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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북 도발 관련 국가안보 점검 당·정·대 협의회'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북 도발 관련 국가안보 점검 당·정·대 협의회"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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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당·정·대통령실 협의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방개혁 2.0 완전 백지화'와 '정신전력 강화'를 주장했다.

3성 장군 출신의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협의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2.0에 명시돼 있던, 지난 5년간 추진한 계획은 '국방 소실 계획'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국방개혁 2.0의 완전한 백지화를 주장했다. 2018년 7월 발표된 국방개혁 2.0은 ▲군구조 ▲국방운영 ▲병영문화 ▲방위사업 ▲국방예산 등 다섯 분야의 국방개혁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은 국방부에 정신전력 강화도 주문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협의회 종료 뒤 기자들과 만나 "국방력, 즉 무기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전력의 강화가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서, 국방부에서 거기에 대해서 지금 준비를 하고 시행을 하고 있다는 답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권 원내대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무기 수준과 양에서 엄청난 비대칭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건 오로지 정신력의 승리라고 본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협의회는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라 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함께 국가안보를 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과연 협의회에서 나온 한 의원과 권 원내대표의 이 같은 주장들이 '국가안보' 측면에서 도움이 될까? 머리를 갸웃거리게 된다. 특히 이들이 전면 백지화를 외친 '국방개혁 2.0'에는 방위사업이나 군구조 등 외에도 '병영문화'처럼 병사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그들의 발언이 더욱 우려스러웠다. 

월급 200만 원 공약 파기해놓고... 불난 집 부채질?
 
국방부의 <국방개혁 2.0 E-book>에 병영문화 분야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
 국방부의 <국방개혁 2.0 E-book>에 병영문화 분야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
ⓒ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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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국방개혁 2.0가 발표된 이후 가장 변화를 실감한 이들은 다름 아닌 현역 병사들이다. 병 봉급의 인상, 평일 일과 후 외출제도, 휴대전화 사용 허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국방개혁 2.0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는 바로 그 '국방개혁 2.0'에 대해 한 의원은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물론 한 의원이 직접적으로 이러한 정책들의 하나하나 짚으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백지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5년간의 군 개혁을 두고, 단순히 '이전 정부가 한 일'이라며 배척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취임 즉시 이병부터 월급 200만 원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재정 상황을 이유로 들며, 2025년 병장 기준 봉급과 자산형성 프로그램을 통해 월 200만 원 정도를 수령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사실상 공약을 파기한 셈이다. 이에 대해 지난 5월 11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 사과했을 뿐 정부 차원이나 윤 대통령의 사과는 없었다. 이런 상황인 터라, 한기호 의원의 주장이 '불난 집에 부채질'이나 다름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의원은 지난 2013년 임신 중 과로로 사망한 여군에게 "그분에게도 상당한 귀책사유가 있다"고 말해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는 "군수품을 자꾸 새것으로 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수통이 구멍 나지 않고 사용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50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무슨 상관인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전력을 살펴보면, 왜 한 의원이 국방개혁 2.0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 의원이 구시대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이미 선진화된 우리 군의 모습들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안보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해만 될 뿐이다.

2차대전 일본군이 생각나는 권성동의 '정신전력 강화'

권성동 원내대표의 '정신전력 강화' 주장도 구시대적임은 매한가지다. 정신력만 강조하는 군대는 역사적으로도 패망의 길을 걸었다. 대표적인 예가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이다. 일본군 장교 츠지 마사노부는 "물질력은 한정되어 있는 데 반해 정신력은 무한하다"며 정신력이 강한 일본군이 미군에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국방력보다 정신전력의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권 원내대표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권 원내대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로 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항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까닭이 오로지 정신력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정말 그러한가.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만성적인 부정부패, 부실한 보급체계, 지휘계통의 문제, 푸틴의 지나친 간섭 등 총체적으로 문제투성이다.

물론 양군의 정신력도 차이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정당성 없는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군대'와 '조국을 침략자로부터 지키겠다는 군대'에서 비롯한 것이지, 국가가 정신전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라 보기 힘들다.

한편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장관 후보자이던 지난 4월, "군심을 한 방향으로 모으겠다"는 발언의 의미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야전 부대 장병들이 가치관이나 정신세계에 있어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게 일반적 평가"라며 "장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로 갖게 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이 장관은 권 원내대표의 정신전력 강화 주장에도 공감을 표하며 '정신전력 강화를 준비·시행하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방개혁을 원점으로 돌리고 정신전력을 강화하는 것이 정말 대한민국을 위한 최선일까. 그보다는 어떻게 장병들의 생활 여건을 더 개선할지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군심을 모으고 장병들의 애군의식을 고취하는 방법이란 사실을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태그:#국민의힘, #한기호, #권성동, #이종섭, #국방개혁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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