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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국내 소주업계 1위 하이트진로의 이천·청주 공장이 봉쇄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소속의 노조원들이 지난 3월부터 일부 물량에 대한 운송을 거부해오다가 이날부터 총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노조원들은 ▲운송료 30% 인상 ▲공병운임 인상 ▲공회전 비용 지급 ▲차량 광고비 월 50만 원과 세차비 지급 ▲대기 비용 지급 ▲휴일 근무 운송료 150% 지급 등을 하이트진로 측에 요구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들은 노조원들과 경찰의 충돌이나 소주 출고에 차질이 생겼다는 등의 소식만 전하고 있을 뿐, 정작 파업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운송노동자들은 왜 물류 운송을 막아선 걸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6일 오후 하이트진로 청주공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만난 김아무개씨는 30년 동안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일을 맡아 해 온 노동자로, 지난 3월 원청업체인 수양물류 소속으로 화물연대에 가입했다. 수양물류는 화이트진로의 화물운송 위탁회사이다. 일흔의 나이에도 그는 며칠째 도로변에서 파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래는 김씨와의 일문일답.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일을 30년간 한 김아무개씨. 일흔의 나이에도 그는 며칠째 도로변에서 파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일을 30년간 한 김아무개씨. 일흔의 나이에도 그는 며칠째 도로변에서 파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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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트진로 일을 30년간 했다고 들었다. 오래 일한 만큼 파업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나도 내가 파업을 할 줄 몰랐다. 데모는 생전 생각도 해본 적 없다. 뉴스에 데모하는 거 보면서 '밥 먹고 할 짓들 없나'하고는 빨갱이 취급하고 그랬다. 그런 내가 오죽하면 이 나이 먹고 파업을 하고 있겠나. 도저히 지금 임금으로는 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거리에 나서게 됐다."

- 회사 측에서는 3년 단위로 운송단가 인상과 함께 유가연동제를 시행해왔다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다. 2008년 8월에 하이트진로 측과 운송노동자들 간의 임금 협상이 있었다. 그게 회사 측과 운송노동자들 간의 마지막 협상이었다. 하이트 진로가 얘기하는 3년 단위 인상은 협력업체 상조회장들만 따로 모아서 일방적으로 도장 찍은 거다. 그게 어떻게 임금 협상인가.

또 지금 최저시급만 해도 얼마가 올랐나. 2008년 3770원이었는데 올해 9160원 아닌가. 2008년 당시 소주 한 박스가 333원 받았다. 올해 3월에 326원 받았고 4월에는 343원 받았다. 이게 운송료가 오른 게 아니다. 지금 유가연동제를 3개월 단위로 적용한다. 1월부터 3월까지 평균 유가가 100원 오르면 운송료 3% 인상, 100원 내리면 3% 인하다. 2008년 운송료에서 딱 유가연동제만 적용된 가격이다."

- 수양물류 소속 운송노동자 중 30%만 파업에 참여했다.
"홍천·전주·마산공장은 회사가 제시한 운송료 5% 인상과 1인당 1년 100만 원 지급에 도장을 찍었다. 그들이 70%고 청주랑 이천공장이 30%다. 숫자만 따지면 우리가 이상한 놈들이다. 그런데 우리도 다른 공장들과 돈을 똑같이 주면 회사 측과 같은 조건으로 당연히 합의한다."

 - 청주·이천공장은 운송료를 덜 받는다는 얘긴가.
"그렇다. 청주·이천공장과 다른 공장의 운송료 지급이 다르다. 같은 소속의 노동자가 같은 브랜드의 소주를 싣고 같은 거리를 가는데 우리는 38만 원, 마산은 50만 원 받는다. 마산공장이 30% 이상 더 받는다. 그러니 5%만 인상해도 생계에 지장이 없다. 우리는 다르다. 38만 원 받고는 유류비, 톨게이트비, 차량 감가상각비 따지면 일할수록 적자다.

