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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아래 공정위)는 계약서 미발급, 대금 후려치기 등의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현대중공업에 과징금 208억 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또 관련 자료를 빼돌리는 등 조사를 방해한 행위도 적발해 회사에 1억 원, 직원 두 명에게 각각 2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피해구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과징금은 국가에 귀속될 뿐이었다. 만약 조사방해 행위가 없어서 보다 넓은 범위에 걸친 하도급 위반 행위에 대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면, 피해자들에게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피해배상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피해업체들은 공정위가 자료인멸행위에 대해서도 과태료 부과가 아닌 고발 조치를 하길 기대했다. 현대중공업의 자료인멸행위로 인해 조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제재처분은 과태료 부과에 그쳤고, 2020년 6월 하도급 피해업체들과 참여연대가 현대중공업을 증거인멸죄로 고발했다. 그리고 2021년의 마지막 날, 현대중공업 임직원 3명이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오래전부터 뉴스로 봐왔던 대형 조선사의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질관행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반복되는 하도급 뉴스에 대해 지루함을 느낄 정도다. 다른 업계 근로자들의 권리 보장 범위가 늘어난 것에 비하면, 유독 조선업계 근로자들의 시간만 느리게 흘러가는 것은 왜일까.

한익길 현대중공업하도급갑질피해하청업체대책위원회 대표와의 인터뷰는 이러한 의구심을 품고 시작됐다.
 
화상으로 대담을 진행한 법무법인 도담 김남주 변호사(아래)와 현대중공업하도급갑질피해하청업체대책위원회 한익길 대표(위)
 화상으로 대담을 진행한 법무법인 도담 김남주 변호사(아래)와 현대중공업하도급갑질피해하청업체대책위원회 한익길 대표(위)
ⓒ 이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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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선업계 하도급 갑질 피해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대표변호사와 한익길 대표가 지난달 26일 진행한 화상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김남주 변호사(아래 김) : "현대중공업 갑질로 인해 폐업한 사업의 피해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한익길 대표(아래 한) : "제가 현대중공업에서 본 피해액수는 22억 정도로 추산이 됩니다. 지금도 이 때문에 허덕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직원들 퇴직금을 못 준 것 등의 문제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주변업체 사장 중에는 4대보험료 연체로 인해 횡령 혐의가 적용되어 실형을 사신 분도 계십니다. 피해 하도급 업체 15곳의 총 피해액은 1089억 원 가량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원래 받아야 하는 대금의 40%정도로, 피해업체들은 평균적으로 40%의 금액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업체 사장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세금이 밀려있고, 거래처에 제대로 거래대금을 주지 못하거나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서 부채가 많습니다."

: "조선업계에서 하도급법 위반 행위가 일상화된 계기가 있나요?"
: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10년대 초반부터 물동량이 줄면서 조선업계의 경영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국내 조선업계들이 해양플랜트 산업에 경쟁적으로 진출했습니다. 대형 조선사들은 설계능력 부족으로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자 하도급업체에 낮은 대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손실을 줄였습니다. 즉 저가수주로 인한 원청업체의 적자 손실을 하도급업체에 전가한 것이죠. 하도급 업체끼리 경쟁해서 단가를 낮춘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부당하게 하도급 대금을 인하한다는 것은, 원청업체가 하도급업체에 이익 보전이 불가할 정도로 원가 수준 또는 원가 이하의 대금을 일방적으로 통보한다는 것입니다."

: "대형조선사가 해양플랜트 산업을 하면서 적자가 났던 이유는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한 경험이 적어서 설계능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과 경쟁이 과열돼서 저가에 사업을 수주했다는 문제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 "네 맞습니다. 어느 정도로 저가에 수주했냐하면 2010년 이전 해양플랜트 산업 관련 선박의 설계를 제외한 시공가보다 2010년 이후 설계를 포함한 시공가가 훨씬 낮게 책정된 정도였습니다. 비슷한 업종인 육상플랜트와 비교하더라도 작업여건이 더 어려운 해양플랜트가 40% 이상 낮은 단가를 적용하고 있는 슬픈 현실입니다."

