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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4일 비 소식이 있던 날, 바깥을 살폈더니 자전거로 금방 도서관에 다녀오기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반납할 책을 챙기고 자전거를 탔다. 그동안 자전거 실력도 많이 늘었고, 길이 익숙해지기도 했다.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멀지 않은 길을 다녀오는 시간이 나에게는 언제부턴가 기분 좋은 자전거 여행의 순간이기도 했었다(그래, 이젠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심 자전거 여행의 거리를 조금 더 넓혀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물론 시골에서 차가 아닌 방식으로 이동하기에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기에 바람직한(?)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매우 많다. 찻길 만들다 짜투리로 남은 듯한, 한 사람 겨우 걸을 만한 공간을 걷다보면, 차의 속력이 그대로 몸으로 전해져와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덤프 같은 대형차가 지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몇 번을 걸어 다니다가 무섭기도 하고 매연 냄새도 심해서 걷기를 포기했다. 그러다가 자전거를 타보니 꽤 괜찮은 선택인 것 같아 종종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내가 차선을 침범하지 않는 한 차들도 나를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으로, 전혀 없지는 않은 무서움을 극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날 역시 여느 때처럼 기분 좋게 나의 자전거 여행은 시작되었다. 완만한 C자형으로 차도와 연결되어 있고, 과거에 2차선 차도로 이용되었다는, 넓고 안전해서 항상 애용하던 그 길에 여느 때처럼 들어섰다. 보통 그곳에서 차량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있더라도 맞은편 차량은 나와는 반대편에서 다가오니 서로 부딪힐 일은 없는 너무나 안전한 - 정확히는 '안전하다고 믿었던' - 길이었다.

길의 오른편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쪽에서 트럭이 오고 있길래 최대한 길 가장자리에 붙어서 천천히 패달을 밟았다. 트럭 역시 나를 피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긴장이 되진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병원 응급실 침대에 마치 거기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듯 누워 있었다. 올케의 모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여기가 어딘지, 올케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등 당연히 있을 법한 의문은 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는 극심한 통증과 벗어날 길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압도당하는 시간이 오갔다. 이런 날 것의 감각을 경험하면서 이런 것도 몸과 마음이 그것을 느낄 최소한의 능력은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간병인을 구하라며 간호사가 간병협회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었다. 나는 마치 너무나 멀쩡한 사람처럼 실은 제정신도 몸도 아닌 상태에서 간병인을 구하는 젼화를 걸고, 답변이 필요한 듯한 카톡에 답장을 보냈다. 몇 번의 전화 연락 끝에 간병인을 구했고, 내가 머무를 병실을 배정받았다.

언제나 그렇듯 저녁이 가까우면 집에 도착하는 어머니를 맞고, 같이 저녁을 먹고 쉬다가 잠을 자는, 지극히 당연한 나의 일상은 한순간에 부서졌다. 대신에 낯선 곳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즐겨다니던 마을길에 유태꽃이 만발했다. 돌담과 주황빛 지붕과 잘 어우러진 풍경이 나의 눈과 마음을 멈추게 했다.
▲ 찬란했던 4월의 유채꽃밭 즐겨다니던 마을길에 유태꽃이 만발했다. 돌담과 주황빛 지붕과 잘 어우러진 풍경이 나의 눈과 마음을 멈추게 했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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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특별하게 느껴본 적 없는 단어가 가슴에 남을 때가 있다. '자연에 깃들어 살다'에서 쓰이는 '깃들다'라든가, '삶을, 텃밭을 가꾸다'의 '가꾸다' 같은 단어들이 어떤 시기 내 가슴에 쏙 들어왔었다. 이번 봄엔 주변을 거닐면서 유난히 '찬란'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다른 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유채꽃밭이, 이름 모를 봄꽃 무리들이 새삼 찬란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찬란함으로 나를 불러준다면, 나는 기꺼이 '만끽'해주리라고 맘속으로 혼잣말을 하곤 했다. 병원의 침대와 일체가 되어 지낸 지 50일이 넘어서다보니 그 찬란하던 봄은 만끽할 새 없이 지나가고 여름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앞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갈 집을 조만간 리모델링해야지 하던 계획도 그렇게 한순간에 허공으로 날아갔다. 물론 이제는 지금의 상황에 맞춰 다시 또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음을 말 그대로 뼈아프게 배우는 지금이지만, 그 '알 수 없음'이라는 거대한 어둠 속에서도 계획하고 약속하고 꿈꾸는 것이 삶의 중요한 재료 중 하나임을 알기에.
 
어머니와 함께 옥상텃밭에 봄맞이 모종심기를 했다. 고추, 가지, 상추, 호박, 오이 등등. 사고 4일전이던가 심었는데, 아마도 이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말라죽어버렸겠지...
▲ 4월의 옥상텃밭 어머니와 함께 옥상텃밭에 봄맞이 모종심기를 했다. 고추, 가지, 상추, 호박, 오이 등등. 사고 4일전이던가 심었는데, 아마도 이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말라죽어버렸겠지...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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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동시집을 읽었으니 다음엔 이야기책을 빌려다 주기로 했던 어머니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그런 사소한 계획 쯤은 당연히 없던 일이 되었다. 내가 도서관에서 동시집이나 이야기책 등을 빌려오면, 어머니는 읽기도 하고 거기에 있는 그림들을 옮겨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머니의 글이, 그림이 하나둘 쌓였다. 이곳저곳에 사는 언니와 오빠들도 어머니의 그림 실력을 보며, 열혈 팬들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머니의 글과 그림, 영상, 노래 등 여러 가지 것들을 모아서 올해 어머니 생신 때 작은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인연이 깊던 분들을 초대해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5월 어버이날 즈음 가족들이 모이면 같이 의논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무료로 장소를 빌려주는 맘에 드는 장소도 알아놓고 전화 통화도 했었다. 담당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기로 했는데, 그 역시 보내지 못했다. 아마 이 일도 최소한 이번에는 접어야 될 것 같다.

6월 3일, 입원 50일이 되나보다. 아직 침대를 벗어나 걸을 수는 없지만, 밥상을 펴놓고 침대를 좀 세워서 불편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들길 수 있을 만큼은 유능해졌다. 물론 침대를 너무 세워도 힘들고, 30분 넘게 앉아 있다보면 허리가 신호를 보낸다.

몸에 신경의 대부분이 가 있느라 글에 대한 집중도도 낮아진다. 하지만, 오늘의 유능이 있기까지 잘 견뎌준 나에게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유능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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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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