작업하러 지붕에 올라 가다가 비로소 알았습니다. 말벌들이 2층 처마 밑을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처마 밑에 말벌집이 생겨난 겁니다. 말벌 근거지를 찾았으니 혼자서 공략을 해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워낙 높은 곳이고 보호 장구도 없이 섣불리 덤볐다간 큰 사고가 날 위험이 컸습니다.

끝내 119에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잠시 뒤 소방대원 다섯 분이 오셨습니다. 그들은 익숙한 작업인 듯 두 사람은 방호복을 입고 두 사람은 밑에서 사다리를 잡거나 필요한 도구를 건네 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간 소방관은 한참을 달려드는 말벌과 사투를 벌이셨습니다. 살충제를 뿌려대며 밖에서 보이는 말벌집 일부를 호미로 긁어냈습니다. 
 
한 밤 중에 거실에 들어와 전등 속에서 죽은 말벌
▲ 말벌 한 밤 중에 거실에 들어와 전등 속에서 죽은 말벌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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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대로 두 번째 사다리에 올라가 작업한 소방관은 "말벌집은 처마 밑 틈새 안쪽 깊숙이 있는 거 같다"며 "지금 상태로는 원천적인 제거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처마 밑 틈새 속 말벌집과 거실이 연결돼 있는 거 같아 물로 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처마를 뜯어낼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당장 눈에 보이는 말벌들만 살충제로 잡고 말벌집에도 약을 듬뿍 뿌리는 정도로 작업을 끝냈습니다.

소방관들을 이끌며 지휘하던 반장은 "오늘은 이 정도로 철수 할 수 밖에 없다"며 "오늘 말벌 개체수가 크게 줄었기에 앞으론 괜찮을 거다. 혹시 말벌이 또 다시 나타나면 다시 119에 신고하라"고 하였습니다. 방호복을 입고 작업하던 소방관 두 분은 땀으로 멱 감은 듯 온 몸이 젖어 있었습니다. 말벌집 제거까진 못하였지만, 소방관님의 수고에 감사했습니다. 

그러고 나흘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말벌들은 밤에 세 마리나 또 나타났습니다. "아직 남은 몇 마리 안 되는 말벌인가 보다"라 여기고 모두 잡았습니다. 그 중 한 마리는 전자 모기채를 요리조리 잘도 피하여 잡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오늘 아침 말벌집이 있던 자리를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 "오, 이런!" 말벌 서너마리가 연거푸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119를 불렀습니다. 

더이상 집에 찾아오지 않기를

이번에는 두 분의 소방관이 오셨습니다. "두 분 만으로 작업이 가능하겠느냐?"고 묻자,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밑에서 사다리를 잡아 주는 정도의 조력을 하면서 작업을 지켜 보았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아침에 이미 땅벌집 제거 작업을 하느라 많이 지치신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정성을 다해 말벌집에 살충제를 뿌리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119 소방관님들의 말벌집 제거 작업. 뜨거운 한 낮 방호복을 입고 작업하느라 땀으로 온 몸이 젖는다.
▲ 말벌집 제거 작업 119 소방관님들의 말벌집 제거 작업. 뜨거운 한 낮 방호복을 입고 작업하느라 땀으로 온 몸이 젖는다.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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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말벌집이 처마 밑 작은 틈새 안쪽 깊숙이에 있는 거 같다. 처마를 뜯어내지 않고는 말벌집 제거는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대신 "살충제를 많이 뿌려 놓았으니 이제 말벌들이 접근하긴 어려울 거다"고 하셨습니다. 두 소방관님은 오전 작업 이후 쉬지도 못하였고 점심도 아직 드시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두 분이서 말벌집 제거 작업을 하느라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손이 닿지 않아 말벌집 자체를 제거하진 못했지만 우리 가족이 말벌에게서 안전하게 지내도록 많이 지쳤는데도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소방관님들이 떠난 뒤 나와 아들, 둘이서 3차 작업에 돌입하였습니다. 처마 밑 틈새를 실리콘으로 막는 작업을 한 겁니다. 혹시나 말벌이 달려 들까봐 방충 모자를 쓰고 비옷을 챙겨 입고 두꺼운 장갑도 끼고 작업하였습니다. 더 이상 말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리콘으로 입구를 막았으니 살충제 피해 멀리 달아났거나, 사냥을 나갔던 말벌이 그들 집에 들어가진 못할 겁니다. 말벌에 대해 검색해 봤더니 말벌은 "7~8월에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라고 합니다. 그래서 말벌들이 지난 7월 처마 밑에 집을 지었나 봅니다.

아버님이 양봉을 하시기에 저는 어려서부터 벌통 앞에서 매미 채로 '말벌' 잡는 일을 많이 해봤습니다. '꿀벌'과 '말벌'에 익숙한 편입니다. 하지만 말벌에 쏘이면 꿀벌에 쏘인 정도와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통증이 심하고 많이 붓기에 말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자칫 급소를 잘못 쏘였다가는 사람이 그 충격으로 죽는 일마저 있습니다.

특히 크기가 5cm에 달하는 장수 말벌에 쏘였다가는 매우 위험합니다. 장수말벌은 혼자서 꿀벌 한 통을 한 시간 이내에 끝장낼 수 있을 만큼 무서운 녀석입니다. 장수말벌의 독은 꿀벌의 5백 배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행히 이번 저희 집 처마 밑에 집 지은 말벌은 '장수말벌'은 아닙니다. 집 출입구가 막힌 말벌들이 오늘밤 더 이상 거실로 들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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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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