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수정 : 2월 28일 오후 5시 25분]
 
2021년 5월 14일 오후 16개월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린 서울남부지법앞에서 한 시민이 정인이 사진을 들고 주저앉아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2021년 5월 14일 오후 16개월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에 대한 1심 선고가 열린 서울남부지법앞에서 한 시민이 정인이 사진을 들고 주저앉아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2021년 1월, 입양 이후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와 방조로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정인이의 사연이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애도하기 위해 온라인상에서 일어났던 해시태그(#) 운동의 슬로건이 바로 '우리가 바꿀게'였다.

이른바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진 양천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 안전망을 돌아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인 일명 '정인이법'이 2021년 2월 26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인이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년여, 정인이에게 사과했던 우리 사회는 무엇을 바꿔냈을까.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홍창표 사무국장은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아동학대 사건에 컨트롤 타워가 없다"고 짚었다. 또한 '반쪽짜리 공공화'로 인해 발생한 새로운 문제점들이 있다고 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것 같아요. 현재는 아동학대 대응체계가 공공화가 되어서 현장 조사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사례 관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분담하고 있어요. 기존에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있었고,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기 위해 중앙 단위의 (중앙) 입양원, 건강가정지원 센터들을 하나로 묶어 '아동권리보장원'이라는 곳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반쪽짜리 공공화'가 됐다고 봐요. 공공화가 됐다면 아동학대 예방 사업 전반에 대한 공공화를 시행해야 하는데, 현장 조사를 하는 전담공무원 배치만 공공화가 된 거죠."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안' 통과 1년... 여전한 '빈틈'  

홍 국장은 "아동학대 대응체계가 공공화로 전환되기 이전에는 학대 판단 여부를 떠나 필요한 경우 피해 아동의 치료를 지원해주는 등의 적극적인 진행이 가능했지만, 현재로선 어렵다"라고 '빈틈'을 짚었다. 신고를 받고 학대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전담공무원으로부터 학대라고 판단 돼야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사례 관리팀으로 넘어가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현장의 판단'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홍 국장의 문제의식이다. 일단, 현재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수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복지부는 연간 아동학대 의심 신고 접수 50건당 전담공무원 1명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기준, 전국 광역지자체 17곳 중 복지부의 배치 권고 기준을 충족한 곳은 3곳(서울·부산·경남) 뿐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공무원일 뿐 아동학대 업무를 지속적으로 주관해 오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아동 학대 사건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단계에서 신고 사례가 아동학대로 판단되지 못하는 빈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인이법 적용 첫 사례... 징역 30년형 선고 
법 통과 이후 현재까지 정인이법이 적용된 사례는 단 1건이다. 지난해 6월 남해군 자택에서 의붓딸의 배를 여러 번 때려 숨지게 한 '남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 A씨는 아동학대 처벌법 위반·아동학대 살해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인 정인이법이 처음 적용됐다.

더불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학대 범죄의 양형 기준을 상향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의결했다. 지난 1월 24일 양형위원회는 제114차 회의를 통해 아동학대치사 범죄에 대한 기본 양형 범위의 상한선을 4~7년에서 4~8년으로 수정하고, 죄질이 나쁜 경우 적용되는 가중 영역의 범위를 6~10년에서 7~15년으로 올렸다. 양형위는 "죄질이 나쁜 가중 영역에 대한 형량 상향의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특별가중인자가 특별감경인자보다 2개 이상 많을 경우, 최대 징역 22년 6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상향 조정했다.
 

홍 국장은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면, 함께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이 'CCTV가 없다' 또는 '아이들이 어려서 진술이 안된다'라는 식의 적극적 노력 없이 사건을 넘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라며 경찰의 인식 변화도 호소했다.

가장 최근 집계된 현황을 짚어보자면, 2020년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4만 2251건(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달한다. 이 중 실제 형사처벌로 넘어간 사건은 단 267건 뿐이다. 같은 해 43명이 아동학대로 사망했다. 

"이게 지금 다 다른게 문제에요. 전 과정에서 전부 똑같이 효력을 발생시키고 적용을 해야 하는데 어디 전문기관, 전담공무원이 맡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디 경찰, 검찰, 법원이 담당하느냐에 따라 다 다르고... 국민도 '이건 학대고 큰 처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명확한 판단이 가능한데, 이렇게 기관별 편차가 크니 나중에 법원에서 몇 년형이 나왔다고 했을 때 '구형이 너무나 터무니없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거죠. (아동 학대 사건 전반을 꿰뚫는 체계가 없어) 전반의 과정이 빈틈으로 가득 차 있어요."

홍 국장은 "아동권리보장원이 컨트롤 타워가 되어서 (빈틈을 메꿔가며) 여론을 수렴해 진행해야 한다"며 역할을 촉구했다. 2020년 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약 4만 2천 건에 육박한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재 전국에 73곳뿐이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2021년 1월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양부모 학대로 사망한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자연묘지에 2021년 1월 5일 오전 추모객들이 적은 추모글과 함께 간식, 장난감이 쌓여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사건은 반복된다, 그리고 잊혀진다

아동학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 우리는 분노하고, 여론을 반영한 국회의원들은 서둘러 법안을 발의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실제로 '정인이 사건'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2021년 1월 2일부터 1월 8일까지 일주일 동안 여야는 앞 다투어 관련법 20여개를 새로 발의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정인이 사건 이후 사람들은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하고 법원으로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아동학대 사건을 전하는 끔찍한 뉴스는 오늘까지도 들려온다.

"중요한 건 '신고가 들어왔다'의 문제가 아니라, 신고 되기 전에 사람들의 인식을 재고하는 예방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해요. 국민들의 인식 재고를 위한 부분들이 (정책에) 포함돼야 하죠. 그런데 요즘 교육, 캠페인, 홍보 이런 것들이 다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되고 있잖아요. 온라인 교육의 한계가 분명히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교육할지, 이에 대한 예산을 투여할지 등의 변화를 보여주는 모습이 전혀 없어요."

아동을 학대한 행위자에 대해 엄벌을 촉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양형의 기준을 높이며 사회적으로 처벌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지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이 아닌, 가해 행위의 발생 자체를 막는 차원의 접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는 게 중요하지만, 유달리 교육을 거부하는 분들이나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교육하는 게 사실 더 중요하거든요. 그런 분들을 상담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는 동안 학대가 또 발생을 하니까, 사례 관리하는 입장에서도 소모적이죠."

아동학대 사건은 현장 조사뿐만 아닌, 사례 관리도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사례 관리 절차에선 아무런 강제성이 없어, 관리대상자가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거부하거나 사례 관리의 과정을 따라오지 않는다면 더 이상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홍 국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사실상 재학대를 방조하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탄식했다.

마지막으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혹은 학대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해주고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좀 어려운 질문인데요... 사실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일에 오래 종사해왔고, 신입부터 기대를 가지고 앞만 보고 17년, 18년을 달려왔거든요. 근데 점점 '왜 이렇게 안 변하지?' 혹은 '정권이 바뀌어도 왜 국가가 관여를 안 하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이런 모습들이 아이들에겐 되게 미안한 거죠. 사실 상담원들에게도 '희망을 가져라'라는 말을 못 하고 있는데, 아이들한테는 글쎄요(한숨). 이 부분은 답하기가 어렵네요."

태그:#정인이법, #정인이 사건, #아동학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