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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대본부 해단식에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선대본부 해단식에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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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아쉬움이 반영되어 정권교체라는 프레임 속에서 치러졌다. 그 징후는 이미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로 확연히 드러났고, 이번 대선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당연히 여당 후보인 이재명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사실 이런 맥락은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늘 야당은 정권교체를 내걸고 도전하고, 여당은 방어하는 형태로 대선은 치러진다. 다만 그런 프레임 속에서도 여야 모두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국민통합을 기치로 선거운동을 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놀랍게도 야당 후보는 혐오와 갈라치기를 전면에 내세워 선거운동을 했다.

혐오를 전면에 내세운 후보의 승리 

민주화에 대한 혐오, 여성에 대한 혐오, 가난한 이들에 대한 혐오, 언론에 대한 혐오,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혐오발언들을 야당 후보가 대놓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게 정말 선거전략으로서 유효한 것이라면 단순히 야당 후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러한 혐오에 오염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이란 개념으로 유명한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엔 프레임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고 체계'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머릿속엔 '진보적 사고 체계'와 '보수적 사고 체계'가 동시에 존재하며 모든 프레임은 이 두 가지 사고 체계 중 하나에 최종적으로 연결되어져 있다고 한다.

진보적 사고체계는 자애로운 어머니에 비유되고, 보수적 사고체계는 엄격한 아버지에 비유된다. 전자가 공감과 연대라면 후자는 혐오와 적개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혐오와 적개심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정말 혐오하고 적개심을 가져야 할 대상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문명은 그런 혐오와 적개심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글에서 맹수와 홀로 맞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다. 공감과 연대 그것을 통한 협력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혐오와 적개심을 사람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건 세상을 '정글'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정글은 아니지만 정글 같이 느껴지는 세상. 협력보다는 경쟁이, 패자부활보다는 승자독식이 만연한 세상. 남을 돕기보다는 밟고 올라가야만 성공을 할 수 있는 세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맞다, 그래서 더 문제다.

민주화로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더 위태로워진 개인의 삶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2016년 12월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탄핵 가결 후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의 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2016년 12월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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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로 탄생한 정부라고 했지만 그 촛불의 의미를 80년대 민주화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주요 정부 관계자들의 뉘앙스를 보며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당장의 현재와 더 가깝게 맞닿아 있는 현대사의 사건은 민주화가 아니라 IMF 외환위기다.

역설적으로 독재와 싸우던 시절엔 경제가 고속성장을 하던 때였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독재에 신음했지만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었다. 한두 번 실패하는 건 무용담이 될만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민주화로 눈부신 발전을 했다고들 하는데, 한 개인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보면 너무나 불안하고 위태롭고 초라하다.

저성장 시대에 부족한 기회들, 외환위기 이후 무너진 사회 안전망, 고용 불안, 급격하게 확대되어진 빈부격차. 이런 문제들은 이미 수없이 많이 제기되어 왔고 그에 관한 대중서들도 차고 넘친다. 그래서일까? 문제제기가 많이 되어져서 마치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 걸까?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서 주춤하더니 그 이후부터 이러한 맥락의 문제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행히 코로나 상황에서 전국민재난지원금을 과감하게 지급하자 '지긋지긋한 정글 같은 세상이 정말 내가 촛불을 들고 바뀌었구나'라고 느꼈을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상황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잘 알 것이다.

'정글'로부터 탈출시켜줄 걸 기대했으나 그러지 못한 혹은 않는 정부에 대한 불만 속에서 야당은 여당을 '위선' 프레임으로 공격을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정치적 성공을 한 것만이 아니라 대놓고 여성혐오를 일삼는 인물을 압도적인 표로 야당 대표로 만들어 줄 수준으로 성공을 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동안 진행됐던 '정글화'에 더해, 촛불로도 바꾸어지지 않았다는 '배신감'이 결합하여 모두가 모두에 대해 얼마나 더 잘 혐오하냐의 경쟁사회로 급격하게 악화되어 버렸다. 혐오는 자랑이 되었고 실력이 되었으며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야당 후보는 그것을 전면에 내세워 대선을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보편 복지가 필요한 이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터에서 열린 ‘우리 모두를 위해, 성평등 사회로’ 유세에서 여성 유권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 민주당 여성위 디지털성범죄근절특위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터에서 열린 ‘우리 모두를 위해, 성평등 사회로’ 유세에서 여성 유권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 민주당 여성위 디지털성범죄근절특위 위원장.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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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만인에 대한 생존 투쟁의 세상에서, 세상이 그런 상태라고 대다수가 믿는 상황에서 공감과 연대는 결코 승리할 수가 없다. 가난한 이들에게 선별 복지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투쟁이 세상의 본질이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이런 인식 하에서는 없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더 가지려고 애써야만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있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보편복지를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그러한 불안감을 부채질 하는 후보가 결과적으로 당선이 되었다. 바꿔 말하면 사람들의 그런 불안감을 여당 후보가 해소해 주는데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하지만 이건 앞서 이야기했듯이 두 후보만의 문제는 절대 아니다. 가깝게는 촛불의 의미를 축소해서 이해한 문재인 정부의 문제이고, 좀 더 길게는 민주화 담론에 갇혀 여전히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민주진영 인사들의 한계와 관련되어 있다. 부동산 문제, 취업 문제, 젠더 문제, 비정규직 문제. 이렇게 따로 따로 생각해서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려 애쓰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한계 말이다. 이건 정글 같은 세상을 바꿔 달라는 요구에 맹수 몇 마리 잡으면 되는 걸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정글의 '규칙'을 연대와 공감이 대체하도록 해야 하고, 그건 결국 보편적 복지가 강화되어진 선진복지국가로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다행히 이재명 후보는 그래도 그런 대전환에 가장 가까운 후보였고 실제로도 그 방향성을 반복적으로 제시했다. 거대 여당 혹은 야당에서 보편복지를 들고 나온 대선 후보는(물론 대선 과정에서 많이 타협하긴 했지만)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바로 이런 후보에 여성 혐오로 가장 고통받던 젊은 여성층이 대거 연대한 것 역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선거 막판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연대와 공감의 가치를 지닌 세력이 말 그대로 연대를 해낸 것, 그리고 그게 현실정치에서 대선 후보 간 박빙의 표 차이를 만들어낸 경험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어차피 선거는 다시 돌아오고 프레임 전쟁은 계속된다. 아니 선거와 상관없이 일상이 가치와 프레임의 충돌이자 전쟁이다. 이번 대선이 공감과 연대가 혐오와 갈라치기를 넘어서지 못했다기보다는, 거의 다 쫓아왔다는 의미로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는 이유다.

태그:#윤석열, #이재명, #정권교체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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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입니다. EBS에서 <지식채널e>를 기획하고 연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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