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3 14:01최종 업데이트 23.08.23 14:22
  • 본문듣기

서울 송파구 부동산 중개업소의 모습. ⓒ 연합뉴스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징후가 전국 곳곳에서 보인다. 토건족에 기생하는 부동산 호객꾼들은 여전히 '집값 상승률이 둔화한 것이지, 하락 전환은 아니다'라거나 '최근 집값 하락은 일시적 조정이지 대세 하락은 아니'라며 애써 현실을 오도하고 있다. 눈치 빠른 투기꾼들의 탈출을 도우려는 심산일 것이다.


이들 주장의 진위를 가리는 일은 복잡하지 않다.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가 정직하지 않다는 점만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직 집값이 견고하다는 증거로 내미는 숫자 대부분은 실제 거래되는 가격이 아니라, 집을 팔려는 사람들이 부르는 '호가'이다. 아직 호가가 크게 하락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거래에서는 과거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가 훨씬 많아졌다.

꺼져가는 부동산 거품

더구나, 매물은 쌓여가지만,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과거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던 사례들을 살펴보면, 실거래 가격이 하락하고 몇 달 후 호가도 내려간다. 당분간은 집주인들이 내려간 가격에 팔지 않고 버티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아야 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고,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집값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의 속내는 '부동산 개발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종 재개발 및 재건축 발표가 나면 즉시 주변 집값이 급등했던 사례들만 보더라도, 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이 오른다는 주장은 거짓말에 가깝다. 집값은 수요가 끌어올렸다고 보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특히, 투자 목적의 수요, 더 크고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하고자 하는 수요, 지금 아니면 영영 내 집을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아 영혼까지 끌어모아 당장 집을 사려는 수요 등 소위 '가수요'가 집값 상승을 주도했다. 이 가수요는 대중의 심리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변동이 심하고, 공급이 이를 충족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이 아니라 대중의 심리가 더 중요하다.

'집값 상승 기대'라는 대중의 심리가 실제 집값 상승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은행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집값이 실제로 오르려면 점점 더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져야 하고,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가계는 그렇게 비싼 집을 살 만한 돈을 쌓아두고 있지 않다. 대부분이 빚으로 집을 샀다는 말이다. 은행이 그 뒷돈(빚)을 댔다. 은행이 그렇게 쉽게 대출해주지 않았더라면, 집값은 그렇게 쉽게 오르지 않았을 것이란 점은 확실하다.

이렇게 은행은 대출을 통해 돈이 흘러가는 방향과 양을 결정하고, 그 결과 경제 전체가 흘러가는 양상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은행이 부동산 거래에 대출하면 부동산 거품이 발생한다. 우리나라 부동산 거품과 붕괴가 반복한 데에는 은행의 책임이 크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은행은 부동산 대출에만 몰두했다. 중소기업 등은 경제성장과 고용에 이바지할 잠재력이 크더라도, 담보(주로 부동산 담보)를 제공할 수 없으면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생태계가 취약한 데에는 이런 금융 관행이 큰 역할을 했다.

이와는 반대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활동하는 지역 은행들은 지역 공동체의 경제적 번영에 이바지해 왔다. 이들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개발했지만 사업 자금이 부족한 지역의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여 강소기업으로 키웠다. 강소기업 천국으로 불리는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렇게 경제의 흐름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은행의 활동은 '공공의 성격'이 강하다. 은행이 어디에 얼마만큼 대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는 정부의 경제정책과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의 대출 결정은 이윤 극대화만을 목표로 이루어진다. 일부 공익활동을 표방하긴 하지만, 대부분이 거대한 이윤 중 극히 일부로 시혜를 베풀 듯 생색내는 행위일 뿐이다.

은행의 공공성

더 근본적으로, 은행의 공공성은 '대출금의 원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여러 지면을 통해 설명한 것처럼, 은행의 대출금은 예금자가 맡긴 돈이 아니다. 그것은 은행이 키보드로 전산망에 입력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돈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내가 집을 사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 내 은행 계좌에 대출금이 숫자로 찍힌다. 이는 은행이 임의로 입력한 숫자에 불과하다(증거 : 은행의 대출금이 예금자의 돈이라면, 대출과 동시에 예금액이 줄어야 하지만, 실제에서 그런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은행의 대출금은 은행이 새로 창조한 돈이다). 이 숫자가 구매력을 갖는 이유는 정부와 사회가 그렇게 허가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내가 이 돈을 집주인에게 건네주고자 하면, 내 거래 은행은 집주인이 거래하는 은행의 계좌로 이체한다. 내 거래 은행이 집주인의 거래 은행에 돈을 지급하는 행위를 '결제'라 부른다. 그런데, 이런 은행 간 결제에 사용하는 돈은 한국은행이 발행한 돈이다(이를 '지급준비금'이라 부르는데, 이 또한 한국은행이 전산망에 숫자를 입력해 창조한다).

결국, 은행의 돈놀이는 한국은행의 지급준비금에 의존하고, 한국은행의 지급준비금 발행은 국가와 사회가 공익을 위해 부여한 권한이다. 다른 말로, 은행의 영업은 처음부터 공공재(지급준비금)에 의존하지만, 은행은 그 공공재를 사익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금융은 역할이나 성격 모두에서 공공재이고, 따라서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은행이 뒷돈을 대서 키운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있다. 나는 뒷일이 더 걱정이다. 우선 은행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금리가 올라가면, 손해를 보고라도 집을 파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가격 상승 기대가 없는데 비싼 이자를 물면서 버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집을 팔려는 사람이 산 가격보다 싸게 손해를 보고 판다고 하라더라도, 은행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대출액 이상으로만 팔리는 한 손쉽게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 설사 집값이 더 크게 하락하여 대출금보다 낮은 가격에 팔린다고 하더라도, 은행은 나머지 잔금을 끝까지 받아낼 것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에 편승해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만 죽어날 것이다.

