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 CJ ENM

 
간혹, 불나방처럼 욕망만을 쫓아 삶을 불사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여정은 시비와 호오의 관점을 떠나,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강렬해서 우리의 마음을 훔치기도 한다. 복수귀 오자서의 삶이 그러할 것이다. 초나라 평왕에 가족을 잃은 오자서는 오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지옥으로 만들었으며, 평왕의 시신에 채찍질하여 가루로 만들었다. 복수를 '결심'한 지 16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오나라 부차에 의해 자결하는 허망한 최후를 맞이했으며, 오자서를 토사구팽한 오나라 역시 멸망하고 만다. 복수에 눈이 먼 오자서는 복수가 완성되자 파국을 맞이한 셈이다. 그 또한 이런 최후를 모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감정이 메마른 것도 좋지 않지만, 감정에 잡아먹혀 합리의 이성과 의식을 흐리게 하는 것도 파멸을 부른다. 박찬욱 감독의 특징은 금기를 저지를 정도로 극단적인 감정의 표출이다. '복수 3부작'에서도 각 인물은 복수가 강한 동기가 되어 벼랑 끝으로 질주한다. <올드보이>의 악역 이우진은 복수를 결심한 뒤 15년이 넘게 와신상담했으며, 이는 미도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오대수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복수가 완성된 이우진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으며, 폐인이 돼버린 오대수 역시 복수에 눈이 멀어 이우진을 만나러 가지 않고, 미도 말대로 도피를 택했다면 비밀을 모른 채 행복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미결이어야만 하는 사랑, 불륜
 
지난 6월 29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변사 사건을 담당한 형사 해준이 변사자의 아내 서래를 의심함과 동시에 서서히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불륜이다. 영화 내내 손가락의 결혼반지가 화면에 잡히는 해준은 형사로서 자부심이 강한 유부남이었지만, 운명처럼 첫눈에 반해버린 변사자의 아내 서래에 대한 마음이 커져, 형사로서의 윤리도 남편으로서의 윤리도 저버리고 만다.
 
부부들은 왜 불륜이라는 악덕을 저지르고 말까. 그것은 관계가 완성되고 나면 권태를 느끼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됐다"는 극 중 서래의 말처럼,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지만 결국 사랑의 끝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준과 서래는 서로에게 끌렸던 것이며, 결국 그들의 사랑도 완성되지 못하고 미결로 귀결된다. 운명적으로 사랑이 꽃피웠고, 필연적으로 사랑이 지고 만 셈이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만을 남긴 채.
 
불륜은 진정한 사랑으로 용납되거나 거듭날 수 없기에, 이포의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안개처럼 해준과 서래는 모호한 사랑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든다. 그래서 둘은 사건이 미결로 남아야 지속될 수 있는 불안한 관계이며, 관계를 지속하길 원한 서래는 증거가 담긴 자신의 핸드폰을 돌려주며 해결을 미결로 돌리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섣불리 하지 않으며, 스킨십 또한 직접적인 키스 대신 립밤을 통한 간접키스로 대신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불륜을 옹호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랑이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때는 완성된 후가 아닌 미결의 순간이라며, 사랑의 역설을 그려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즉, 박찬욱 감독은 불륜은 미결로 남아야만 하며, 영화의 미장센 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던 불륜의 끝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보다 쉬웠던 그리고 저조했던 영화
 
영화를 관람하기 전 시사회 등 관람평에서 상업영화로서 대중성에 신경 썼다는 감독의 말과 달리, 영화가 의외로 난해하다는 반응에 무척 노심초사했다. 개인적으로 예술영화가 취향에 맞지 않기도 했고, 특히 로맨스 장르는 풋풋하고 달달, 애절한 내용을 좋아하기 때문에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씁쓸하고 찝찝한 기분이 남는 로맨스 영화는 무슨 재미로 보는 것인지 공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보다 난해하거나 늘어진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사회 평에 지레 겁먹어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거나 아니면 시점을 뒤죽박죽으로 장면을 섞는다거나 이런 식일 줄 알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숨겨진 장치나 메타포 등 놓친 부분이 많기는 하겠지만, 서사 전개 측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내용 혹은 각 인물의 행동이나 동기를 알 수 없었던 지점은 딱히 없었다.
 
해준이야 초밥을 사줄 때부터 서래에게 진작 반했다는 것은 눈치챘고, 서래는 해준을 이용하는 것인지 정말 사랑한 것인지 긴가민가해 마지막 호미산에서 해준이 유골을 뿌릴 때 미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결국 키스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며, 결말에서도 진범이 누구인지 서래는 어떻게 되는지 그 최후도 다 알려줬으니 말이다. 서래의 본심도 적당히 빠른 전개와 함께 흥미로운 서스펜스로 작용했지, 답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도 관객 수 등 반응이 저조한 이유는 민감한 불륜 소재의 한계, 그리고 스릴러와 로맨스의 애매한 조합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별점을 낮은 순으로 봤더니, 대부분 불륜을 혐오하는 관객들이 낮은 별점을 매겼다. 박찬욱 감독도 이를 의식해서 최대한 로맨스를 배제한 거 같은데, 오히려 그런 소극적인 태도가 불륜에 관대하면서도 로맨스를 기대한 관객과 조금의 불륜도 용납하지 않는 관객 모두를 놓치는 악수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게다가 형식적인 수사극은 스릴러 장르의 팬도 실망하게 했을 수 있다. 외에도 인물들이 기능적으로 느껴졌거나, 두 주인공의 감정선이 뜬금없거나 빈약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서래, 중국어 화자 캐릭터의 의의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 CJ ENM

