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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2020년 3월 2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가평 청평면 고성리 '평화의 궁전' 앞에서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의 감염병 의심자 조사진찰을 하기위해 경찰, 소방관, 보건소 직원등에게 현장지휘를 하고 있다.
 2020년 3월 2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가평 청평면 고성리 "평화의 궁전" 앞에서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의 감염병 의심자 조사진찰을 하기위해 경찰, 소방관, 보건소 직원등에게 현장지휘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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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궁뎅이 버섯, 목이버섯, 표고버섯, 황금송이버섯... 먹을 수 있는 버섯은 다 들어간 샤부샤부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갈 궁리를 하고 있던 2020년 3월 2일 저녁,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재명 지사가 거기를 간다는데?"

'거기'는 약 30분 전에 빠져나온 경기도 가평시 청평면 고성리 '평화의 궁전'이었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만희 총회장의 그곳, 맞다. 그날 나는 이만희 총회장의 기자회견을 취재했다. 오후 3시 13분 열린 기자회견 후 6시쯤 기사 송고를 마쳤고, 동료 사진기자와 서울로 돌아가던 길에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신천지의 집단감염사태가 심각한 상황이긴 했지만 경기도지사가 여기에 직접 온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평화의 궁전으로 돌아갔고, 1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이재명 지사를 봤다. 그는 이만희 총회장이 역학조사 요구를 거부했다며 직접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총회장은 이미 빠져나가 과천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은 터였다. 떠들썩한 수색전의 허무한 결과에 또 한 번 당황스러웠다.

그때 이재명은 했다

기자에게 난감한 현장으로만 남았던 그날은 대중들에게는 다른 기억이 됐다. 1년 후, 민주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만난 이재명 캠프 관계자는 이 장면을 '변곡점'으로 꼽았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던 국면에서 이재명 지사가 '방역을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구나'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결정적 장면이라는 얘기였다. 

실제로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2020년 3월 2일부터 6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25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살펴보면, 이재명 지사는 1개월 전보다 7.4%p 급상승해서 9개월 만에 두 자릿수를 탈환했다. 당시 1위는 30.1%를 얻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 그의 아성은 견고해보였다. 하지만 이재명 지사는 이 조사를 계기로 상승세를 이어갔고 2021년 10월 민주당의 최종 후보로 낙점됐다.

'평화의 궁전까지 찾아갔을 정도로, 이재명은 합니다'는 이재명 후보의 강력한 브랜드다. 본선 과정에서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이란 새 캐치프레이즈와 슬로건을 내놓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최대 강점으로 실행력을 말한다. 후보 스스로도 공약발표나 '매타버스' 현장 연설에서 "저는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 "약속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약속을 지키는 건 원래 지켰던 사람"이라며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피해 지원을 위한 3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위한 여야 모든 대선후보 간 긴급 회동을 제안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피해 지원을 위한 3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위한 여야 모든 대선후보 간 긴급 회동을 제안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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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추가경정예산 편성 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보면,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재명 후보는 줄곧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제대로 지원해야 한다며 대규모 추경 편성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지난 21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올해 1차 추경 예산안 규모를 14조 원으로 의결하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 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추경 편성에 100% 공감하고 환영한다"며 정부의 부담을 덜기 위해 여야 대선 후보가 만나 '차기정부 재원으로 35조 원 마련'에 동의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윤석열 후보님, 전에도 50조 원 지원 얘기하고 나중엔 '당선되고 하겠다'고 뒤로 뺐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길 간곡하게 요청드린다."

같은 날 윤석열 후보는 "저는 이미 할 얘기를 다 했다"며 이 후보의 회동 제안을 거부했다. 그런데 이만희 총회장을 찾아 나섰던 '이재명 지사'와 '이재명 후보'는 달랐다. 1월 27일 광주광역시 말바우시장을 방문한 그에게 취재진이 '추경 문제로 윤석열 후보를 직접 찾아가 설득할 생각 있는가'라고 묻자 이 후보는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우리 윤석열 후보께 제가 부탁을 꼭 드리고 싶은 것이, 표를 얻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 국민의 고통에 대해서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시고 국민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진정성 있게 좀 접근해주시길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추경 증액을 위한 또 다른 협상대상, 중앙정부를 설득하는 일에서도 이재명 후보 특유의 돌파력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재정당국의 관료주의를 비판해왔던 그였다. 코로나19 영업손실 보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라고 반복해온 표현은 워낙 자주 써서 후보를 따라다니는 '마크맨' 기자들은 외울 정도다. 하지만 그토록 말보다 실천을 강조해온 정치인 이재명은 지난 몇 달 사이에 점점 만나기 힘들어졌다.

지금 이재명은 '하겠다'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월 27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말바우시장 방문해 일정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월 27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말바우시장 방문해 일정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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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피부에 와 닿는 민생 문제에서 이러한데 "살점도 떼어내고 있다"고 표현한 민주당의 쇄신, 정치교체처럼 가치중심적이고 추상적인 사안에 국민들이 호응할 수 있을까?

"이재명의 민주당"을 외친 지 두 달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재명의 민주당"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아니 이재명의 정치가 무엇인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이 달라질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재명 후보 본인이 '행동'으로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번 설 연휴 동안 국민통합 대통령, 위기극복 민생대통령, 반칙과 특권을 일소하는 개혁대통령, 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는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되겠다는 '임인년 국민과의 약속' 네 가지를 발표했다. 29일 녹화 후 2일 방송된 지역민영방송협회 인터뷰에선 '집권시 50조 원 이상 긴급재정명령'도 한 번 더 내걸었다. 모두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권한을 위임받은 행정가와 권한을 위임받길 기다리는 후보는 다르다. 하지만 50% 안팎을 공고히 유지하는 정권심판론에서 볼 수 있는 '성난 민심'은 여당 후보의 '하겠다'는 약속만 믿을 수 없다. '추경 확대를 위해 상대 당과 후보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호소로 그치는 모습은 이들에게 '이재명은 한다더니...'라는 말만 남긴다. '2020년의 이재명과 2022년의 이재명은 다른가'란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재명 후보 본인뿐이다. 

[관련기사]
[2020년 3월 2일]신천지 이만희, 이재명 피했나?... 한밤의 '평화의 궁전' 수색 http://omn.kr/1mr08
[2020년 2월 대선주자 선호도조사]이재명 5.6 → 13.0% 급상승... 대선주자 판 흔드는 코로나19 http://omn.kr/1mtia
[2022년 1월 21일]이재명, '14조→35조 추경' 대선후보 긴급회동 제안 http://omn.kr/1wzyv
[2022년 1월 23일]이재명 "윤석열은 없는 죄 뒤집어씌울 것... 난 정치보복 안해" http://omn.kr/1x0j4

태그:#이재명, #코로나19, #추경,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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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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