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story <책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story <책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story

 
사람에게 가장 무섭고 피하고 싶고 말하기 꺼려지는 것, 바로 죽음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고 반드시 겪게 되는 것 또한 죽음이다. 우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했을 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며, 누구의 곁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을까.
 
'웰다잉(Well-dying)',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좋은 죽음,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7월 4일 방송된 tvN story 프리미엄 강독쇼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에는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서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데이비드 재럿)을 소개했다.
 
저자는 40여 년간 영국, 캐나다,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내과 의사이자 노인의학 전문의로 활동했다. 의료인으로서 현장에서 수많은 직간접적인 죽음을 체험하며 저자는 개인에서부터 사회와 정부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비해야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은 이러한 저자의 성찰과 결론이 담겨있는 책이다.
 
인생 100세 시대는 모든 이들의 염원이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인생의 끝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본문에는 '과거의 사람들은 죽음과 노화를 목격하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이제 우리 사회는 노화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집단적으로 노화를 부인하는 상태다. 사람의 수명이 150세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 미래학자들의 말은 틀렸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냉정하지만 노화와 죽음이라는 인간의 예정된 운명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려는 심리를 비판하는 대목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평균적인 삶도 평균적인 죽음도 없으며, 따라서 다음에 생각할 것은 최빈도 죽음이다. 가장 자주 발생하는 죽음을 뜻한다. 영국에서는 자신의 집보다 병원에서 죽는 경우가 많다. 남자라는 70대 후반, 여자라면 80대 정도의 고령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의료인으로서 수십년간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저자는 가장 흔한 죽음에서부터 '최신식'의 죽음까지 인간의 다양한 마지막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죽어가는 모습도 대부분 이와 크게 다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고령이 되어 몇 달 혹은 몇 년 전부터 서서히 건강이 악화되고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니게 될 것이다. 몸의 상태는 좋은 날과 나쁜 날을 반복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나쁜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시점에 이르면 우리는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에 직면한다.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중환자가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 침대에서 잠든 채로 보내고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여려 종류의 진통제가 투여된다. 가족들이 환자 본인을 대신하여 치료방법을 결정하고, 환자의 옆에서 정신적-체력적으로 고갈된 상태로 가끔씩 환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인간의 몸에서는 생명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증명하듯 거품과 가래, 배설물이 흘러나온다. 1시간쯤 지나면 병원의 수련의가 체크목록을 들고 나타나 혼이 빠져나간 육신의 호흡과 심장박동, 동공반사 등을 체크하고 건조하게 공식적인 사망 판정을 내린다. 간호사가 망자의 몸을 정돈해주고 병원 운반담당자들이 시신을 시트에 덮고 영안실로 옮겨 그날 사망한 다른 시신들과 함께 냉동고에 안치한다.

바로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최빈도 죽음이다. 영국 병원에서 한 사람이 사망하는 전형적인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한국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죽음은 나름의 속도로 천천히 다가오지만 몇 날, 몇 주, 몇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
 
 tvN story <책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story <책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story

 
세상의 모든 죽음은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으로 나뉠 수 있다. 100세 가까이 장수하며 가족과 즐겁게 보내다가 어느 따사로운 봄날에 잠들 듯 편안하게 영면을 맞이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최후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죽음은 흔하지는 않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른 가수 빙 크로스비는 70대의 나이에 지인들과 즐겁게 골프를 치다가 클럽하우스를 몇미터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고통없이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에서는 좋은 죽음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좋은 죽음이란, 오랫동안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다가 맞는 죽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신이 매일같이 스스로 해온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한 삶을 지키다가 떠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쁜 죽음의 예는 무엇이 있을까. 남들이 보기에 성공했다고 할 만한 삶을 살았던 남자는, 조금의 손해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정 때문에 소송에서 패소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본인은 물론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분노하는 모습만을 기억에 남겼으니 안타깝고 나쁜 죽음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왜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가. 레너드 헤이플릭이 제시한 '헤어플릭 분열한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세포는 약 50회 정도의 분열 이후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사멸한다. 나이가 중장년이라면 이미 세포분열 한계의 반환점을 지났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무한분열하는 세포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암세포다. 그래서 세상에서 '불멸이란 암세포의 전유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한국인의 사망원인 1순위는 암이었고,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고의적 자해, 당뇨, 알츠하이머, 간질환, 고혈압, 패혈증 등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특히 치매가 2020년 들어 순위권 안으로 진입했고 여성사망률 5위까지 상승한 것이 눈에 띈다. 인간의 평균기대 수명이 높아지면서 노인성 치매의 비중도 높아진 것.
 
