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CJ ENM

 
"반지하 냄새야. 이 집을 떠나야 냄새가 없어진다고."

박 사장(이선균)에게 이상하게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의심을 받은 뒤, 기정(박소담)은 가족들에게 이렇게 쏘아 붙인다. 세제 냄새보다 강력한, 빨래를 해도 지워지지 않을지 모를, 박 사장 표현에 따르면 "무말랭이 냄새"같은 이 '반지하 냄새'야말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관통하는 빈부 격차의 영화적 현현일 것이다.

스크린 밖에선 절대 맡을 수 없는 후각적 표현을 봉 감독은 영화 전반의 주제로 탁월하게 전이시켰다. 게다가 어딘지 비감했고, 그래서 전 세계인이 공감하게 만들었다. 이후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이 "반지하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란 운명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바로 재해다. 폭우다.

폭우가 쏟아진다. 예고에 없던 이 폭우가 두 가족, 아니 세 가족이 처한 현실과 위치를 극렬히 대비시킨다. "(박 사장이) 부자니까 착한 거지"라며 박 사장네 비싼 위스키를 나눠 마시고 '기생'의 성공을 만끽하며 망중한을 즐기던 기택네 가족과 그리고 폭우와 함께 등장한 문광, 그 폭우로 인해 가족 캠핑에서 급히 귀가한 박 사장 가족들로 인해 운명이 급변한다.
 
"그 시작은 (주인이 자리를 비운) 박 사장네 집 거실에서 기택네 가족이 위스키를 마시면서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창 밖 폭우를 보면서 '운치가 있다'고도 말하며 즐기잖나. 그러다가 그 비에 턱 밑까지 몸을 담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야말로 계속되는 하강이다. 주인공들이 하강하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당연히 물도 하강한다. 물 또한 부자 동네에서 가난한 동네로 흐르는 셈이다. 밑으로 밑으로 흐르는 물이 가난한 동네에 구정물로 고이게 된다. 그것이 참 서글픈 광경이다." - 봉준호 감독, <봉준호는 더 재밌는 '기생충'을 일부러 거부했다>, 2019년 6월 12일CBS노컷뉴스 인터뷰 중

폭우가 상기시킨 '반지하 냄새'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 CJ ENM

 
폭우라는 이 불가항력의 재해가 갈라놓는 <기생충> 속 운명론은 봉 감독의 설명처럼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계단 장면과 뒤이어진 '반지하 재난' 장면으로 압축된다. 불과 방금 전까지 기정은 박 사장네 욕실에서 거품 목욕을 즐겼다. 네 가족이 웃고 떠들며 '기생 라이프' 작당모의를 즐겼다.

그 직후 마치 그런 기택네 식구들을 단죄라도 하겠다는 듯이 퍼부은 폭우는 기택과 자녀들을 끝 모르고 펼쳐질 것 같은 (집안과 밖) 계단 끝 하층의 하층으로 내려가게 만든다. 급기야는 이들에게 똥물을 뒤집어씌운다.

폭우는, 자연재해 그 자체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재해는 끊임없이 빈자를 공격한다. 평소 재해를 방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박 사장 부부는 폭우를 감상하며 섹스를 나눈다. 이들과 달리 '반지하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기택네 가족들의 운명은 불가항력과도 같은 폭우에 의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다.

그건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경우도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지난 2021년 9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인 뉴욕을 허리케인 '아이다'가 강타했다. 1896년 기상관측 이래 최대인 시간당 76mm가 쏟아졌다. 이틀 새 최소 41명이 사망했고, 건물 수십만 채가 파손됐다. 20만 가구 정전 및 도로 침수, 항공편 결항 등 상상할 수 있는, 아니 상상을 넘어서는 재난 상황이 펼쳐졌다. 인근 뉴저지주의 피해도 극심했다.

당시 미국인들이 떠올린 것이 바로 재해 피해 몇 달 전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기생충>이었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 상에 영화 장면을 공유하며 재해 피해를 입은 뉴욕과 영화 속 기택네 반지하를 비교했다. 뉴욕 역시도 빈부 격차에 따른 피해 차가 현격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어제(8일), 대한민국 중부 지방에 80년 만의, 아니 115년 만의 폭우가 쏟아졌다. 오늘(9일)까지 계속되는 중이다. 어제 저녁 서울 서초구는 시간 당 100mm 가까운 집중 호우가 내렸다. 

