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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선거 만큼 정치 이슈가 실종된 선거도 드물다. 양대 진영이 격돌하는 대선의 성격상 각종 네거티브와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게 마련이고 선거의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를 감안해도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 현실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성찰의 부재를 목도한다. 공약은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지는 즉응적이고 즉자적 정책이 대부분이고 미래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현행 대통령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5년 후 대선이 치러진다면 지금보다 더 극심한 진영 대결과 혐오선거가 될 게 뻔하다. 현재의 5년 단임의 대통령제의 개폐를 포함한 제도 개선이 논의돼야 할 이유다. 진영간의 박빙 싸움은 이러한 당위를 송두리째 무시하고 있다. 

86용퇴론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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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제기한 정치이슈는 그러한 의미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86세대 용퇴론'이다. 이미 여러 번 이슈화된 적이 있기 때문에 참신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도가 정체된 상태에서 절박함이 수반되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역대 총선이나 대선의 경우에도 공천혁신과 인적쇄신을 강도 높게 추진하는 쪽이 승리한 사례가 많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상향식 경선과 1인 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실시, 지구당 폐지 등은 한국 정치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가 조금씩 전진해 온 증좌들이다. 그리고 이는 진보진영의 어젠다들이 보수진영의 공감을 이끌어낸 개혁 이슈들이었다.  

86세대가 성장한 역사적 배경과 정치사회적 맥락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냉전에 저항하고 군부와 재벌, 관료의 삼각동맹의 부조리를 타파하는 과정이 민주화와 관련되면서 시대의 총아로 각광받았던 86그룹은 스스로 기득권이 됐다.

그들이 수구기득권이라고 비판하고 정치의 대척에 두고 있는 보수기득권 세력과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운동의 정치가 제도정치로 진입하면서 정치권력과 공공영역에서의 양지를 돌려가면서 차지하는 완벽한 기득권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냉전 이데올로기가 수명을 다했고, 최소정의적 관점의 민주주의가 제도화와 함께 정착된 지금 미래를 담지할 수 있는 그룹으로서의 86세대의 소임은 끝났다. 민주당의 86 용퇴론은 비록 선거의 절박함의 표시라는 정치공학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결국은 인적쇄신 없이 개혁은 불가능하다. 

육참골단을 감내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윤호중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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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와 경기 안성, 청주 상당 등 민주당 의원의 궐위로 발생한 보궐선거 지역구 무공천 약속도 책임정치의 측면에서 민주당에 마음을 주지 못하던 유권자의 표심을 모을 수 있는 이슈다. 이 역시 실천이라고 본다.

이미 민주당은 지난해 4.7 서울, 부산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깬 이력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도 위성정당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저버린 전력이 있다. 이러한 데자뷔가 이번에 다시 재연돼선 안 된다.

하나 더, 동일지역 4선 연임금지는 이미 정치개혁 차원에서 많이 제기됐던 의제다. 86세대의 퇴장과 맥을 같이 할 수 있지만 당내는 물론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공감을 얼마나 얻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선거는 절박한 쪽이 승리한다. 그리고 대선을 관통하는 의제를 제시함으로써 이슈의 주도권을 잡는 진영이 이긴다. 정권교체론이 50%를 넘는 현재의 상황은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는 운동장으로서의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여야 모두 후보 본인과 가족 등 주변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약의 차별성은 보이지 않고,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보수는 진보로, 진보는 보수로 수렴한다. 현대 정당은 포괄정당으로서 양쪽 지지를 견인하려고 당력을 모으는게 추세이기도 하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는 대표성과 책임성이다.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제가 가능할 때 지속 가능하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책임성을 "시민의 선호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 반응"이라고 정의했듯이 현 정권의 핵심들인 86세대가 진정성있게 시민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선의 이슈를 장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신뢰의 위기는 증폭될 수 있다. 인적쇄신은 책임정치의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대선 승패가 반사이익으로 얻어질 수는 없다. 과연 민주당은 육참골단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까. 민주당은 스스로 독립변수가 될 수 있을까. 승리의 키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모두 스스로들이 쥐고 있다. 시민들은 민주당의 정치혁신의 진정성을 보려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창렬씨는 용인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입니다.


태그:#정치개혁, #최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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