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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내려앉은 천변을 보면서 삶의 모든 인연이 촘촘한 그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물비늘의 그 모습도 그물 같아서 물그물이라고 지어봤습니다.
▲ 물그물 햇살이 내려앉은 천변을 보면서 삶의 모든 인연이 촘촘한 그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물비늘의 그 모습도 그물 같아서 물그물이라고 지어봤습니다.
ⓒ 최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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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가장 큰 기쁨은 아마도 길 위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이국적인 음식이나 유서 깊은 장소의 관광이 떠남의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길 위의 풍경이 온전히 더해졌을 때라야 비로소 떠나온 자의 감흥으로 돌아가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길의 정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이야 길을 떠올려보면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쯤이 먼저 연상될 테지만, 길은 교통수단으로써의 길과 함께 어떤 방도로서의 방법적인 길도 있고 또 행위의 적합한 기준으로서의 길도 있다. 우리가 이런 길 위에서 특별한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이건 아마도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그런 '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자가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을 철학적으로 해석할 때라야 마침내 우리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철학적이라는 말에 주눅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이 학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자신만의 살아온 경험에는 그만의 인생관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철학이라고 불러도 철학의 본뜻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길'이 세상의 무대가 되고 사람이 배우가 되어 인생을 한 편의 연극으로 비유하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인생을 흔히 여행에 빗대어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누구나 나그네가 되었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 삶의 길을 걷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많은 길을 걸어본 사람의 삶에는 여기저기 상처에 움푹 파였을지라도 자신만의 '어떤 감정'은 그만큼 깊은 법이다.

알고 보면 필자의 삶도 늘 떠나거나 떠나보냄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물리적으로는 언제까지나 함께일 것만 같았던 부모의 품을 일찌감치 떠나왔고, 정신적으로는 절대 변치 말자며 맹세한 몇 개의 우정도 떠났고, 처음의 사랑으로 온 세상이 내 것만 같았던 시절 인연도 가볍게 떠나보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친분을 맺은 사람 역시도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가 기꺼이 떠날 줄 알았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느라 조바심 내는 삶을 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떠남이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걸 필자는 더 많은 시간을 살아내고서야 깨달았다.

지금도 시골에는 버려진 빈집이 꽤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한 시절 온기를 품어내던 풍경도 사람이 떠나면 그 역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이다. 떠남은 돌아오기 위해서라는 멋진 말을 여전히 믿고 싶지만, 우리네 삶은 생각보다 이기적이고 난폭해서 한번 떠나면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허다하고 삶의 풍경 역시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음을 안다.

감각으로만 인식하던 현상 너머의 존재가 현실에서는 여전히 추상적이거나 사변적이라는 푸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이들이 사라졌을 때 실존하는 세계는 더는 과거의 자신이 알던 세계가 아닌 법이다. 이는 철학적 사유로 무장한 채 길을 떠나지 않았지만, 길 위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나그네가 되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법이다.

필자는 어제 냇물이 시원하게 흘러가는 천변을 걸었다. 그야말로 황금빛 햇살이 내리쬐던 그곳에는 바다에서나 봄 직한 물비늘이 사금처럼 반짝였고, 눈을 감으면 멀리서 항구의 소리가 들릴 것처럼 이국적이었다. 한때는 여행자가 되어 멀리 떠나야만 보인다고 생각했던 그 특별한 감정들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몇 걸음 더 가니 삼단 같은 머리를 감는다는 수양버들이다. 옛사람들이 주로 나루터에서 헤어지면서 버들가지를 꺾어 이별의 징표로 사용했다던데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니 꽃말처럼 비애가 느껴진다. 물에 쓸리는 소리가 슬픔도 슬픔이지만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버들잎만 할까.

떠나온 것들과 보낸 것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앞으로 얼마나 길 위에서 서성일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무심코 떠나보냈을 풍경 중의 하나가 오늘은 당신의 마음 깊은 곳으로 여행자로 찾아오길 바란다. 그래서 당신이 붙들고 놓지 못한 수많은 상처도 물처럼 흘러가길 바란다. 그렇게 떠나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가까운 어느 곳에서도 우리는 언제든 풍경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지평선, #울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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