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유럽 평가전 2경기에서 9골 1실점이라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길피 시구르드손(에버튼FC)과 요한 그뷔드뮌손(번리FC) 등 핵심 선수들이 빠진 아이슬란드와 피파랭킹 181위 몰도바는 평가전 상대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A매치 기간이 아니었던 시기에 유럽팀을 상대로 실전경험을 쌓은 것은 레바논, 시리아 원정을 앞둔 벤투호에게는 분명 좋은 훈련이 됐을 것이다.

이번 평가전의 최대수확은 역시 K리거들의 재발견이었다. 그동안 손흥민(토트넘 핫스퍼FC)을 비롯해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FC), 황의조(FC 지롱댕 드 보르도), 김민재(페네르바체 SK) 등 유럽파들에 가려 대표팀에서 출전기회조차 잡기 힘들었던 K리거들은 이번 평가전을 통해 '한풀이'에 나선 듯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다. 특히 김진규(부산 아이파크)와 권창훈, 조규성(이상 김천 상무FC) 등의 활약은 더욱 돋보였다.

하지만 K리거들이 '진짜 실전'인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과 본선에서도 중용되기 위해선 해외파들에겐 없는 자신만의 확실한 경쟁무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선수는 이번 평가전 2경기를 통해 벤투 감독과 축구팬들에게 자신의 경쟁력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아이슬란드전의 멋진 중거리 슛과 몰도바전의 프리킥골로 위력적인 슈팅능력을 뽐낸 미드필더 백승호(전북 현대 모터스)가 그 주인공이다.
 
유럽에서 적응하지 못한 바르셀로나 유망주
 
 터키 안탈리아에서 진행 중인 축구 국가대표 전지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백승호가 13일 훈련지인 코넬리아 다이아몬드 필드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오는 15일 밤 8시 안탈리아에서 아이슬란드와 평가전을 치른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터키 안탈리아에서 진행 중인 축구 국가대표 전지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백승호. (대한축구협회 제공) ⓒ 연합뉴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백승호는 이승우(수원FC), 장결희와 함께 지난 2010년 FC바르셀로나의 유스팀과 계약했던 특급유망주 출신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유망주들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FIFA의 규정을 어겼다는 고발이 들어오면서 백승호는 만 18세가 될 때까지 모든 공식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축구선수로서 가장 많은 성장을 할 수 있는 시기에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된 것이다.

백승호는 징계 기간을 채운 후 바르셀로나 A팀과 B팀을 오가며 훈련을 소화했고 2015-2016 시즌 바르셀로나 B팀에 포함돼 3부리그에서 1경기를 소화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백승호는 2016-2017 시즌에도 바르셀로나B팀에서 활약했지만 역시 공식경기에서는 1경기에서 16분을 소화한 것이 전부였다. 결국 백승호는 2017년 8월 바르셀로나를 떠나 지로나FC의 2군팀인 CF페랄라다로 이적했다.

백승호는 2017-2018 시즌 페랄라다 유니폼을 입고 34경기에 출전했다. 비록 득점은 1점에 불과했지만 경기당 약 75분을 소화하며 주전으로 활약했고 시즌이 끝난 후 지로나 1군으로 승격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백승호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최종명단에서 제외됐고 이 대회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내면서 바르셀로나 유스팀 동기였던 이승우와 희비가 엇갈렸다.

백승호는 2018-2019 시즌 라리가에서 3경기,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 레이)에서 3경기를 소화하며 이천수, 이호진, 박주영(울산 현대), 김영규(대전 한국철도)에 이어 5번째 한국인 라 리가 선수가 됐다. 하지만 1부리그에 적응하지 못한 백승호는 대부분의 시간을 3부리그에서 보냈고 2019년 8월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리그의 SV다름슈타르98로 이적하며 스페인을 떠나 독일생활을 시작했다.

분데스리가 2부리그에서 두 시즌 동안 활약한 백승호는 이적 첫 시즌 주전급으로 활약했지만 2020-2021 시즌 팀 내 입지가 많이 줄어 들었다. 결국 2021년 2월 백승호의 K리그 이적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수원삼성 블루윙스와의 합의서 위반논란 끝에 같은 해 3월 전북 현대와 공식적으로 계약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FC)에게 어시스트 해줄 것을 꿈꾸던 유망주가 긴 시간을 돌아 K리그 무대를 밟게 된 것이다.

유럽원정서 2경기 연속 중거리 골로 눈도장
 
 백승호는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2경기 연속골로 벤투 감독과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백승호는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2경기 연속골로 벤투 감독과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 대한축구협회

 
사실 스페인 3부리그 정도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성공적인 적응력을 보여주지 못한 백승호에게 K리그 입단은 프로선수로서 좋지 않았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실제로 백승호는 2021년 시즌 정규리그 25경기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7경기, FA컵 1경기 등 총 33경기에 출전해 4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전북현대의 K리그 5연패에 기여했다. 백승호로서도 프로 커리어의 첫 우승경험이었다.

청소년 대표 시절에는 이승우와 함께 한국의 쌍두마차로 활약하던 백승호는 성인대표팀에서는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9년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에 발탁돼 이란과의 친선경기에서 주전으로 출전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백승호는 2021년에도 꾸준히 대표팀에 소집됐지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벤치만 지키기 일쑤였다. 경기 막판 어쩌다 그라운드를 밟아도 기량을 뽐내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게 대표팀을 겉돌던 백승호는 지난 15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아이슬란드, 몰도바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좋은 기회를 잡았다. 아이슬란드전 4-1-4-1 포메이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출전한 백승호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한국의 5-1 대승에 기여했다. 특히 전반 29분에는 송민규(전북 현대)의 패스를 받아 아이슬란드의 우측 골문 상단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림 같은 중거리 슛으로 A매치 데뷔골을 터트렸다.

백승호의 상승세는 21일 몰도바전에서도 이어졌다. 4-4-2 포메이션에서 김진규와 함께 중원에 배치된 백승호는 경기 초반부터 날카로운 슈팅으로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다가 전반 33분 좌측 패널티박스 부근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백승호가 낮게 감아 찬 공은 원바운드로 몰도바의 왼쪽 하단 구석으로 들어가며 골로 연결됐다. 몰도바전에서 71분을 소화한 백승호는 축구통계 전문사이트 FotMob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8.0의 평점을 받았다.

한국은 손흥민과 황의조, 황희찬 등 골을 넣을 수 있는 좋은 공격수는 많지만 공격진 바로 뒤에서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경기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는 마땅치 않다. 물론 한국의 수비형 미드필더 듀오 황인범(FC 루빈 카잔)과 정우영(알 사드 SC) 콤비가 최근 좋은 폼을 유지하고 있지만 백승호 역시 중거리 및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서 충분히 대표팀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원이다. 2022년 축구팬들이 백승호의 활약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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