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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지난 5일 서울 연세대 백양로에서 집회를 열고 "인간답게 살고싶다"며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지난 5일 서울 연세대 백양로에서 집회를 열고 "인간답게 살고싶다"며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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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노동-학생운동 연대의 역사는 깊고 진합니다. 오래전부터 대학생들은 청소·경비노동자분들 투쟁에 연대해왔고, 이 분들은 축제 때 학생들을 위해 요리를 해주시거나 종종 과일 등 먹거리를 나누는 등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제가 다니는 고려대에선 과거 어떻게 노학 연대가 이뤄져왔는지 선배들에게 듣기만 했기에, 2022년 제가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지난 2년간의 공백기 이후, 그간 잠시 멈춘 듯했던 투쟁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특히 저는 지난해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 실태조사'에도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노동자 분들의 휴게실을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이 쉬는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휴게실이 지하에 있어서 장마철이 되면 물이 차오르고, 고인 물이 썩어서 냄새가 나고, 환기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기계실 옆에 있어 소음이 크고, 휴게 공간의 넓이도 6㎡(약 1.8평)가 되지 않는 곳이 존재합니다.

노동자들이 이용 가능한 샤워실도 충분하지 않거나, 있어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치돼 있습니다. 그렇기에 휴게공간 개선이나 샤워실 설치 등의 요구가 얼마나 기본적이고 필요한 일인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 최저임금에 맞춰 시급을 440원을 올려달라는 요구 역시 외환위기 이후 물가 상승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세금 및 공과금 등이 오른 현실을 고려할 때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이 투쟁은 노동자분들의 삶과 생계가 달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장마철엔 물차고, 썩은 냄새나는 휴게 공간... 440원 인상, 고물가 시대의 요구

   
고려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은 지난 4월부터 이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본적 권리를 달라는 요구가 100일을 넘어가는 동안, 학교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여하고 발언하면서, 이제는 본관 농성에 함께하면서, 저는 학교가 왜 이렇게 노동자의 기본적 요구조차도 무시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한 다짐은 이 싸움이 결코 외로운 싸움이 되지는 않게 해야겠다, 노동자분들에게 힘을 보태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청소·경비 노동자분들이 쉬는 시간을 쪼개서 매일 점심시간 집회에 나오고, 체감온도 35도를 웃도는 뜨거운 땡볕 아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러다 혹 쓰러지진 않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학생인 저에게는, 좁게는 학교의 쾌적한 생활, 넓게는 학교 필수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학생의 권리 역시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청소노동자들 덕에 학교가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교 구성원이어야 한다는 이론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학교가 '갑'이고, 청소노동자·학생·비정규 직원 등 학교 구성원들은 '을'일 때가 많습니다.

학생들 역시도 과거 등록금 인상 문제로 학교와 대립해 왔고, 개선된 수업 환경 및 다양한 교과목 개설, 학생 자치를 위한 공간 마련, 기숙사 환경 개선 등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교육권과 생활권을 보장받기 위해 투쟁해왔습니다. 그래서 학생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을
'이라고 봤고, '을'간의 연대는 목소리를 키우고 서로에 힘을 싣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청소노동자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관련 기사: "학생들 청소노동자 고발, 부끄럽다"...수업계획서로 일침 놓은 연대 교수 http://omn.kr/1zm5c ).

투쟁이 99일이 된 지난 6일, 건물 외부에서 발언해오던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의 본관 농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는 연세대학교 재학생 3명이 학내에서 시급 인상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던 청소노동자들을 형사고소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번지면서 논란이 확산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고려대분회가 총무처에 면담요청을 했고 학교 측은 언제든 응하겠다고 답했지만,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학교 측이 본관의 모든 문을 걸어 잠갔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입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바깥에서 집회 중이던 조합원들이 학교에 항의방문을 가려하자 학교 측이 본관 문을 닫아 걸었다고 합니다. 이후 잠시 문이 열렸을 때 본관에 들어간 노동자들은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점거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본관을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농성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뒤 저는 이틀에 한번 꼴로 본관에 방문하는데, 매번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음식도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또 분회장님, 사무장님, 조직부장님 등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학교 청소노동자 투쟁의 역사나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청소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다른 학생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과 대화하면서 파편화돼있고 죽어있는 듯했던 학생사회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밤샘 농성을 하며 느낀 점... 언제 끝날지 알 수는 없지만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본관농성중인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모습. 선풍기와 바닥깔깨가 눈에 띈다.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본관농성중인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모습. 선풍기와 바닥깔깨가 눈에 띈다.
ⓒ 공공운수 서울지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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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밤샘 농성을 하며 본관에서 자기도 했는데, 직접 본관에 12시간 동안 있어보니 투쟁의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낮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나서 지치고, 밤에는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쉽던 노동자들의 농성은, 정말 절실하지 않으면 결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여기에 함께하는 학생들이 매일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밤새 본관을 지키는데, 본관에서 밤을 보낸 친구들은 매번 사안에 대해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라졌다고들 말합니다.

본관 농성 일주일째인 어제(13일), 학내 노동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이 진행됐습니다. 저는 그간 연대하면서 느낀 점을 말했습니다. 증인으로 법정에 나서는 듯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더 서러웠습니다. 약간의 비장함, 그러나 기자회견을 통해 학내 청소노동자 문제가 이슈화·공론화되어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기자회견을 하는 내내 비가 왔지만, 신기하게도 회견이 끝나자 비가 잦아들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열린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노동조건 개선 위해 연대하는 고려대 학생들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열린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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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농성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학교는 요구에 묵묵부답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이심전심으로, 할 수 있는 한 함께하려고 합니다. 저를 비롯한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힘들고 외롭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할 것입니다. 저도 미래의 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명환씨는 고려대 학생으로 인권연합동아리에서 활동 중이며, 9개 학내단체와 학생들 모임인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태그:#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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