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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오늘날까지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술사조는 인상주의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작품에 감도는 화사한 빛과 색감, 따뜻한 분위기는 관람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 인상주의 미술의 대표작으로 흔히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생 라자르 역'(1877), '루앙 대성당' 연작(1892~1894), '인상, 해돋이'(1872), '수련'(1920~1926),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선상 위의 점심 식사'(1880-1881)와 '피아노 치는 소녀들'(1892) 등을 떠올린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주의 전시실에는 늘 발 디딜 틈 없이 관람객이 넘쳐나고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의 커다란 수련 작품을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 지베르니(Giverny)에는 모네의 흔적을 만나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처럼 인상주의 화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성 작가들은 뒤늦게 알려진 편이다. 오늘날 알려진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와 메리 카삿 외에도 에바 곤잘레스, 마리 브라크몽 등이 있었으나 여성들은 역사에서 꾸준히 누락되었다.

당시 많은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교육을 받아도 결혼 후에 전문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웠다. 여성 작가들에게 남편의 존재는 때로 방해 요소였다. 대표적인 인상주의 여성 작가 3인에 꼽히는 메리 카삿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마리 브라크몽 역시 화가였던 남편이 아내를 적극적으로 누락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에 비하면 베르트 모리조는 남편인 외젠 마네, 그의 형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가족이자 동료 작가로서 비교적 좋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모리조가 마네의 그림에 모델로 많이 등장했기에 '마네의 뮤즈' 혹은 '마네의 제비꽃 여인' 등으로 불리며 그의 위치는 제한되었다. 이는 여성을 '어떤 남자의 여자'로 귀속시키려는 가부장적 관습 때문이었다. 정작 모리조는 결혼 후 전시회에 참여할 때도 '베르트 마네'가 아니라 '베르트 모리조'로 참여했다.
 
발코니의 여자와 아이(Woman and child on a balcony) 캔버스에 오일, 61x50cm, 1872
 발코니의 여자와 아이(Woman and child on a balcony) 캔버스에 오일, 61x50cm, 1872
ⓒ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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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누락된 여성들 다시 보기

베르트 모리조가 다루는 작품의 공간과 다른 남성 작가들이 다루는 공간을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남성 화가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는 술집, 사창가 같은 유흥업소부터 기차역, 주식거래소, 바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면 여성 화가들의 작품에는 상대적으로 그의 집이 자주 등장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이와 함께 누워있는 침대 위, 아이를 목욕시키는 욕실, 오도카니 서 있는 부엌, 바깥세상을 내다보는 테라스, 빨래가 널려있는 뒷마당, 가끔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거나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는 순간에도 옆에는 아이가 있을 때가 많다. 

그의 인상주의는 생활 속에 있었다. 당시 상류층 여성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발코니의 여자와 아이(Woman and child on a balcony)'(1872)는 집 발코니에 서서 집 밖을 바라보는 한 모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집 안에서 아이를 돌보던 어머니가 잠시 발코니에 서서 바깥 구경을 하는 모습이다. 바로 베르트 모리조의 언니 에드마 모리조(Edma Morisot)와 그 딸이다.

베르트는 두 명의 언니와 함께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랐다. 첫째 언니 이브 모리조는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그림 '테오도르 고비야르 부인의 초상'(1869)의 모델이다. 둘째 언니 에드마 모리조는 베르트와 특히 가까웠다. 두 사람은 풍경화로 유명한 화가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 Baptiste Camille Corot)에게 교습을 받았다. 코로는 모리조 자매에게 야외의 빛을 화폭에 담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가르쳐주었고 다른 화가들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매들(The Sisters) 캔버스에 오일, 52.1x81.3cm, 1869
 자매들(The Sisters) 캔버스에 오일, 52.1x81.3cm, 1869
ⓒ 위키미디어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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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으로 물리적 거리가 멀어졌어도 편지를 나누며 교류하고 평생 가까이 지냈던 자매의 관계는 서로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베르트는 언니 에드마와 조카들을 여러 작품에 남겼다. '자매'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열쇳말이다. 베르트의 '자매들(The Sisters)'은 에드마가 결혼하던 1869년의 작품이다. 그림 속 자매는 똑같은 머리 모양에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마치 서로의 거울상처럼 보일 정도로 닮았다.

또한 에드마가 그린 '화가의 자매, 베르트의 초상'(1863)에서는 젊은 시절 베르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20대 초반 베르트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 살롱에 출품하며 화가로 경력을 쌓던 에드마는 안타깝게도 결혼과 동시에 작업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대신 동생인 베르트가 화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항상 지지하며 동생의 그림에 모델이 되어 주었다.

여성을 누락시키는 역사 속에서 가장 쉽게 여성을 찾는 방법은 우선 남성 작가들의 아내, 연인 혹은 모델로 알려진 여성을 '다시 보기' 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그 여성과 가까웠던 친구나 자매로 시선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 공식은 나를 실망시킨 적 없다.

여성 작가 주변에는 반드시 또 다른 여성이 있다. 역사에서 여성의 누락은 단지 한 개인을 누락시키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의 관계를 누락시켜 남성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도록 이끈다.

덧붙이는 글 | 글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예술과 정치, 그리고 먹을 것을 고민하는 글쓰기와 창작 활동을 한다.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2년 7-8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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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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