치매에 걸린 사람은 모든 기억과 통찰력과 감정을 잃은 채 서서히 죽어간다. 저자의 어머니도 죽기 전에 치매 판정을 받았고, 죽기 전에는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저자의 가족들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이유는. 육신이 세상을 떠나기 오래 전부터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저자는 본문에서 '기억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망자란 주로 장기보호시설에서 앉아있는, 우리 기억 속에서 지워져간 사람들을 뜻한다'라고 서술했다.
 
죽음의 종류에는 느린 죽음과 빠른 죽음이 있다. 치매나 암투병처럼 오랜 시간 신체적-정신적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느린 죽음이라면, 심정지같은 돌연사는 빠른 죽음에 해당한다. 무엇이 더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일지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다.

선택지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고통이 덜한 빠른 죽음을 더 선호할 것이다. 현실에서는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온 경우 심폐소생술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부분의 경우 기적적으로 살아난다고 해도 뇌손상이 올 가능성이 높고, 돌연사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빠른 죽음은 죽는 당사자에게는 너그러울지 몰라도,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오랫동안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것보다도 훨씬 잔인한 죽음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죽음은 그를 둘러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일이다. 처음에는 미칠 듯이 슬퍼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적응하여 또다시 일상을 살아나가야만 한다.
 
평소의 우리 대부분은 굳이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과 질병, 고통은 결국 그 역시 우리 삶을 구성하는 일부라고 설명한다. 그래야 오히려 갑작스러운 죽음의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tvN story <책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 story <책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 story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 정찬영(전미도)은 말기 암판정을 받고도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남은 시한부 생만이라도 행복하게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친구들은 그녀를 위하여 부고리스트를 브런치리스트로 바꿔서 서프라이즈로 생전 장례식을 마련해주고,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죽음을 능동적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물의 모습을 통하여, 시청자들에게 눈물과 신파를 넘어선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명장면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목격자이자 관찰자였던 의사들은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질까. 저자는 '의학에서 자명한 윤리원칙은 의사는 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환자를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의사들에게 그들의 환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기를 원하냐고 묻는다면 흥미로운 훈련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인 재럿의 선배 의사였던 폴은 뇌출혈 진단을 받은 이후 생전유언장을 통하여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선택했다. 좋은 죽음을 위하여 생명의 자기결정권을 사용한 사례에 해당한다. 저자 역시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위하여 법적 효력이 있는 서류 작성을 강조하며 소망진술(생전 진술서)를 통하여 자신의 원하는 죽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한국에서도 19세 이상 성인이고 전문가들과 상담 절차를 거쳐서 유언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작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물질적 유산만이 아니라 사후의 장례방법과 절차,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등 평소의 생각과 철학을 정리한 '정신적 유산'도 남길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의지에 따른 존엄한 죽음을 원하지만, 현행 법규정상 안락사는 극히 일부 국가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명배우 알랭 들롱은 건강 악화로 스위스에서 노년을 보내며 생전에 안락사를 스스로 결정하여 화제가 됐다. 들롱은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안락사나 의사조력사망에 동의한다는 여론이 무려 7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조사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미래세대인 2030년생의 기대수명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앞으로의 세대는 더 긴 인생을 살아갈 확률인 높아진 만큼, 살아가는 순간만큼이나 건강하고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저자는 '인생은 불공평하고 변덕스럽지만 동시에 소중한 것이며 결코 당연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은 굳이 미리 준비해야만 하는 것일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겪는 경험이지만 결국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삶의 마지막 엔딩인 죽음을 제외하고 나머지 절반뿐인 삶만을 집착하고 산다면, 우리의 인생은 무언가 결여되어 있지 않을까.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필요한 경제적 안정-신체-정신적 건강들은 행복한 죽음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건들이다. 유 교수는 이에 덧붙여 병원을 자주 방문하는 것과, 심리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 등,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것도 소홀히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죽음에 대하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번쯤 터놓고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거나 금기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죽음을 자연스럽게 공유할수록 자신의 일상의 소중함을 더 자각하고 '풍요로운 삶'과 '품격있는 엔딩'을 추구하게 만든다. 노인의학 논문에서 마지막을 앞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방식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유 교수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맞이하라"고 제안했다.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지커봐야 했던 유 교수는 "준비된 죽음이 인생의 품격과 품위,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고 주장했다.
 
가수 폴 매카트니는 "당신이 받는 사랑은 당신이 주는 사랑과 같다(And in the end, the love you get is equal to the love you give)"고 이야기했다. 우리 삶의 마지막이란, 어쩌면 우리가 주변에 베푼 사랑과 비례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 충실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가치있는 삶의 이유를 찾는 과정을 통하여, 마지막 순간에는 스스로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이라고 돌아볼 수 있는 삶이라면 훌륭하지 않을까.
책서재 웰다잉 이만하면괜찮은죽음 사전유언장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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