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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4월 12일 오후 6시 7분]
 
1일 서울 명동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1일 서울 명동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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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부터 정부가 추진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정책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 마스크를 벗고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2년 강력한 영업제한에 묶였던 식당·카페도 지난 4일부터 밤 12시까지 가게 문을 열고 있다.

동시에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의료적으로 열악한 요양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속출하며 사망이 급증했고, 호흡곤란을 호소해도 재택치료자라는 이유로 바로 입원하지 못하고 자택에서 사망한 사건도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K-방역에 성공한 한국이 안정적으로 위드 코로나에 진입했다'고 평하지만, 현장의 평가는 다르다.  이 간극은 무엇 때문에 기인한 것일까? 

지난 3월 30일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한 강연에서 "K-방역은 '전환'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정부 발표대로 누적 확진자·사망자 수 등의 지표만 놓고 본다면 좋은 평가가 가능할지 몰라도, 팬데믹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확진자가 대량 발생하는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비하지 못했고 한국 실정에 맞는 의료 체계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4일 임 병원장을 만나 'K-방역이 실패했다'고 진단한 이유를 물었다. 또 지난 2년 3개월 동안 한국 사회가 반추해야 할 쟁점들은 무엇인지도 물었다. 그는 2020년 2월~2021년 6월 경기도 코로나19긴급대책단장을 역임하며 경기도 방역 대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도입한 재택치료 원형의 설계자기도 하다. 아래는 일문일답.

"거리두기, 시간 버는 수단일 뿐... 팬데믹 제대로 이해 못 해"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지난 1월 2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특성 대응 방안 등 전문가 초청 특집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미크론 변이 질문에 답변하는 임승관 병원장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이 지난 1월 2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 특성 대응 방안 등 전문가 초청 특집 브리핑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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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는 팬데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코로나 감염병 초기, 방역당국은 환자에게 번호를 붙였다. 정부 책임자들 입에선 최근까지도 '2주 만 더' '이번만 참아내면' 등 곧 감염병 사태가 종식된다는 발언이 꾸준히 나왔다. 2년 동안 네 차례 큰 파도(유행)가 불었고, 지금이 다섯 번째 파도다. 지금은 하루 신규 확진자만 수십만명씩 발생한다. 그런데 한국은 계속 '종식담론' 안에서 팬데믹을 사고해 왔다.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는 정부, 전문가, 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2015년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 때 강력한 진단 검사, 격리·병원 폐쇄 등 정부 주도의 통제로 몇 개월 간 전력해서 막아낸 기억이 매우 강렬하게 남았다. 그런데 메르스는 치사율 34%(신종 코로나 감염병 치사율 세계 기준 1.25%)를 기록한, 총 186명이 확진된 감염병이었다. 이 경험에 기해 '코로나19도 우리가 노력하면 통제할 수 있다'는 관념이 강력하게 남았다. 통제가 안 되면 '노력이 부족했다' '어디에 빈틈이 있지?' '누가 거리두기를 안했지?'라 물으며 오류를 찾는 방식으로 사고했다."

- '종식 담론'이 팬데믹 시기에 맞는 않는 관점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팬데믹'은 '에피데믹'과 다르다. 에피데믹은 국지적 유행, 팬데믹은 용어 자체에 모두(pan)가 포함된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됐다. 페스트, 천연두, 콜레라, 인류 역사상 모두가 다 걸리는 게 팬데믹이었다. 인구의 70~80%는 걸려야 끝나는, 쉽게 말해 '집단 면역'이 형성돼야 끝나는 거다. 미생물은 원래 인류보다 더 빠르고 강하고 영리하다. 축구로 치면 브라질 같은 강팀에 대응하는 건데, '전략' 없이 마치 동네 축구하듯이 '우리가 잘하면 이긴다' 식으로 대응했다.

