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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 아도르노는 저서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계몽의 정의를 말했다. 가장 인간다운 것,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며, 이는 어떠한 사유로도 불가침할 것임을 의미한다. 아도르노는 그의 책에서 이 첫 문장으로, 야만 상태에 빠진 인간성에 관하여, 그들의 언어에 관하여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성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실천을 강요한다. 그 실천의 최전선에 선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김누리(중앙대 독문과 동 대학원 독일유럽학과 교수)이다.

사회학, 정치학에서 나와서 해야 할 일을 문학하는 놈이 한다고 탄식의 말을 여러 강연장에서 내뱉는 그의 언사는 거침이 없었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방송을 통해 그는 대중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단 8시간만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책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것이 1000만 부 이상 판매를 했다는 것에 또 놀랐다고 말하는 저자였다. 바로 그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빛깔을 닮은 책에서 하는 말을 한 줄로 요약하면 무엇일까.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들이 잡는 줄 마저, 낡고 헤져 더 이상 줄이 줄일 수 없는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책에는 있었다. 한 문장일 필요도 없다. 세 음절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정체성'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존엄성에 있다. 존엄성이 무시된 경쟁 사회에서 부르짖는 공동체란 썩은 뿌리를 두고 가지치기만 한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어리석음과 같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이제는 일상어로 굳어 버린 지 오래다. 무엇을 시작하기 앞서, 먼저 찾아오는 무력감의 기원은 어디에서 부터일까. 저자는 그 뿌리를 오랜 시간 이어온 우리의 냉전체제를 뽑았다. 갈라진 땅에서 '공동체 성'은 곧잘 극단적인 반공이라는 공세에 입도 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 그 안에서 길러진 거대한 파시즘은, 일상의 민주화를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는 부조리극의 대가 오이겐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을 빌려왔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야."

광화문의 촛불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상에서 이어지지 못하는 지금의 실정을 일컫는 말이었다. 대통령은 비판할 수 있어도 사장님은 비판 할 수 없는 근원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은 경쟁으로만 내모는 교육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입시라는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한 아이의 인성이 자라는 시간을 우리는 견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지금까지 우리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되묻는 것이기도 하다. 가정에서 양육의 목표가 독립된 인격체로 생활하게 하는 것이라면 학교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가정은 물론이거니와 학교에서도 이러한 목표에 합당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근본인 정체성을 따져 봐야 한다.

'입시'라는 괴물로 말미암아,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율 최고치를 늘 상 경신하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에서,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었다. 교육다운 교육이란 무엇인가. 과거 산업전사를 기르고, 적응을 강조하는 시대는 이미 옛것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는 순응하는 인간형, 질문하지 않는 인간, 잡다한 지식을 곧이곧대로 외우는 인간을 최고로 대우하지 않는가.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인용 문장이 가슴 아프게 새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이 느끼는 모멸감, 자괴감, 열등감은 기실 아이들 것이 아닌 기성 세대가 남긴 표적이었다. 그 표적을 주홍글씨처럼 머리에 써서 붙이고 자란 아이가 성인이 돼서 마주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경쟁 속에 살아 남은 아이에게 공동체를 묻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살아남은 아이에게 패자는 조롱거리 그 이상일 수 없다. 사회의 약한 고리에 대한 연민 의식과 공감이 스며들 기회는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수구와 보수에 대해 개념을 정리했다. 보수란 공동체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며, 그 근원인 민족, 역사, 문화를 중시하는 집단이다. 이어 수구란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외세와 손잡고 기회주의적 행동하는 무리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수구의 과두지배체제이다.

6대4냐 4대 6이냐의 권력 분점에 차이만 있을 뿐이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합리적 진보가 들어올 수 있는 체제가 완성이 되어야 하는 데, 그 출발점이 지금의 소선거구제가 아닌 독일과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실, 우리가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쟁을 멈추는 것인데, 자유경제주의자가 모인 현재의 정치 집단에서는 그것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합리적 보수가 오른편에 서서 수구 세력을 몰아내고 그 왼쪽으로 이성적인 진보가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을 구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선거 개혁이다는 것이다. 세계의 기준으로 보자면, 과하게 우편향 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언제까지 개인의 불행을 개인만의 잘못이나, 노력 부족으로 몰이 해야겠는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시기, 독일에 서 있던 그가, 독일을 빗대어 이야기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눈에 기사로 보였던 구의역 사고에서부터 제주 실습생 사망... 불행의 악순환에 고질적으로 박혀 있는 뿌리, 그것을 낱낱이 파헤치기 위해 그 근원을 물어보는 것, 의심하는 것, 잘못된 단어를 고치는 작업, 개혁의 정체성이자, 촛불의 물음이지 않았을까. 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답이 아니다고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 진보적 사유를 하는 그의 말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은이), 해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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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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