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차를 탄 여자> 스틸컷

<하얀 차를 탄 여자> 스틸컷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코로나 이후 영화의 재정의와 재구분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팬데믹 당시 극장 개봉이 힘들다고 판단한 영화들은 OTT를 향했고 이 과정에서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JTBC 방영예정인 2부작 시리즈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먼저 소개되며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극장을 향했다. 시리즈의 극장상영을 통해 더 폭이 넓어진 영화의 재정의를 선보이는 시도다.
 
이 작품은 여성서사에 바탕을 둔 현대판 '라쇼몽'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전설적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대표작인 <라쇼몽>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엇갈리는 진술들을 통해 그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미스터리를 지니게 만든다. 현상을 왜곡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조명하는 스토리적인 묘미와 플래시백을 통한 전개를 통해 연출적인 기교를 선보였다. 이 플래시백은 <하얀 차를 탄 여자>에서도 핵심적인 정보 전달의 역할을 한다.
 
어느 날, 병원 앞에 하얀 차 한 대가 나타난다. 차에서는 두 여자가 내리는데 한 여자는 피범벅이다. 다른 여자는 베스트셀러 작가 도경으로 언니 미경이 칼에 찔렸다며 도움을 청한다.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경찰 현주는 사고 경위를 듣는다. 혼자 사는 도경의 집에 미경은 형부가 될 사람이라며 정만을 데려왔다고 한다. 정만은 도경한테 폭언을 하는가 하면 미경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하얀 차를 탄 여자> 스틸컷

<하얀 차를 탄 여자> 스틸컷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에 자매가 함께 도망을 치려던 중 정만이 미경을 칼로 찔렀다는 것. 처음 본 사이에 형부가 될 남자가 예비처제의 집에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에 현주는 의문을 품는다.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던 현주는 칼에 찔린 여자가 미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에 도경이 부모를 잃은 후 오랜 시간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 정만이 과거 폭행과 납치 전과가 있다는 점도 알게 되며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진다.
 
이 작품은 <라쇼몽>처럼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시점으로 이야기하며 나선과도 같은 미스터리를 선보인다. 여기서 핵심은 진술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소설에는 서술자의 함정이란 기교가 있다. 1인칭 시점을 택한 작품의 경우 사건은 오롯이 서술자에 의해 전개가 된다. 때문에 독자는 서술자가 제공하는 정보만 받게 되고 그 입장에서 작품을 바라본다. 미스터리 장르에서는 이 시점을 통해 반전이나 충격을 가한다.
 
작품에서 플래시백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말해주는 캐릭터는 도경이다. 때문에 관객은 온전히 도경의 진술을 사실이라 받아들이게 되는 구성을 지닌다. 이 구성에 제동을 거는 캐릭터가 현주다. 도경 그리고 칼에 찔린 여자 은서가 말하는 진술에 담긴 의문을 현주가 발견한다. 이는 새로운 진술이 무조건적인 진실일 것이란 추측을 불식시키며 나선을 따라 흐르는 구성을 선보인다. 태풍의 눈이란 진실을 향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구성한다.
 
 <하얀 차를 탄 여자> 스틸컷

<하얀 차를 탄 여자> 스틸컷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런 추리의 매력에 더해진 게 작품과 도경의 소설 제목인 '하얀 차를 탄 여자'이다. 소설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다고 한다. 병원에 나타난 하얀 차부터 소설이 사건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꾸준히 제시한다. 진술에 또 다른 미스터리를 더한 것이다. 소설은 도경이 작가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요소이기도 하다. 작가는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사건이 도경의 작품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설은 여성서사와의 연결점이기도 하다. 현주는 과거 가정폭력을 겪은 바 있다. 때문에 가족의 죽음 이후 고통을 겪는 도경의 모습에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낀다. 이 감정은 현주가 소설로 도경을 만나면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소설을 활용한 또 다른 기교를 보여준다. 소설과 진술 사이의 연결고리다. 현주의 후배경찰은 소설을 읽지 않고 줄거리 요약만으로 파악한다. 이런 모습은 도경의 진술만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 파악하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줄거리 요약은 일직선으로 작품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때문에 그 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다. 소설이 독자를 빠져들게 만드는 건 누군가의 세계를 감정적으로 느끼고 그 중심을 향해가기 때문이다.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나선의 구조를 통해 작가이자 한 여성으로 도경을 이해해 가는 현주의 모습을 그린다. 이를 통해 미스터리 스릴러와 감정 드라마의 요소를 동시에 갖추는 미덕을 선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하얀 차를 탄 여자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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