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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배은심 여사의 사회장이 진행된 11일 오후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에 어머니인 배 여사의 운구행렬이 들르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그는 아들이 사망한 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삶을 살다 향년 82세의 나이에 지난 9일 별세했다.
▲ 이한열 열사 묘에 놓인 배은심 여사 영정사진 고 배은심 여사의 사회장이 진행된 11일 오후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에 어머니인 배 여사의 운구행렬이 들르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그는 아들이 사망한 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삶을 살다 향년 82세의 나이에 지난 9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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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의 모친인 고(故) 배은심 여사의 노제에서 만장 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 배은심 여사 마지막 길 배웅하는 만장행렬 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의 모친인 고(故) 배은심 여사의 노제에서 만장 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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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와 배은심 어머니가 주저 없이 가고자 했던 길을 제가 잇겠다는 다짐을 다시 새긴다." 

2019년 8월 이한열 장학금을 받은  김민석씨가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이날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소천한 날이다. 배 여사는 지난 3일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8일 퇴원했지만 다시 쓰러져 9일 새벽 향년 82세로 광주 조선대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이한열 장학생인 김씨는 1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배은심 어머니와의 추억을 다시 꺼냈다. 그는 "이한열 장학금 수여식에서 만난 배은심 어머니께서 '한열이와 닮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그 순간 이한열 장학생으로서 열사의 못다한 꿈, 열사의 길을 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과 뜨거운 의식이 생겼다"라고 회상했다. 

현재 김씨는 홍익대 노동자와 학생들이 함께하는 '모닥불' 운영위원장이자 정의당 전국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씨는 지난 2020년 9월 홍익대입구역 2번출구 삼성디지털플라자 공사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승강기에 끼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번화한 홍대 거리에서 노동자들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적인 안전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면서 "우리 곁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죽음의 릴레이를 반드시 멈춰야 한다"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현장 외벽에 붙였다. 대자보 게시 이후 시민들의 추모 포스트잇이 연달아 달렸다.

이한열 장학금은 이한열기념사업회가 2009년 3월부터 전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급해 온 장학금이다. 민주화에 기여한 자의 가족, 사회적 약자, 이한열 정신을 이어받아 활동하는 사람 등이 장학생 선발 대상이다.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270여 명의 청년들이 이한열 장학금을 받았다.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광주 망월동 묘역 안장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 마련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빈소에 조문객이 추모를 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 마련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빈소에 조문객이 추모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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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 마련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빈소에 조문객이 추모를 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 마련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빈소에 조문객이 추모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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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3월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배은심 여사는 1966년 8월 29일 아들 이한열을 낳았다. 이후 아들 한열은 연세대에 입학해 활동하다 스물한 살 나이인 1987년 6월 9일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7월 5일 사망했다. 아들을 떠나보낸 배 여사는 1987년 8월부터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배 여사는 그 후 민주화 운동 현장 맨 앞에서 싸웠다. 이 과정에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선생,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 선생 등과 함께 1998년 422일의 장기 농성을 벌인 끝에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보상법' 제정을 끌어냈다. 그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유가협 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2009년 용산참사가 발생하자 배 여사는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아 싸웠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섰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6월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광주 조선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뿐 아니라 서울 마포구 신촌 이한열기념관 내 마련된 분향소에도 배 여사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조용한 걸음이 이어졌다. 11일 기념관 개관 시간에 맞춰 분향소를 찾은 50대 김아무개씨는 "이한열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열사와 동년배였다"면서 "당시 배은심 어머니가 울부짖었던 모습이 잊히질 않아 인사드리러 왔다. 어머니가 하늘에서 이한열 열사와 뜨겁게 해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10일 저녁 7시 연세대 내 한열동산에서 열린 '추도의 밤'에도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200여 명의 추도객들이 한열동산을 찾았다. 추도객들은 이한열 열사 기념비 위에 놓인 배 여사 영정사진을 향해 묵례를 하고 국화꽃을 올렸다.

아들 한열이 떠난 후 일생을 민주화에 헌신한 배은심 여사는 11일 광주 망월동 8묘역에 안장됐다. 배 여사 묘 바로 옆에는 지난 1999년 4월 사망한 남편 이병섭씨의 묘가 자리해 있다. 배 여사의 묘는 아들 이한열 열사의 묘에서 1㎞ 떨어진 시민묘역이다.
 
고 배은심 여사의 사회장이 진행된 11일 오후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에 어머니인 배 여사의 운구행렬이 들르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그는 아들이 사망한 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삶을 살다 향년 82세의 나이에 지난 9일 별세했다.
▲ 이한열 열사 묘에 놓인 배은심 여사 영정사진 고 배은심 여사의 사회장이 진행된 11일 오후 광주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소에 어머니인 배 여사의 운구행렬이 들르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그는 아들이 사망한 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삶을 살다 향년 82세의 나이에 지난 9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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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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