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의 한 약국 모습 (자료사진)
 서울의 한 약국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띠리리리 띠리리리'. 3~4분에 한 번씩 신호가 울렸다. 전화와 팩스, 출입문 여닫는 소리다. 전화 응대하다 팩스 처방전을 확인하고 곧이어 들어오는 손님을 응대하면 또 전화가 왔다. 이렇게 쉼 없는 12시간을 꼬박 지나야 숨을 돌린다. 기진맥진한 하루를 보내면 다음 날 아침 다시 팩스에 쌓인 처방전을 마주한다.

오미크론 변이 유행기, 도심의 약국 풍경이다.

"오늘은 14장 쌓여 있었네요."

지난달 25일 아침 서울 강서보건약국의 정수연(33) 약사가 약국 문을 열며 말했다. 강서보건약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코로나19 지정약국'으로 재택치료자 약 조제를 맡다가 지난 1월 서울 강서구의 '먹는 치료제 담당약국'으로도 지정돼 팍스로비드를 조제하고 있다.

지역별 인구수, 확진자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주요 도심의 먹는 치료제 담당 약국들은 상황이 비슷하다.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재택치료자 폭증으로 부대업무가 늘면서 늦은 밤 퇴근이 일상이 됐다. 퇴근 후와 휴일에 병원의 긴급 연락을 받고 다시 약국 문을 열기도 일쑤다.

정 약사는 "의사의 진료 후 약을 환자 손에 안전히 전달하는 것까지가 치료의 과정으로, 약국을 포함해 의료전달체계엔 다양한 보건의료자원이 있다"며 "그러나 사실 지금까지 정부의 각종 계획에선 의사 외의 자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찾을 수 없었다. 일선 약국들도 혼란을 먼저 겪으며 스스로 자구책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지정약국'은 무증상·경증 확진자 재택치료가 본격화된 지난해 10월부터 운영됐다. 지난 2월 16일 전체 약국이 재택치료 체계에 참여하기 전까지 5개월 간은 지정약국에서만 재택치료자 약을 조제했다. 이때까지 약 전달도 보건소가 총괄했다. 재택치료자를 진료한 병원은 보건소에 상황을 통보하고 병원은 보건소가 지정한 약국에 처방전을 보내며, 약사는 다시 약과 복약지도를 보건소를 통해 환자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먹는 치료제 전담 약국은 지난 1월부터 가동됐다. 3일 기준 472곳으로 지자체 별로 1개 이상씩 있다. 인구 규모가 작은 시·군일수록 전담 약국이 1곳인 경우가 많다. 서울은 47곳이 있다. 팍스로비드는 식약처의 '품목 허가'가 아닌 '긴급사용승인'만 거쳐 약 수령자 서명과 연락처를 일일이 받고 매일 현황을 보건당국에 보고하는 등 행정업무가 더 까다롭다. '증상발현 후 5일 이내' 복용을 마쳐야 해 다른 약에 비해 조제도 더 빨라야 한다. 팍스로비드는 지난 1월 14일부터 2월 23일까지 1만7660명에게 투여됐다.

전화 폭주... '코로나 문의처' 된 동네 약국
  
전국 470여개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담당약국’이 조제하는 화이자사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
 전국 470여개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담당약국’이 조제하는 화이자사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
ⓒ 손가영

관련사진보기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는 100통을 훌쩍 넘긴다. 대부분 보건소, 병원, 확진자와 보호자다.

"제 약 나왔어요?"
"제가 확진자인데 약을 어떻게 받아요?"
"양성 나왔는데 어떻게 치료 받아요?"

확진자나 보호자들의 비슷한 질문이 줄을 잇는다.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보건소가 전화를 안 받아요"다. 정부는 최근 재택치료 행정안내센터 등을 설립하며 보건소 외 핫라인을 늘리고 비대면 진료 병원도 늘려가고 있지만, 어떤 곳과도 연결이 되지 않아 답답해 하는 확진자들이 많다. 이런 이들이 약국으로 연락해 상황을 호소하고 대안을 물어봤다. '연락이 되는 가까운 의료기관이 약국밖에 없었다'고들 했다.

빗발치는 전화에 더해 업무도 늘었다. 코로나 환자 약 제조는 일반 환자와 다르게 보건소, 병원, 확진자 등과 일일이 유선으로 소통하고, 환자에 직접 설명을 못하니 복용법도 따로 출력하고 최종 약 전달까지 확인해야 했다. 수령할 대리인도 확인하고, 대리인이 없으면 보건소, 병원 등과도 방법을 논의했다. 코로나 관련 처방은 많으면 하루 60여건까지 접수된다. 

처방이 늦어도 조제는 신속해야 한다. 보건소와 병원의 업무 과부하로 단순한 기침약 처방전마저 진료 후 열 시간이 지나 전달되곤 했다. 자가 격리 기간이 끝나기 전날 처방약을 받은 확진자도 있다.