 
개인적으로 배우 탕웨이의 한국어 발음은 열심히 연습한 것은 알겠으나, 집중해야 해서 피로한 부분도 있었고 알아듣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어가 어눌한 캐릭터 설정, 즉 '언어'는 극 중에서 핵심적인 역할로 작용했다. 한국어가 어눌했기 때문에 '붕괴', '마침내' 같은 문어체 대사가 어색하지 않게 등장할 수 있었고, '사진'과 '말씀'이라는 관념의 대비가 분명해지고 그것으로 형성된 주인공들의 동질감도 좋았다. 또한, 언어적 한계로 인해 서로의 본심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다가 만나는 것도 흡사 이들의 불륜 관계와 궤를 같이했다.
 
그리고 중국어 화자 캐릭터 덕분에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가 자연스럽게 활용될 수 있었는데, 이들 소품을 활용한 사랑의 방법도 이포의 안개처럼 과감해지는 대신 서서히 젖어 들고 스며드는 사랑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느꼈다. 마음을 심장으로 잘못 통역하는 것처럼 통역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드라마가 애틋했다. 예를 들면, 통역기에서 나오는 기계음은 그저 건조한 언어였지만, 서래가 중국어로 말할 때에는 보다 격정적으로 들리는 등 뉘앙스의 간극이 인상적이었다. 스마트폰을 바다에 버리라는 해준의 말이 의도와 다르게, 서래에게는 자부심 강했던 형사가 그 신념을 포기한 대신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고 이해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즉, 해당 전자기기들은 사랑의 창구로써 둘의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 셈이다. 극 중에서는 총 두 개의 스마트폰이 등장한다. 하나는 서래의 범행이 담긴 서래의 스마트폰이며, 하나는 해준의 불륜 사실이 담긴 두 번째 남편의 스마트폰이다. 그리고 해준은 첫 번째 스마트폰을 버리라며 사랑을 고백함과 동시에 관계를 끝냈고, 서래는 첫 번째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관계를 돌리고 싶어함과 동시에, 두 번째 스마트폰을 버려 해준을 지켰다. 나아가, 서래가 녹음본을 들으며 사랑을 되새겼듯, 스마트폰은 사랑의 증거물이었다.
 
유쾌한 분위기와 선한 얼굴의 배역들
 
앞서 왕가위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와 늘어지지 않고 빠른 리듬감의 편집, 그리고 탁월한 사운드 덕분에, 민감한 소재를 다뤘음에도 나름 즐겁게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예컨대, 집에서 해준이 권총집을 차려고 허리띠를 풀 때나 정겹게 문자메시지를 나눌 때, 기도수의 유튜브와 단서를 추적하며 서래의 범행을 재연할 때 등 중간중간 코믹한 장면들이 긴장을 환기해주기 적절했다. 서래가 웃는 것을 우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호미산 절벽에서 유골을 뿌릴 때, 아내에게 담배 냄새와 서래의 성별을 바꾼 것을 들켰을 때 등 수사극으로써의 서스펜스도 몰입을 도왔다.
 
이와 더불어, 주연 배우인 박해일과 탕웨이의 강점인 선하고 꼿꼿한 인상도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불륜에 대한 거부감을 중화시켜주기도 하고, 해준이 서래의 범행을 알아채고 형사로서의 자부심이 붕괴했다며 토로할 때의 그 참담한 심정이 담담하게 전달됐으며, 서래 또한 상대방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팜므파탈적인 모습과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형편없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순애적인 면모가 공존하는 매력이 돋보였다. 말씀보다는 사진을 택한 것처럼 둘은 항상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는 꼿꼿한 사람이란 동질감이 전해졌다.
 
결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
 
결심이란 곧 '선언'이다. 결심만으로는 그 어떤 효력도 없으며, 작심삼일처럼 선언에조차 이르지 못하고 내심에 머무를지 모른다. 게다가 어떤 것을 선택해도 행복해질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한다면, 그 어떤 결심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 설령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고 말이다. 오자서가 그러했고, 오대수와 이우진이 그러했고, 해준과 서래가 그러했다. 그들의 결심이 우여곡절 끝에 결과를 도출했음에도 그들을 기다린 것은 비참함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에 이른 과정이 무의미했다고, 혹은 아름답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불륜이라는 소재가 민감할 수는 있겠으나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극대화하려면 이들의 관계가 불륜이었던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부적절한 관계였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내려도 파국만이 기다리는 딜레마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불행한 최후에 다다르기 전 미결의 사랑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이 서로 어긋나는 것을 바라보며,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함과 여운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서래가 해준에게 미결로 남고자 선택했을 때, 둘의 사랑은 비로소 영원해졌다.
 
사랑하는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서래는 실은 해준과 헤어질 마음이 없었을지 모른다. 서래의 마지막 결정과 그 목적이, 끝내 자신을 택하지 않고 이포로 도망간 해준에게 미결이라는 주홍글씨를 남겨 복수하려는 것인지, 혹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해준이 자신과 엮이지 않도록 구원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양쪽 모두였던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해준에게 서래의 부재는 그가 죽음이라는 완결을 맞이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깊숙이 사무치는 사랑이자 아픔으로 남게 될 것은 자명하다.
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 멜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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