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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독립유공자' 김유길 애국지사 작고
 "최고령 독립유공자" 김유길 애국지사 작고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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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황망한 소식을 접했다. 한국광복군 출신 '최고령 독립유공자' 김유길 애국지사가 지난 2일 향년 103세로 서거했다는 부고였다.

김유길 지사는 윤경빈(2018년 서거)·김우전(2019년 서거)·김영관 지사(생존) 등 내가 직접 만나뵈었던 몇 안 되는 독립운동가 분들 중 한 분이었다. 특히 김유길 지사와는 애틋한 추억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상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진즉 알았더라면 빈소에라도 가서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이라도 해드렸을 텐데, 부고를 접했을 때는 이미 발인까지 끝난 뒤였다. 헛헛함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빈소에 꽃 한 송이 올리지 못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에 대한 기억을 푸는 것으로 지사를 배웅코자 한다.

김유길 지사와의 첫 만남

2013년 여름, 나는 장준하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아! 장준하 구국장정 6천리' 행사(아래 장정)에 참여한 바 있다. 장정은 장준하·김준엽·김유길 등 일본군을 탈출한 학병(學兵)들이 광복군이 되기 위해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향하던 고난의 행군길을 의미한다. 바로 그 옛날 광복군의 발자취를 따라걷는 여정에 동행한 것이다.

10박 11일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곧바로 '특별한 인터뷰'를 추진했다. 당시 나는 국가보훈처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장정에 참여했던 광복군 출신 생존 애국지사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한 것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김유길 지사와 연락이 닿았다.

2013년 8월 20일, 경기도 군포의 자택에서 김유길 지사와 마주 앉았다. 평소 역사책으로나 접할 수 있었던 독립군을 독대한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인터뷰 직전 다녀왔던 장정 이야기를 꺼내니 지사는 "허허, 내가 다녀온 곳 그대로 따라갔다 왔구만!"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때부터 김유길 지사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당시 지사는 94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하던 시절의 기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께서 걸었던 그 길을 나 역시 걷고 왔기에, 더 반가운 마음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지도 모르겠다.
 
2013년 8월 20일, 경기도 군포의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김유길 지사
 2013년 8월 20일, 경기도 군포의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김유길 지사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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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김유길의 독립운동

1919년 2월 4일 평안남도 평원(平原)에서 태어난 김유길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44년 1월 일본군 학병으로 징집, 중국 장쑤성 쉬저우(徐州)의 중지파견군(中支派遣軍) 제7997부대에 배속됐다. 그러나 '일본을 위해 죽을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 다른 탈출 학병들과 함께 안후이성 린취안(臨泉)에 위치한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한광반)'에 합류했다. 

한광반에서 훈련을 마친 김유길은 그곳에서 만난 장준하·김준엽 등 다른 학병들과 함께 다시 충칭 임시정부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그때의 행군이 어찌나 고달팠던지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1945년 1월 31일 김유길을 비롯한 탈출 학병들이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했다. 백범 김구 주석이 직접 내려와 청년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맞이했다. 마침내 김유길 앞에 선 김구 주석이 손을 내밀었다. 27년 간 임시정부를 이끌던 원로 혁명투사의 손을 잡는 그 순간 김유길은 민족의 피는 부모형제의 피보다도 진하고 뜨겁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광복군은 미군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 전략사무국)와 합작하여 국내로 침투하는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을 추진 중이었다. 김유길 역시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 제1분대원으로 배속되어 국내 진공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 무전통신반에 소속된 김유길은 풍속을 살피고 무전을 통한 첩보활동을 하는 등의 훈련을 이수했다.
 
