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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앞에서 시수제한 철회와 사전검열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전국예술강사노조 조합원들.
 2021년 3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앞에서 시수제한 철회와 사전검열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전국예술강사노조 조합원들.
ⓒ 전국예술강사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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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강사는 월 59시수를 넘겨서 수업하면 안 된대요"

"강사님, 어떡하죠? 교육청 장학사님에게 전화가 왔는데요. 예술강사는 주 15시간, 월 59시간을 넘겨서 수업하면 안 된대요. 알고 계셨어요?"

한 달 전쯤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올해 전환기 수업을 하기로 한, 서울 시내 모 중학교에서였다. 교육청 장학사에게서 월 59시수를 넘기면 안 된다는 지적을 들은 학교에서는 부랴부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15차시로 설계되어 있던 프로그램을 11차시로 해 달라, 나머지 4차시는 교사들이 수업을 하겠다, 대신 그 수업시간 동안 보여줄 수업내용을 동영상으로 보내달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겠다고 얘기하고 통화를 끊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학생들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선택일까? 깊어가는 생각의 무게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지나갔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일까? 작년과 재작년에도 나는 같은 학교에서 전환기 수업을 했다. 그때는 아무 문제 없이 수업할 수 있었는데, 왜 이번엔 월 59시수 제한에 걸린 것이지? 이유는 학급수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전환기 교육은 11~12월 두 달 동안만 진행되는데, 학급수가 늘게 되면서 예년보다 수업 시수가 늘 수밖에 없었고, 11월 한 달이 59시수를 넘기게 된 것이다. 보통 이론 수업이라면 15차시 커리큘럼을 조정해서 11차시로 할 수도 있겠지만, 제작 수업은 그렇게 하기 현실적으로 힘들다.

주 15시간 미만만 일하라?

영화는 대표적인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커리큘럼이 다채롭다. 기본영화이론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창작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다양한 커리큘럼이 나온다. 수업목표와 세부내용은 학교 측과 협의해서 결정하지만, 대다수 학교는 제작 수업을 선호한다. 제작 수업을 해야 완성된 작품이라는 보다 가시적인 형태로 교육 결과물이 나오고, 이후 교내 상영회 및 영화제로까지 이어지면서 학교의 성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 수업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영화는 아무리 간소화해도 기본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기획, 시나리오, 콘티를 그려야 하는 프리 프로덕션 과정, 실제 촬영에 들어가는 프로덕션 과정, 편집, 음악, 자막과 타이틀 등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까지 여러 과정을 단계별로 거쳐야 한다. 학급당 25~28명 정도 되는 학생들을 세 모둠 정도로 나누어 제작 수업을 진행하게 되고, 전체 학급수 곱하기 3의 개수에 해당하는 작품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피드백을 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15차시 만에 이 과정들을 모두 거쳐 모둠별로 작품 하나씩을 완성해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지지하고, 격려해 주어야 하는데, 제작에 필요한 물리적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강사로서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도 너무나 크다. 그나마도 부족한 15차시 수업을 11차시로 줄이고, 대신 학급수는 7개 반에서 9개 반으로 늘어 전체적으로 다뤄야 할 작품의 개수가 27개나 된 상황을 도저히 해낼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결국 학교 측에 11차시로는 제작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음을 알렸다. 담당 교사는 이미 학기 초에 기안이 다 올라간 상태에서 학생들의 수업은 어떻게 하냐며 되려 강사인 나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 당황스러웠다. 이 모든 문제가 나로 인해 생긴 일이 아님에도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고, 왜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것일까?

학교, 운영기관, 교육청, 상담센터, 노무사에게 전화를 걸다

이 상황이 참 억울하고 답답했다. 그래서 학교 측 담당 선생님과 통화했다. 15차시 커리큘럼을 11차시로 줄여서는 제작 수업을 도저히 할 수 없음을, 그리고 전환기 수업은 11월, 12월 두 달 동안 진행되지만, 그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2학기 내내 해당 요일을 비워둘 수밖에 없음을 얘기하고 시수가 줄어들면 생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학교 측은 교육청 장학사에게서 월 59시수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운영기관에 전화를 걸었다. 혼자서 11차시로 제작 수업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강사를 한 명 더 추가로 배치해 줄 수 있는지 문의했고, 돌아온 답변은 전환기 강사는 학교 측에서 구해야 한다, 학교와 협의해서 잘 해결하라는 말이었다.