불행히도,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경제 전체가 위협받는다. 이들이 소비를 줄이면, 당장 동네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진다. 이런 내수 감소는 투자와 고용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경제는 서서히 말라갈 것이다. 이는 마치 저금리를 미끼로 최대한 많이 대출해주고, 갑자기 금리를 올려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격이다. 이것을 '약탈적 금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애초에 부동산 거품을 키우지 말았어야 했다. 은행이 조금이라도 공익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가능했을 일이다.

은행이 어떻게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은행의 대출을 규제하면 보수 언론은 항상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무주택자는 어쩌란 말이냐', 혹은 '물려받는 것 없는 사람은 영원히 내 집을 갖지 말란 말이냐'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집값 상승을 부추긴 보수 언론이 진정으로 무주택자를 위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사회적 약자를 인질로 삼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빚내서 집 사라는 말 외에,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본주택
 

ⓒ 연합뉴스

 

전세 자금이든 주택 구매 자금이든, 무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를 성토하는 이유는 매입 혹은 전월세 말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양자택일 외에 실질적인 주거 안정이 가능한 대안이 존재한다면, 그런 비난은 동의를 받기 어렵다. 실질적인 주거 안정은 저렴하고 양질의 주택이 대량으로 존재할 때 가능하다. 이를 '기본주택'이라 부르자. 무주택자가 (원하면) 평생 거주할 수 있는 저렴한 기본주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부동산 투기에 대한 대출을 제한하더라도, 국민 다수가 동의할 수 있다. 소유권을 인정하는 한, 주택에 대한 가격 안정 정책은 항상 실패한다. 하지만, 제3의 대안을 제공하여 주거 안정은 쉽게 이룰 수 있다.

은행은 기본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기본주택 공급은 결국 자금 조달과 운용의 문제이고, 은행이 이에 전문화된 경제 주체이기 때문이다. 기본주택은 택지를 조성하고 주택을 지어, 무주택자에게 원가로 공급된다. 여기서 '원가 공급'이란 토지와 주택 건설비 모두를 합한 금액을 기준으로 책정된 적당한 임대료를 의미한다(일부는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주택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 '분양'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토지임대부라 해도 시장에 팔리는 순간, 항상 투기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 임대료란 원가에 대한 이자와 건축물의 감가상각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30평 아파트의 원가가 3억 원이고, 토지비와 건축비가 절반씩 차지한다고 가정하자. 공공이 토지를 영원히 보유하면 토지 매입비도 땅에 묶인다. 하지만, 땅은 영원히 존재하므로, 매입비에 대한 이자만 지급하면 된다. 건축비는 조금 다르다. 집을 지으면서 일시에 지급해야 하는 건축비에 더해 건축물의 감가상각비를 고려해야 한다.

50년 후 재건축한다고 가정하자. 그럼 임차인은 월세로 얼마를 내야 할까? 우선 토지비에 대한 이자는 금리가 2%이면 월 25만 원, 3%이면 37.5만 원이다. 건축물에 대한 50년 원리금 균등 상환액은 금리 2%일 때 395,685원, 3%이면 482,966원이다. 따라서, 30평 아파트에 월세 약 65만 원에서 85.8만 원으로 살 수 있다. 원가 3억 원짜리 아파트가 6억~10억 원에 거래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1/3 수준의 거주 비용이다.

여기서 가정한 금리 2~3%가 지나치게 낮다고 시비를 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도 보수적으로 높게 가정한 수치다. 은행이 이윤만 추구할 게 아니라 일부 공익에도 기여하기로 하고, 정부와 한국은행이 지원하면 가능하다. 은행의 영업 방식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은행은 무에서 돈을 창조하여 대출한다. 그럼 은행의 대출 원가는 무엇인가? 우선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비 등 운영 비용이 있다. 하지만, 은행은 이미 거대한 조직을 갖추고 활동하고 있으므로, 기본주택에 자금을 공급한다고 하더라도, 추가로 특별히 큰 운영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 이미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는 격이다.

은행이 대출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비용은 대출채권 유지 비용이다. 은행은 대출자의 계좌에 숫자를 입력하여 대출한다. 대출자가 이 돈을 찾아가거나 다른 은행으로 이체하면, 은행은 지급준비금으로 결제한다. 즉, 은행이 대출하고 대출채권을 장기로 보유하려면 수시로 지급준비금을 조달해야 한다. 지급준비금은 한국은행이 공급하고, 기준금리를 적용한다. 이는 시중에서 가장 낮은 금리이다. 현재 모기지론처럼 장기대출도 이렇게 운영된다. 따라서, 기준금리가 상승하면 기본주택에 적용하는 금리도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장기간 2% 이상 유지될 것이란 가정은 지나치다. 대안적으로, 한국은행이 기본주택에 대한 대출분에 필요한 지급준비금을 우대금리로 빌려줄 수도 있다. 즉, 기본주택 금리 2~3%는 정책적 의지를 반영하는 정책 변수이지,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 변수가 아니란 말이다.

현재 시중 은행의 공공성 강화가 어렵다면, 공익 목적의 자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공공은행'을 설립할 수도 있다. 이는 시중 은행이 절대 바라지 않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나와바리'를 뺏기고 싶지 않으면, 은행은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일확천금을 노릴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공익에 이바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전용복 교수는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 <일자리 보장: 지속 가능 사회를 위한 제안(역서)> 등을 책을 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