정 약사는 "먹는 치료제 '팍스로비드'는 특히 급하다. 증상 발현 후 5일 이내에 복용 완료해야 하는데 이미 양성 판정을 받는 데까지 1~2일은 소요됐으니 처방이 나오는 즉시 조제와 배송이 이뤄져야 한다. 유아·어린이도 마찬가지"라며 "그러나 수령할 대리인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지, 24시간 돌아가는 병원과 다르게 약국은 그렇지 않은데 밤에 처방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는지, 약 조제·전달에 수반되는 각종 문제를 미리 고려는 해봤는지, '의사 진료 이후' 체계에 대해 정부는 하나도 계획해놓지 않았다. '알아서 하라'였다"고 했다. 

정 약사가 사비로 '퀵'을 보낸 건 지금까지 10건 정도가 된다. "이미 약 처방은 늦는데 환자는 발을 동동 굴리며 약을 기다리고, 가족이 다 확진돼 수령할 대리인은 없고, 급한 대로 퀵서비스를 불러" 전달부터 마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1일 설날 밤 9시, 인근 재택치료 전담병원 간호부장의 팍스로비드 조제 연락을 받고 곧장 약국을 나가 확진자 집에 직접 배달한 적도 있다.

약 전달 지원 체계의 공백은 품앗이로 메꿨다. 모든 약국이 재택치료에 참여한 2월 16일 전까진 재택치료 담당 약국이 따로 지정돼 있어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확진자는 A동에 사는데 멀리 B동의 약국으로 처방전이 간 경우도 있었고, 소아약처럼 소아과 인근 약국만 가지고 있어서 조제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였다. 정 약사는 "지역 약사들이 카카오톡 등으로 모종의 플랫폼을 만들어 약을 서로 빌리고 빌려주고, 확진자에게 가까운 약국으로 처방전을 서로 보내주면서 혼란을 헤쳐나갔다"고 말했다.

인구 수가 적은 기초 지자체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먹는 치료제 담당 약국 경우, 큰 도시엔 같은 관할 지역 안에도 여러 개가 있어 야간 근무를 나눠 맡을 수 있지만, 1개밖에 없는 지역은 매일 밤을 대기 상태로 지내야 한다. 인구 19만여명이 있는 지역에서 먹는 치료제 담당 약국의 A 약사는 "3·1일절 휴일에 지인들과 식사를 하러 나가다 팍스로비드 처방 연락을 받고 그대로 차를 돌려 약국을 갔다"며 "그렇지 않으면 대리인이 인근 다른 시의 지정 약국까지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 팬데믹 땐 같은 실수 반복 안돼"
  
지난 12월 2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보건소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관계자들이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지난 12월 2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보건소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에서 관계자들이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처방전 아직 팩스로 안왔는데, 제가 퇴근 안하고 기다릴게요."

수화기 너머 다급한 확진자 말에 정 약사가 대답했다. 이날 약국 문은 밤 10시 40분 닫혔다. 재택치료를 중심으로 한 오미크론 방역 체계 이후 일상이 된 야근이다.

오미크론 유행의 예상 정점까진 앞으로 2주가 더 남았다. 질병관리청은 이달 중순 25~27만명의 신규 확진자를 예상한다. 2월 1일 1만명 후반대였던 확진자는 5일 5만명을 넘겼고 18일 10만명대를 찍은 뒤, 23일 17만명대에 진입해 3월 2일 21만9241명을 기록했다. 이를 따라 약국 현장의 혼란과 업무도 가중돼왔다. 정점까지 어떤 혼선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오미크론 유행으로 끝나지 않거나, 인수공통감염병 재난이 또 반복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 약사는 이번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역·의료 지원 체계가 지나치게 의사 중심으로만 이뤄지면서 다양한 보건의료자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고 행정력과 비용을 낭비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한 예가 신속항원검사다. 각자가 약국, 편의점에서 자가검사키트를 살 수 있고 자율로 검사도 하고 있는데, 지정된 병원의 의사 앞에서 하는 자가검사키트는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라 따로 부르면서 수가만 5만 9000원이 지출된다. 이해가 가지 않는 설계"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 4개월 간 재택치료 확진자 처방약 목록을 보면 대부분 진해거담제, 해열진통제, 소염진통제, 지사제, 소염진통가글 등 약국에서 의사 처방 없이 바로 판매 가능한 일반약으로도 충분히 조제 가능한 처방약이었다"며 "고위험군을 제외하곤 확진자·격리자가 직접 동네 약국에 상담해 간편하게 증상에 맞는 일반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 경우 의사 진료가 필요해 보인다면 약사가 의료기관에 진료를 권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공 플랫폼'에 대한 아이디어도 꺼냈다. 의료기관의 정보를 한데 모아 확진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팩스로 처방전을 받은 약사들이 카카오톡방에서 '이 약 조제 가능한 분?' '이 환자 집과 가까운 분?'이라고 일일이 찾았던 것도 정보 허브에서 수월히 해결 할 수 있다. 이미 코로나 시기 유사한 민간 플랫폼들이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정 약사는 "보건의료는 알고리즘이 악용돼선 안 되는 영역인 만큼, 공공성을 담보한 공적 플랫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A 약사는 "코로나 상황에서 민간의 병원이나 약국들이 전체적인 공공 보건의료체계에 편입돼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어떻게 역할분담을 할지 논의된 적이 없다"면서 "이번 경험을 토대로 제대로 된 관계를 구축해야 하고, 그 시스템을 만드는데 의사와 약사, 간호사 등 다양한 보건인력과 일선 실무 담당자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태그:#코로나 시기 약국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