운송료만 차별받는 게 아니다. 화물차 차종이 11톤, 18톤, 24톤 이렇게 3종이 있는데 18톤은 11톤에 비해 3% 낮게, 24톤은 11톤에 비해 5% 낮게 운송료를 지급받는다. 다른 공장은 차종별로 차등이 없다. 왜 청주·이천공장만 이런 불합리한 차별을 받아야 하냐는 얘기다. 2008년 회사와의 마지막 협상 때 회사 측에서 국제유가가 폭등해 회사가 힘드니 딱 2년만 차등을 두겠다고 했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사니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김씨와 인터뷰 도중 외부 화물차가 진입을 시도했다. 김씨는 운전자에게 "지금 하이트진로 노동자들이 총파업 중이다. 혹시 파업 중인 사실을 알고 오셨냐"고 물었다. 운전자는 "모르고 왔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에서 내려 김씨와 얘기를 나눈 운전자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사장님 저 안 되겠습니다. 회차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곤 돌아갔다. 김씨는 "감사합니다"라 말하며 배웅했다.

- 방금처럼 왔다가 그냥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나.
"열에 아홉은 그렇다. 어제만 해도 포항에서까지 차를 몰고 왔다가 그냥 돌아갔다. 회사에서 운송료를 기존의 서너배를 준다고 광고를 해대니 전국에서 보고 오는 거다. 대부분 파업을 하는지도 모르고 왔다가 우리 얘길 듣고는 돌아간다. 같은 운송노동자 아닌가. 애초에 저렇게 광고 보고 온 차들은 원래 주류를 옮기는 차가 아니기에 우리 차들에 비해 1/10도 못 싣는다. 그런데도 회사는 3~4배 운송료를 주고 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우리가 우리만 생각해서 운송료 인상해달라고 이렇게 파업을 했음 우리가 나쁜 놈 맞다. 그런데 그게 아니지 않느냐. 다른 공장이 받는 만큼만 달라는 얘기다. 그게 싫어서 저렇게 외부 화물차에 돈을 몇 곱절씩 뿌리고 있는 거다. 대체 청주·이천 공장 노동자들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소속도 같고 하는 일도 같은데 돈은 30% 적게 받아야 하는가."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인근에 멈춰서 있는 화물차들.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인근에 멈춰서 있는 화물차들.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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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A씨도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서의 고충과 파업에 참가한 심경을 토로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무슨 힘이 있나. 참다 참다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노조에 가입을 하고 파업을 한 거다. 사실 형님(김아무개씨)이나 나는 나이가 있어서 앞으로 얼마 일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제 애들 초등학교, 중학교 들어가는 젊은 가장들은 어떡하나. 저 가장들이 오죽하면 하루에 십만 원씩 나가는 차량 감가상각비 감수하면서 파업을 하고 있겠나.

그나마 이번 달은 소상공인 지원금이 나와서 버티지만 그 돈이 얼마나 가겠나. 우리가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파업을 하는 거면, 정말 우리가 가해자다. 정말로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생존권의 차원에서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이 이런 사정을 전해줬으면 좋겠다."


A씨는 수십 대의 화물차가 길게 늘어선 곳을 가리키며 "저기 멈춰있는 차는 주류가 아니라 일반 물류 차량이다. 그런데도 동료들이 파업을 하니 함께 동참해줬다"라며 "옆에 있는 경쟁사 OB맥주 공장에서도 차량들이 지나갈 때마다 클락션을 울리며 응원해준다. 다들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동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서도 우리 실상을 제대로 알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김씨의 주장에 대해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하이트진로가 아니라) 운송사(수양물류)와 운송노동자들과의 계약 관계라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알지 못한다"라며 "10년간 물가인상분이 누적 14% 정도 되는데 그에 준하는 운송료 인상이 있었다고 들었다. 세차비와 식대 지원까지 하면 물가인상분 이상으로 운송료를 인상한 것이다. 2008년부터 유가연동제를 실시해왔고 유가가 떨어질 때 보전받아야 할 금액을 안 받은 적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파업하는 노조원들은 하이트진로와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니라 수양물류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라며 "(노조원들은) 계속 하이트진로가 협상에 나오라고 주장하는데 회사도 (화물노동자들과) 계약 관계가 아니라 발 벗고 나설 수 없어서, 사실 답답한 상황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화물연대 전국 16개 본부는 7일 오전 0시부터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전차종, 전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경찰은 8일 오전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앞에서 화물차량의 출입을 막아섰다는 이유로 화물연대 조합원 15명을 체포했다.

태그:#하이트진로, #화물연대, #하이트진로 청주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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