이번 5차 파도 그래프가 이렇게 나오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탄성력 있는 물체를 힘으로 누르다 떼면 반등하는 거고, 팽창력 있는 물질이라면 더 반등이 크다. 유행은 종식할 수 없고 단지 그 시기를 미룰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유행을 없애는 게 아니라 뒤로 미뤄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이마저 공짜가 아니라 문화, 경제, 교육 등 다른 영역의 피해를 감수하는, 미래에 빚을 남기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에 피해를 전가하는 시기 동안 전력을 다해 다음 파도에 대비해야 했다. 여기서 또 팬데믹을 제대로 이해 못한 문제가 드러난다. '불확실성'이란 팬데믹의 속성이다."

- 한국 사회가 팬데믹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간과했다는 뜻인가?

"백신을 예로 들면, 한국은 백신·치료제란 '영웅'을 기다리는 서사만 맹신했다. 백신이 개발되고 다차 접종까지 마치면, 이 백신으로 인한 면역이 감염에 따른 집단 면역을 대체해 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그 결과가 일상회복 지침을 발표했던 게 지난해 11월이었다.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정반대였다. 찬란한 성공처럼 여겨진 K-방역이 크게 실패하는 일이 일어났다.

어떤 변이가 어떻게 나타날지, 기존 백신이 변이에 효과적일지 아닐지 다 불확실했다. 이 속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대비했어야 했는데, 정부도, 전문가도, 언론도 다양한 시나리오를 탐색하고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 없이 시간을 방기하다 갑자기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을 맞았다."

"K-방역 자화자찬할 뿐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지 못해" 

- 그래도 결과적으로 백신 관련 정책은 성공적이지 않았나? 그럼에도 한국 방역이 전환에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미크론 유행이 시작되니 사람들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떻게 요양시설을 구하느냐' 하고. 이걸 시험에 빗댄다면 수능 일주일 남기고 '어떻게 수능 잘 보느냐'라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누군가의 피해로 번 그 소중한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 지역별, 국가별로 감염병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 봉쇄정책이 가능했던 한국은 시간을 번 반면, 유럽, 북미 대부분의 나라는 시간을 벌지 못하고 의료 붕괴를 겪었다. 우리가 최근 유행기 동안 겪은 의료 붕괴, 요양시설 집단 감염, 교육 붕괴 등의 문제를 유럽 등은 2020년에 겪었다.

우리가 해야 했던 건 이들의 피해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지 탐구하고,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거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1~2년 동안 K-방역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수출 대상으로 자화자찬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보나?

"코로나 초기 스웨덴 방역당국이 섣불리 '집단 면역'을 택했다가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스웨덴 시민사회는 동요하지 않았다. 당시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은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만을 택하겠다'는 답을 했었다. 스웨덴이 하지 않은 건 크게 국경봉쇄와 락다운이다. 국경 봉쇄는 과학적으로 의미 없다고 봤고, 락다운은 시민들이 수용하지 않을 거란 판단이었다. 자기 사회가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고, 이 과정을 사회적으로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결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지난 2년 3개월 간의 한국의 코로나 의료 대응 체계는 평상시 우리가 하고 있는 방식인가? 확진자가 나오면 보건소에서 명단 확보하고, 인적·건강 정보를 수집해 고위험군은 전담병원으로, 위중증 의심자는 생활치료센터로 일일이 매칭시킨다. 보건소, 전담병원, 중앙사고수습본부 상황실 병상배정반의 공무원 인력이 일일이 소통해 배정한다. 평소 의료 체계는 이렇지 않다. 95%가 민간 병원이고, 환자가 자율적으로 병원을 선택해 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상황이 이러하다면 처음부터 민간 병원들과 다같이 진료하는 분담 체계를 꾸릴 수 있게 그 전달 체계를 만들어야 했다."
 
3월 28일 오전 서울역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유전자 검사 키트를 준비하고 있다.
 3월 28일 오전 서울역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유전자 검사 키트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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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위드 코로나'가 단계적으로 추진되면서 앞서 언급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재택치료가 도입됐고, 올해 2월부턴 모든 동네 병·의원에서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문제는 지침을 어떻게, 언제 마련해왔느냐다. 지난 2년 간 정부의 방식은 사전 대비, 준비가 아니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조치를 취하는 사후대처에 가까웠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을 도식화 하면 먼저 기조·담론을 합의한 뒤, 그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사업을 만들고 이를 현장에서 수행한다. 정책과 사업 수립 과정에 지침이 필요하고, 사업에서 현장으로 갈 때 매뉴얼이 필요하다. 재난 시기엔 매우 신속하게 이를 처리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압축적으로 진행하는 것과 전 단계를 생략하는 건 다른 얘기다. 그러나 전 단계가 생략된 게 지난 2년이었다.