김유길 지사가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OSS 훈련을 받던 시안(西安)의 광복군 제2지대 훈련장 (2013년 7월 13일 촬영)
 김유길 지사가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OSS 훈련을 받던 시안(西安)의 광복군 제2지대 훈련장 (2013년 7월 13일 촬영)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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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S 훈련을 받던 당시 김유길과 동지들은 근처의 강가에 가서 매일 <용진가>, <압록강 행진곡> 등 독립군가를 불렀다. 그들에게 독립군가는 일종의 '주술'이었다. 특히 김유길은 "우리는 한국광복군 /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로 시작되는 <압록강 행진곡>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는 건 결국 우리가 죽더라도 그 영혼은 압록강과 백두산을 넘어 조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야. 우리가 준비하던 국내진공작전은 결국 모두가 다 죽게 되어 있었어. 국내로 잠입해서 미군이 침투할 수 있도록 사전 공작을 하는데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겠어? 죽으러 가는 것이지만 죽더라도 우리의 영혼만큼은 조국의 부모형제에게 가서 닿을 수 있다고 계속 노래를 부르며 자기세뇌를 한 거지." (2013년 8월 20일 김유길 지사 인터뷰 中)

그러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 선언으로 국내진공작전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무산됐다. 광복군 김유길 역시 전투 한 번 치러보지 못한 채, 고국으로 귀환해야만 했다. 돌아온 김유길 앞에는 남북 분단이라는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 졸업사진(1944.10.27). 빨간 원이 김유길 지사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 졸업사진(1944.10.27). 빨간 원이 김유길 지사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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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길 지사의 마지막 소원

"내 어릴 적에는 삼천리 강산에 왜적들만 없어지면 좋은 나라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방이 됐지만 지금은 고향인 이북에도 못 가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파. 대한민국 여권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이북만 못 가. 죽기 전에 어릴 적 뛰어놀던 대동강이나 을밀대도 꼭 가보고 싶은데..." (2013년 8월 20일 김유길 지사 인터뷰 中)

김유길 지사는 당신의 고향 땅에 가지 못하는 현실에 속상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독립운동 할 때, 우리 대에 독립을 이루지 못하면 아들 대에, 아들 대에 이루지 못하면 손자 대에 이뤄야 한다는 심정으로 독립운동을 했다"라며 "통일 문제도 지금 당장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대에 이루지 못하면 자손 대에라도 이룰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지사는 뜨거운 악수와 거수경례로 나를 배웅했다. 지사가 백범과 손을 마주잡았을 때 뜨거운 감격을 느꼈듯이, 나 역시 70년 전 백범 김구 선생의 온기를 지사를 통해 전달받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2013년 8월 20일, 경기도 군포의 자택에서 김유길 지사와 함께
 2013년 8월 20일, 경기도 군포의 자택에서 김유길 지사와 함께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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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썼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하루 빨리 통일이 이루어져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김유길 선생의 마지막 소원이 이뤄지길 기원한다"라는 말로 문장을 끝맺고 있었다. 결국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나게 됐으니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김유길 지사의 작고로 이제 생존 애국지사는 12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태어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고 자연의 섭리라고 하지만, 그 당시를 증언해줄 독립운동가가 이 땅에 단 한 분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하고 서글퍼진다.

그러나 이들의 육신은 떠나가도 '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믿는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들의 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간직하여 대대로 전하는 것이 후손된 자들의 도리 아닐까.

그리고 김유길 지사가 남긴 당부처럼 결국 한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국가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만이 지사를 비롯해 먼저 가신 이들을 온전히 추모하는 길이라 믿는다.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역사학도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영원한 광복군' 김유길 애국지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지사님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남북통일이라는 과업은 이제 남은 자들에게 맡기고 부디 그곳에서 편히 쉬소서."

9년 전 인터뷰 당시 김유길 지사께서 광복군 시절 불렀던 독립군가, <용진가>를 다시 부르던 모습을 최초 공개한다.
 
▲ 원로 애국지사가 직접 부르는 독립군가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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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故 김유길 애국지사 잠드신 곳: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6묘역--44


태그:#김유길, #광복군, #임정로드, #독립군,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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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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