: "조선업계에서 하도급 갑질 거래 관행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나요?"
: "원청업체와 사내협력사들은 거래대금을 공수 계약방식으로 산정합니다. 공수는 일정한 작업에 필요한 표준적인 노동시간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대금을 산정할 때, 앞서 말씀드린 업계 자체의 단가가 낮은 문제뿐 아니라, 원청이 하도급업체의 실제 작업량에 대해서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협력사의 실투입공수와 원청업체에서 인정하는 공수사이에 발행하는 차이가 생겨 하도급업체가 알고 있는 수준보다 대금이 인하되는 것입니다. 원청업체에서는 예상공수를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품셈'이라는 것에 대한 정보도 협력사에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 "대금을 정산할 때 원청업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는 건가요?"
: "물론 정산할 때 원청업체에 이의를 제기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다음달에는 잘해준다는 식으로 구슬린 게 전부입니다. 현대중공업과 거래하기 전 다른 대형 조선사와 거래했을 때는 이전 달 대금을 충분히 지급하지 못하면 그 다음달에 대금을 좀 더 주는 식으로 일시적인 손해에 대해서 보상을 해줬습니다. 그래서 현대중공업과도 믿고 거래를 지속한 건데, 결과적으로 거래를 계속하며 손실만 커졌습니다."

: "네. 그리고 이렇게 공수 인정이 제대로 안 되는 데에는 조선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 "맞습니다. 조선업계 하도급업체는 추가공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추가공사는 본공사와 달리 주로 계약체결에 앞서 하도급업체가 작업에 착수하는 '선시공 후계약' 형태로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이에 따라 계약서면이 작업 시작 후 또는 완료 후에 발급되는 경우가 많으며, 사전에 작업물량, 즉 공수에 대한 결정 없이 작업이 이루어져 협력사의 실투입공수와 원청업체가 인정하는 공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현대중공업 조선소
 현대중공업 조선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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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하도급갑질피해하청업체대책위원회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한 : "먼저, 대책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말씀드리면, 2015년 원청업체의 갑질 거래를 견디다 못해 사내협력사의 관계자가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이에 부당한 대금 삭감으로 도산한 사내협력사들이 모여 현대중공업하도급갑질피해하청업체대책위원회(이하 현중갑질대책위)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조선3사하도급갑질피해하청업체대책위(이하 조선3사대책위)로 조직이 확대됐습니다. 조선3사대책위의 여러 하도급업체들이 함께 공정위에 신고를 했고, 이에 공정위가 조선소 하도급 갑질 거래를 중요사건으로 분류해, 2018년 신고사건 뿐만 아니라 미신고 하도급거래에 대해서도 직권조사를 겸해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하여 조선 3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재처분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느껴서 국회와 정부에 조선산업의 불공정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에 조선산업 상생협력 TF가 생겨서 이곳에 전 사내협력사 임직원의 입장에서 제도적으로 변화를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TF에서 필요한 증거자료를 요청하면 자료확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기억에 남는 활동들이 있나요?"
: "대책위는 지방에 소재지를 두고 있는데, 법무법인 도담을 포함해 참여연대와 민변 등 단체의 도움으로 대책위가 지방에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국회, 청와대, 공정위 앞에서 기자회견과 집회 등의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정위 직권조사를 이끌어낸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앞 집회와 조선 3사 피해업체가 처음으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 기자회견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남주 변호사와는 2018년에 변호사님이 먼저 울산으로 내려와 조선소 하도급 피해업체들에 대해 공익상담을 해주면서 변호사님들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 "그렇다면 대책위 활동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은 없나요?"
: "일전에 김 변호사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좀 더 일찍 만나서 사건해결 노력을 했으면 실질적 성과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 이어지는 기사"세상에 하도급 불공정 문제 널리 알린 것이 우리의 성과"

덧붙이는 글 | 이한솔 기자는 법무법인 도담의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도담의 홈페이지 등에 위 기사 내용을 재구성하여 게재할 수 있습니다.


태그:#공정위, #과징금, #조선업, #하도급, #불공정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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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도담에서 홍보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도담과 함께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공감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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