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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현행 주52시간제를 월단위로 개편하는 등 유연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주52시간제 도입 이전 밤샘근무 등 열악한 근로 조건에서 일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다른 현장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밤새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그야말로 방송국은 밤낮없이 돌아갔다.
 밤새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그야말로 방송국은 밤낮없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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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 나는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밤을 샜다. 일주일에 두 번 아침 생방송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 방송을 맡고 있었는데, 그래서 방송 전날부터 당일 아침방송까지 밤을 새며 일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러니까 한 번의 방송을 위해 1박 2일 일을 하는 시스템이었던 것. 그건 나뿐만이 아닌, 피디 2명과 작가 1명이 한 조를 이뤄 일주일에 두 번씩 방송을 하던 사람들 모두에게 그러했다.

밤새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그야말로 방송국은 밤낮없이 돌아갔다. 편집을 하다 무언가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담당자가 새벽 1시 건, 3시 건 방송국으로 불려 나오는 일이 허다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일 다시'가 아니라 밤새 해 놓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밤을 새며 생방송을 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긴장을 주는 일이어서 생각지 못한 사고를 야기하기도 하는데, 모든 것이 잠과의 싸움 때문이다. 한 번은 피디가 편집이 늦게 끝날 것 같다며 잠깐 눈이라도 붙이고 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나도 모처럼 다른 일은 일찍 끝내 놓은 상황이라, 집에 가서 씻고 새벽 2시부터 4시까지만 자고 와야 겠다는 생각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집에서 편안히 등을 붙이고 자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2시간이나 더 자버린 것이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부재중 전화만 6통. 새벽 6시가 다 돼서 눈을 뜬 나는 잠옷에 윗옷만 걸치고 머리를 질끈 묶고는 정신없이 방송국으로 뛰어갔고, 방송이 나가는 중에 실시간으로 원고를 넘기며 어찌 어찌 방송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런 아찔한 경험을 한 뒤로는 다시는 방송 전날 집에 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태풍 '매미'가 들이 닥쳤을 때는 밤을 새워 재해 특집 아침 생방송을 제작하고, 다시 낮 시간 전국 생방송을 연이어 만드느라 30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한 적도 있다.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일을 했지만, 당시엔 웃고 넘기는 에피소드쯤으로 여겼다. 다들 그렇게 일을 했으니까.

사흘 밤샘 촬영이 '낭만적 일화'처럼 떠돌던 그 시절

밤을 새며 일한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고되고 힘든 것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것이 부당하다거나 항의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방송 현장에서 밤샘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서울 방송사들은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선 사흘 밤을 새면서도 촬영했다는 일화는 하나의 낭만적인 일화처럼 돌고 있었고, 밤을 새고 쪽잠을 자며 일하는 것 또한 일상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강도 높은 장시간의 노동은 낭만이 아니라 야만에 가깝지만, 그것을 알아차릴 사고의 성숙은 없던 시절이었다.

정규직인 피디들을 비롯해 모든 프리랜서 제작진들이 함께 그 노동의 수고를 나누며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 이면에는 분명 다른 것이 있었을 것이다. 정규직에게 지급되었을 추가 근무수당이 프리랜서인 나에게는 없었고,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지던 휴가가 프리랜서인 나에게는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방송 노동 환경도 꽤나 바뀌었다. 방송 제작 현장의 과중한 노동 현실이 사회문제화 되고, 밤샘작업과 장시간 노동시간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방송 제작의 특성상 밤샘 작업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으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는 아니게 됐고, 밤샘 근무가 있다면 이후 보장된 휴식 시간도 제공되는 등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방송 제작 현장도 어느 정도 노동권이 존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다시 주 52시간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거론되고 있다. 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두고 주판알을 튕겼을 것이다. 당장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도 주 52시간제가 개편되면 그 동안 시간 외 근무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던 월 1회 휴무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앓는 소리를 했다.

주 52시간제 유연화, 노동자의 삶도 유연하게 만들까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방송 제작 현장도 어느 정도 노동권이 존중되기 시작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방송 제작 현장도 어느 정도 노동권이 존중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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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가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방송 현장도 다르지 않다. 다수의 스태프들은 방송사가 정하는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의 정규직 제작진들이 주 52시간제를 적용받으면 당연히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도 그 스케줄에 따르게 된다. 하지만 사업장에서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면, 그 이하 프리랜서를 포함한 모두가 그 노동 시간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방영중인 한 지상파 드라마는 10여 명의 스태프가 '근로기준법'에 맞는 근로시간과 휴게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자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한 사례만 보더라도, 주 52시간이 시행중임에도 아직 현장에서의 정착은 완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또 다시 노동시간에 대한 개편이라니... 그 틈바구니에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적으로 복지와 인권에 관한 정책은 한 번 시행이 되면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진보가 아닌 퇴보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제 개편, 아직은 개편 논의 단계이며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라지만, 노동의 유연화가 과연 노동자의 삶 또한 유연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떤 노동정책이 나오건, 더 이상 '사람 갈아 만드는 것이 방송'이란 말이 씁쓸한 우스갯소리처럼 떠돌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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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지상파 20년차 방송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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