소셜 미디어 및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각 지역 피해 상황이 빠르게 공유됐다. 역시나 <기생충> 속 폭우 장면이 떠오른다는 반응들도 눈에 띄었다. 그 사이 재난주관방송사인 KBS가 폭우 관련 뉴스특보를 시작했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반면 어느 24시간 보도전문 채널은 새벽이 다 되도록 특보를 찾아 볼 수 없었다).

방송사 특보들이 가장 오래, 반복적으로 노출한 피해 지역도 역시나 서울 강남이었다. 단골 침수 지역이 아니었다. 역시나 피해가 심각했다는 경기 등 여타 지역 화면은 다수가 시민 제보 영상이었다. 말 그대로 재해 상황의 전 국민적 실시간 중계였다. 그 공영방송의 특보가 시작되던 시각, 속보 하나가 떴다. 서울시장의 청사 복귀 소식이었다.

<기생충>과 현실 사이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 CJ ENM


호우 경보 등 예보를 통해 폭우는 일찍이 예고된 상태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장은 이날 퇴근 이후 오후 9시 50분경 청사에 복귀했다고 한다. 인천시장은 여름휴가 중이었다.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책임지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세종청사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그 시각 대통령은 서초동 자택에 머무르며 총리 및 서울시장과 화상통화로 정부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후 '9일 공무원 오전 11시 출근'이 속보로 전해졌다. 대통령 지시 사항이었다. 이날 오전 2시 5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행정 및 공공기간 출근시간 11시 이후 조정 조치 및 민간기관과 단체는 상황에 맞게 출근시간 조정 요청' 내용이 담긴 안전 안내 문자를 국민들에게 발송했다.

이들은 도리어 피해 상황을 신속히 파악해야 할 위치다. 이들의 출근 시간 조정이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그게 시민들의 출근길 혼잡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는 발상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서울시가 2022년 하수시설 관리와 치수 및 하천 관리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예산 삭감의 배경과 의도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9일 오전 8명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중엔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도 포함돼 있었다. <기생충>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기생충> 속 폭우로 피해를 입은 곳은 오직 기택네 거주 지역이었다. 반면 박 사장 가족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현실은 다를 수 있다. 폭우는 대통령이 거주하는 강남 아크로비스타를, 사망자가 발생한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가리지 않는다. 그럴 때 더더욱 요구되는 것이 국가 안전 시스템의 철저한 대비와 실시간 대응이요, 이를 신속하고 정확히 작동시키는 콘트롤타워의 역할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피해 복구 및 추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콘트롤타워의 역할이요, 그 작동 여부에 따라 피해복구의 양상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기생충> 속 박 사장 가족에게 폭우가 다음날 미세먼지를 가시게 해 주고 딸의 생일파티를 가능하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는 점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중부 지방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남부 지방은 폭염에 시달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상기후가 기후변화에 이은 기후위기 때문이고, 그 기후위기에 따른 불평등 심화가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될 거라고 입이 닳도록 경고한다. 기실 폭우가 우리만의 위기도 아니다. 올 여름에만 인도와 독일에서도 기록적인 폭우 피해가 났다.

지난달 유엔 사무총장도 "기후위기에 공동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집단자살과 같다"는 격한 메시지를 내놨다. 재해든 재난이든, 기후위기에 따른 불평등과 격차의 심화든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19를 통과한 우리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국가 시스템과 콘트롤타워의 중요성에 그 어느때보다 민감해졌다. 하지만 이번 폭우를 접한 우리가 목도한 것은 무엇인가. 

<기생충>의 기정은 "이 집을 떠나야 냄새가 없어진다"고 했다. 신림동 반지하에 살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일가족들도 그 집을 떠날 수 없었을 것이다. 기후위기나 시스템과 콘트롤타워의 부실함 모두를 당장 피할 수 없다고 느꼈을 이들에게 이번 폭우는 분명 더 큰 공포로 다가왔을 법하다.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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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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