교육청 장학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조정을 요청했다. 장학사는 예술강사는 초단시간 노동자라 월 59시수를 넘겨서는 안 된다, 학교 측과 잘 협의하여 조정해 보라는 답을 주었다. 그래서 제작 수업이 아닌 이론 수업이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면 커리큘럼을 11차시로 조정할 수 있다고 얘기했더니, 수업 내용은 학교 측과 협의해서 정하는 게 원칙이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제작 수업을 원하지 않겠냐고 말끝을 흐렸다. 왜 예술강사는 초단시간 노동자여야 하는지, 어디에 근거가 있는지 문의했더니, 자세한 건 본인도 모르니 교육청 노무사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교육청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노무사와 통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법무팀 노무사에게 연결이 되어 다시 상황을 설명하고, 왜 예술강사 수업은 월 59시수를 넘겨서는 안 되는지, 그런 공문이 내려진 이유가 무엇인지 문의했다. 교육청에서는 그런 지침을 내린 적이 없고 그런 법적 근거도 없다고 한다. 아마 서울시 교육청에서 위탁받은 운영기관의 내부지침에 그런 규정이 있을 거라고, 운영기관에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나는 지칠 대로 지치고 말았다. 학교, 운영기관, 상담센터, 장학사, 교육청 노무사 그 어디에서도 예술강사가 월 59시수를 넘겨서 수업하면 안 되는 규정이 있는지, 왜 예술강사는 초단시간 노동자여야 하는지를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다들 그런 규정이 있다고 들었다, 공문으로 지침이 내려왔다, 그래서 지켜야만 한다, 학교 측과 협의해서 잘 해결해 보라는, 상황과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들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20여 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은 족쇄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은 20여 년 넘게 시행되어 온 대표적인 문화예술 교육 지원사업이다. 예술현장과 공교육을 연계하고, 분야별 전문 인력을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방문 교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문화적 감수성 및 인성·창의력을 향상시키고 학교문화예술교육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취지이다. 더불어 예술인들이 예술 창작 활동과 교육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지원한다는 뜻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20여 년 전, 예술강사 파견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초단시간 근로자로 설계했다고 한다. 초단시간 근로자는 1주간의 소정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로,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휴가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4대 보험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이 빠진 3대 보험만 가입이 된다.

경력 및 소득 등 건강보험 가입내역이 많은 것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직장 건강보험 가입이 안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불편사항을 안겨준다. 고용보험 역시 가입은 하지만, 실제로 그 혜택인 실업급여를 받기는 너무나 어렵다. 초단시간 노동자로 일해서는 실업급여 수급 조건인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의 근로시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나라가 힘들던 시기, 정부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위해 고용안정 지원금을 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예술강사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수고용 직종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어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주휴수당, 퇴직금, 이런 것은 전혀 해당 사항이 없거니와 오직 수업을 해서 받는 강의료가 수입의 전부이다. 그나마 여름과 겨울, 방학 기간을 제외한 10개월 동안만 계약하고 수업을 할 수 있다.

강사료는 어떠한가? 국악강사풀제로 예술강사 제도의 태동이 시작되었던 2000년 최저시급이 1865원이었고, 그때 시수당 강사료는 4만 원이었다. 2022년 최저시급은 9160원이고, 예술강사의 시수당 강사료는 2017년에 3000원 올라 2022년 현재 4만3000원이다. 20여 년 동안 최저시급이 391% 오르는 동안 예술강사의 시수당 강사료는 7.5%, 단 3000원 올랐다.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에서 해마다 현실적인 강사료 상승을 외치고 있지만, 정부와 기관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20여 년째 강사료 동결만을 고집하고 있다.

20여 년을 일한 예술강사라도 전혀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1년 단위의 불안정한 계약직, 월 59시수를 넘겨서 수업할 수 없는 초단시간 근로자의 덫에 걸려 있다. 예술이라는 특성상 개인별, 학급별, 학교별 대상자에 따라 다양한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는데, 그 준비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모든 교육이 그렇듯, 예술 역시 학급당 주 1회 1~2교시 수업만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지금 정부와 교육청의 예술강사에 대한 행정은 15차시 커리큘럼을 무리하게 11차시로 줄여달라고 할 만큼, 교육의 질적인 측면보다 예술강사의 초단시간 노동자성 사수에 더 집중하고 있다.

진정한 학교 예술교육이 이루어지려면?

해마다 재고용되고는 있지만, 이런 연속고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년 단위로 10개월씩 일하는 계약직, 그나마도 초단시간 노동자이다. 비정규직 일자리에서도 최악의 일자리가 아닐까 싶다. 예술강사들이 이런 불안정한 요소들로 인해 온전히 수업에만 전념할 수 없게 만드는 최악의 요인임을 과연 모르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수업과 창작에만 전념하고 싶어도 당장 내일 일을 모르기에 투잡을 뛰어야 하고, 다른 알바 자리를 찾아 헤매는 예술강사들. 말로만 창의적인 예술교육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런 교육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노동 환경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충분한 수업시수와 예산 확보, 필수 기자재의 지원 없는 학교문화예술교육 정책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예술강사는 예술적 능력을 갖춘 전문가이자, 동시에 교육적 역량을 가진 교육자이다. 그러나 그동안 학교 예술교육이 양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해오는 동안, 예술강사는 예술가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현장의 예술가를 학교라는 교육현장에 보내 양질의 예술교육을 하고, 예술가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고 싶다면, 열악하기 그지없는 학교예술강사에 대한 처우부터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강사는 초단시간 노동자여야 한다, 라는 터무니없는 족쇄를 푸는 일이야말로 그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기영 학교예술강사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7,8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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