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2 06:10최종 업데이트 22.01.12 06:10
  • 본문듣기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쌍용자동차 국가피해자와 국가손배대응모임 회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파업 당시 경찰과 쌍용자동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발생한 47억 원과 매년 불어나는 지연 이자로 인햔 고통을 호소하며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과 손해배상가압류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19.12.19 ⓒ 이희훈

 
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신청, 일명 '손배가압류'를 막아보자며 만든 시민단체가 있다. 바로 '손잡고'다. 손잡고는 매달 노동 현장 간담회를 진행한다. 쌍용자동차, 아사히글라스, CJ대한통운, KEC 노조원들과 기아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손잡고 현장 간담회에 참여한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적게는 몇 억, 많게는 몇 백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피고라는 것. 재산에 가압류를 당한 사람도 있고, 이미 손해배상 판결이 확정되어 월급 중 상당액을 회사에 자동 납부 당하는 사람도 있다. 노조 파괴 사업장으로 유명한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노동자들도 이 모임에서 만났다. 


간담회 때마다 현장에서 투쟁해야 할 노동자들의 입에서 '소가'니, '조정'이니, '감정'이니 하는 법률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쩌다 이들은 소송의 굴레에 갇히게 되었을까.

손해를 입혀 청구한 게 아니냐고? 

손잡고가 조사한 2020년 11월 기준, 양대 노총 소속 노동조합 및 조합원 개인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658억 원을 웃돈다. 제보되지 않았거나 양대 노총에 소속되지 않아 누락된 사례까지 감안하면 실제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2017년 6월 말 기준 손해배상 청구금액이 약 1867억 원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금액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청구 이유는 다양해졌다. 파업 등 쟁의행위로 인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청구한 건 외에도 모욕, 명예훼손으로 청구한 것도 12건에 이른다. 청구 대상도 특수고용 근로자, 노조 없는 노동자 등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까지 확대되고 있다(2020 노동권과 손배가압류-소송기록 분석 자료집2020. 11. 30. 손잡고).
 

연도별 사업장 손해배상 청구액(2020 노동권과 손배가압류-소송기록 분석 자료집) ⓒ 손잡고

 
손해를 입혔으니까 회사가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언컨대 손배가압류는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이다. 

삼성그룹의 2012년 노사전략 문건에는 "고액의 손해배상 및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노조를 만든 뒤 노조해산 유도"라고 적혀 있었다. 2011년 10월 유성기업이 만든 '유성노조 가입확대 전략' 문건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징계책임을 묻는 징계절차의 진행과 동시에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면 소송의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일반 조합원들의 압박감이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됨. (유성노조 가입확대 전략 문건)

우리의 소송 구조에서 돈이 있는 자는 소송을 하기가 쉽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소가(소송을 제기해 얻으려는 경제적 이익)는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손해액은 중요하지 않다.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부르는 게 값이다. 이 소가를 기준으로 여러 소송 비용이 결정된다. 기업은 피고를 마음대로 정할 수도 있다. 실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 중 일부만 특정해서 피고로 세울 수 있다. 

손해배상의 책임 구조도 기업에 유리하다. 공교롭게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부진정 연대책임(각자가 손해배상액의 전액을 책임지는 구조)이라는 것이 판례와 통설이기 때문에 피고가 된 각자가 청구액 전액에 대한 배상 부담을 지게 된다. 쉽게 얘기하면 회사가 지목한 몇몇 개인들만 손해배상 책임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는 노동자 중 일부를 특정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손배가압류는 노조를 위축시키고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 된다.

구체적인 실행 과정을 보자. 노조가 파업 등의 쟁의행위를 하면 회사는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한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재산을 가압류한다. 가압류는 가압류를 당하게 되는 사람 모르게 신청인과 법원의 판단만으로 이뤄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재산이 없는 사람에게 가압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피소는 그 자체로 두렵고 번거로운 일이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수임료 등의 각종 지출이 생긴다. 가압류를 당하면 당장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통장 가압류를 당하면 사실상 금융생활이 불가능하고, 전세권에 가압류를 당하면 이사하는 게 불가능하다. 

회사는 불안감에 휩싸인 조합원들에게 접근해서 '소를 취하해 줄 테니 노조를 탈퇴하라'는 요구를 한다. 노조를 탈퇴하는 조건으로 피고의 지위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 몫은 남은 피고들에게 가중된다.

한 사업장의 경우 쟁의행위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100여 명이었는데, 이후 회사는 노조에 남은 30여 명만을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실행했다. 이후 7명의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하자 그들에 대해서는 소를 취하하고 가압류를 해제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담보 재산이 많을수록 회사에 유리한 건데, 노조 탈퇴 직원에게 소 취하와 가압류 해제로 담보 재산을 스스로 줄인다. 이 정도면 소권(訴權) 남용 아닌가.

