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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대법원 선고가 진행된 가운데 사건 공대위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31일 오전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대법원 선고가 진행된 가운데 사건 공대위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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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인 해군 여군 대위를 직속 상관과 지휘관이 각각 강간, 임신중절 등 극심한 피해를 끼친 사건.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이 사건의 대법원 선고가 31일 계류 3년 4개월 만에 나왔다.

결과는 아리송했다. 

10차례의 강제추행뿐 아니라, 잇따른 성폭행으로 임신 중절에 이르게까지 한 혐의를 받은 1차 가해자이자 직속상관인 박아무개 소령은 무죄를 확정(주심 대법관 김재형) 받은 반면, 1차 피해 이후 해당 사실을 악용해 성폭행을 저지르는 등 2차 가해를 입힌 지휘관 김아무개 대령 사건(주심 대법관 박정화)은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기 때문이다.

1차 가해자 무죄, 2차 가해자 유죄

2018년 4월 1심 군사법원에서 1차 가해자는 징역 10년, 2차 가해자는 징역 8년이 선고 받았고, 그로부터 7개월 뒤 고등군사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 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 가해자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두 주심 대법관이 각각 다른 결론을 내렸다. 선고 후 피해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독을 통해 밝혔다.

두 결론은 1시간 간격을 두고 내려졌다. 2차 가해자 사건이 먼저 오전 10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론을 받으면서, 사건 방청인 다수가 오전 11시 진행되는 1차 가해자 사건 또한 비슷한 취지의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차였다. 일부 방청인들은 두번째 선고 직후 법정 밖으로 나오면서 "피해자 진술보다 상관이 화간을 주장하면 무조건 무죄가 나오는 거냐"고 황당해 했다.

사건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0명 규모의 함정에 배치된 유일한 초임 여군이자 성소수자였던 김씨. 군사법원 1심과 항소심 모두 피해자를 '김하나'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직속상관인 박 소령의 혐의는 2010년 9월부터 1년여간 김씨를 강제추행하고 성폭행했다는 것. 범행 장소로 특정된 곳은 음식점이나 모텔 뿐 아니라 근무지인 함대도 있었다. 피해자 진술에 따르면 성소수자인 김씨에게 '남자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1심과 2심 모두 일관되게 박 소령이 직속상관으로서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판결문엔 "박씨가 1차 평정권자이고 분위기를 잡는 사람이었다", "신고하면 제대로 군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힘들었다" 등 피해자의 고충이 실려있다.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에서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대법원 선고 회견이 열리고 있다.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후문에서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대법원 선고 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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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가해자가 2차 가해자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자신의 혐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소령은 자신이 성소수자인 피해자와 내연관계였다는 사실을 줄곧 주장했다. 항소심에선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피고인 아내의 정황 진술까지 가세했다.

박 소령의 1심 사건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의 권력 관계에 더 집중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계급과 지위에서 비롯된 권력관계를 이용해 초급 간부였던 피해자에게 육체적, 정신적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고 봤다.

반대로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진술에도 방점을 뒀다. "NO라고 한적은 없지만 YES라고 한 적은 없고 어떤 반응을 하지 않았다"는 피고인 측 진술을 피해자의 '소극적 대응'으로 해석했다.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이었다.

2심에서 대법 결론까지 3년 4개월... 피해자 옥죈 '장기 계류'

대법원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수사를 진행한 군 검찰의 책임을 언급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한 정황이 있고,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항소심이) 판단한 것에는 수긍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2차 가해자 결론에선 피해자 진술을 언급하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며 신빙성을 인정한 것과 다른 대목이다.

중절 이후 고충을 털어놓은 지휘관에게까지 성폭행을 당한 김씨. 하급심 판결문에선 피해자가 잇따른 성폭력 피해로 겪고 있는 고통을 의료 전문가의 입을 빌려 전달하고 있다. 한 의료인은 법정 진술을 통해 "(성폭력으로 인한) 외상을 겪은 후 7년 이상이 지나도 충분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가능한 일이며, 피해자의 경우 외상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있어 (그 진술이) 허위일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피해가 발생한 2010년으로부터 12년, 첫 고발이 이뤄진 2017년으로부터 5년, 고등군사법원의 전원 무죄 판결 이후 3년 4개월. 변호인에 따르면 피해자는 특히 대법원의 긴 계류 기간 적잖은 고통을 겪었다.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피해자는 언제 판결이 선고될지 모르는 상태로 불안한 삶을 살아왔다"면서 "장기계류는 명백한 인권 침해다. 군의 가해자 징계와 피해자 보호를 어떻게 하는지 끝까지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31일 오전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대법원 선고가 진행된 가운데 사건 공대위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31일 오전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여군 성폭력사건 대법원 선고가 진행된 가운데 사건 공대위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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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측 변호인인 박인숙 변호사는 기자와 만나 "피해자가 황당한 것은 (대법원도) 1차 가해자가 주장하는 연인관계를 어떤 면에선 인정했다는 점이다"라면서 "(두 사건 모두) 일련의 과정에서 일어난 일인데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무죄를 낸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이날 대법원이 "인접한 시기에 같은 피해자를 상대로 저질러진 동종 범죄라도 각각 범죄에 따라 범행 경위, 관계, 당사자 진술 등이 다를 수 있다"며 두 사건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고 설시한 것에 비판적 시각을 던졌다. 방 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법이 생각하는 정의구현 기능과 맞는 것인가 회의가 있다"면서 "가해자들에게 (이렇게 주장해도 된다는) 학습을 하게 만드는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아래는 이날 피해자가 대독으로 전한 입장문 전문이다.

3년을 넘게 기다렸습니다. 파기환송 소식에 잠시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다시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성적소수자라는 점을 알고서도 강간과 강제추행을 일삼고, 결국 중절수술까지 하게한 자를 무죄로 판단한 대법원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제가 겪어야만 했던 그날의 고통들을 그 수많은 날들의 기억을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판결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파기환송과 기각이 공존하는 판결로 오늘의 저는 또 한 번 죽었습니다. 행복한 군인으로서 살아보고 싶은 저의 소망을 또한번 짓밟혔습니다.

부디 저의 후배들은 저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피해를 입었더라도 생존자로 살아남기를, 기다림의 시간이 이처럼 길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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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 사건팀. 가서, 듣고, 생각하며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이희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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