정부 발표로 새로 바뀐 지침을 알았다는 말은 일선 현장에서 매번 나왔다. 지난해 10월 도입된 재택치료체계도 '기존 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서' 도입·시행됐다. 병상은 1000개인데 누적확진자가 1000명을 넘겨 대기자가 생기니까. 논란이 된 문제 모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대비한다면, 기조·담론을 만들 때 인권 문제 등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을 포함해 정책을 만들고, 이에 따라 예산도 배분하고 보건소 혼자 감당키 힘들면 외부 위탁을 하는 등의 준비가 가능하다. 지난 2년 동안 이런 절차가 없었다. 당국이 이 삭제된 과정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 그렇다면 왜 이런 접근 방식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첫째는 팬데믹을 우리가 주도하는 경기라고 사고한 오류, 둘째는 겸손함의 부족이다. 절망을 느꼈던 사례가 있다. 2020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만든 '한국 코로나 방역 세계 방역의 기준이 되다'다. 'K-방역모델의 국제표준화를 추진', '감염병 대응지침이 전무한 후진국에서도 바로 사용 가능', '지금이 바로 한국 방역체계 우수성을 널리 알릴 기회' 등의 문구가 있었다. K-방역은 남을 가르치려고 했지 공부, 반성, 성찰을 하지 않았다.

종종 이번 팬데믹를 대하는 한국의 태도를 육아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기가 갑자기 울거나 구토를 하면 책을 보고, 육아를 미리 해본 사람에게 묻고, 병원을 가보는 등등 다른 사람의 지식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아기 상태를 계속 추적해가며 대응하고 대비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팬데믹은 스페인 독감 이후 100년 만에 발생했다.WHO 사무총장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세계의 어떤 전문가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당연히 처음부터 알지 못했고 모든 나라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기 나라에 맞는 최선을 찾아갔다. 한국은 아이를 한번 어르고 달래서 나았더니 '나는 육아의 신이다' '다 가르쳐줄게' 한 셈이다."

"재난 피해자 사례 조사해 실수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 오미크론 유행이 정점을 지나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다. 다음 파도, 혹은 또 다른 팬데믹에 대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의료자원 측면에서 하나를 언급하면 감염병 대응에 문제가 됐던 환경을 더 안전하게 바꿔가야 한다.  감염병 전문 병원을 더 짓겠단 식의 접근은 잘못됐다. 지금처럼 확진자가 수십만 명이면 병원 3~4개 더 짓는다고 해소되지 않는다. 4~6인실이 대부분인 병실을 1~2인실로 바꾸고,  중환자실도 1~2인실로 바꿔야 한다. 1000명을 수용하던 병원이 500명만 수용하게 되니, 1인당 의료 수가는 2배 늘어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공공병원 확충은 장기적 과제다. 그래서 팬데믹 대응에서 공공병상 확충만 말하는 건 절반의 진실이다. 당장 재난에 대응해야 하는데 공공병원 비중은 5%에 불과하다. 병원은 2~3년 내에 뚝딱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서부산·대전·경남 진주 등의 공공의료원이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으로 정한 것도 문제가 있다. 5년, 10년이 걸려도 지역 공공병원에 필요한 의료인을 어떻게 배출하고, 어떤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역엔 어떤 의료적 수요가 있는지 등을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

또 하나 한국 사회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희생을 비롯해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가치를 카드빚처럼 먼저 썼다. 2년 동안 다른 사람의 웃는 표정을 보지 못하고 나들이를 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성장권,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배움을 빼앗은 점 등이다. 파도 커브가 내려가는 시기 정부 관계자들은 현장을 철저히 돌아봐야 한다. 재난 피해자 증언도 듣고, 어떤 억울한 사연이 있는지 조사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태그:#임승관, #K-방역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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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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