정리해고 반대 파업도 불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송 중 기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백이면 백 법원은 회사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왜 회사 손을 들어주는 것일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노조가 파업을 했고, 그로 인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였으니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쟁의행위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노동조합법 제2조)이고, 우리 헌법은 이러한 업무 저해 행위를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취지는 단체행동권 행사의 당연한 결과로 발생하는 사용자의 손해, 업무 방해에 대해 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조법 제3조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도 헌법에 연유한다. 민법상 법익 침해는 불법행위가 되지만 대등한 노사 관계를 위해 불법행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 노동3권, 노조법 제3조의 취지다. 

그러나 법원은 노조법 제3조의 "이 법에 의한 쟁의행위"를 정당한 쟁의행위로 축소 해석하고, 노동조건과 무관한 파업(판결에 따르면 정리해고 반대 파업도 여기에 속한다)을 불법파업으로 간주하며,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회사에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다.
 

대법원이 노동조합법상 쟁의행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고 있어서 지나친 손배가압류가 남발되고 노동3권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셔터스톡

 
이런 이유로 손잡고는 노조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개정안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노조법상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은 노동쟁의를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를 좁게 해석하여 경영권에 대한 노동쟁의는 노동쟁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리해고나 아웃소싱 반대 파업을 경영권에 대한 노동쟁의로 보기 때문에 그 파업은 불법행위이고 회사에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지위 변동을 수반하는 경영권의 행사는 노동조건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 외의 경영권 행사도 근로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이번 개정안은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경영권 행사를 포함한 노사관계 전반에 관한 분쟁도 노동쟁의에 포함했다.

둘째, 손해배상의 면책범위를 확대했다. 쟁의행위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되도록 했다. 예컨대 노동조합이 회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는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하는 것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폭력이나 파괴를 주되게 동반한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배상책임을 지도록 했다.

셋째, 개별 노동자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했다. 노동조합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주체다. 또한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하여 쟁의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쟁의행위는 집단적인 행위다. 이는 쟁의행위가 보통 노동조합의 결의와 지시에 따라 통일적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실태에도 부합한다. 

따라서 쟁의행위나 노동조합 활동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그 책임은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 단체의 책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다만 노동조합의 통제에서 일탈한 개별 행위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이 인정되도록 했다.

그 외에도 노조법 개정안에는 △ 신원보증인에 대한 손해배상 금지 △ 영국 법령처럼 노동조합 규모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금액의 상한 설정 △ 쟁의행위 원인과 경위나 배상의무자의 경제적 상태에 따른 손해배상액 감면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이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이 대표발의하여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발의된 개정법안 감감무소식

노조법 개정안과 별도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국가 등의 괴롭힘소송에 관한 특례법안'을 발의했다. 집회나 파업과 같은 시민들의 공적 참여를 위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이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전략적 봉쇄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SLAPP)은 재판청구권을 남용하여 시민의 청원권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목적과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또는 근로자의 기본권을 행사한 개인, 노동조합 또는 비영리단체를 피고로 하여 기본권 행사를 제한하려는 목적을 가진 민사소송"을 "괴롭힘소송"으로 정의한다. 법원은 괴롭힘소송으로 판단하면 각하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두 법안 모두 감감무소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은 사용자의 재산권 보호와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 법리를 근거로 노조법 개정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기존의 법리나 법 해석은 악의적인 손배가압류를 막기는커녕 부추기는 효과만 낳았기 때문에 법 개정을 시도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조그마한 위법이라도 있을 경우 사용자는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고, 법원은 그 청구를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로 인해 노동3권은 헌법 속의 장식물로 전락하고 있고, 노동자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쟁의행위를 이유로 사측이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바람에 근로자와 그 가족들이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고, 가족의 해체와 신용불량, 파산 더 나아가 심리적 불안으로 인한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은 조합비 고갈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ILO, UN "파업권 제한하는 손배소 악용 막아야" 

현재 우리나라 법체제에서는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신청 취하를 대가로 노동조합 및 노동자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용자의 재산권 보호에 치우쳐, 근로자가 노동3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정당한 노동3권의 행사를 제한하지 않되 사용자의 재산권 침해를 방지하는 새로운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제한 법리가 필요하다.
 

유성기업이 손배가압류를 악용해 노조를 파괴하려고 했던 사실이 내부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2019년 1월 4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 오마이뉴스

 
2017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 보고서는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손배·가압류가 파업을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2017년 10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는 "손해배상 청구는 쟁의행위 참가 근로자를 상대로 한 보복 조치"라며 "파업권이 효과적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파업권 침해에 이르게 되는 행위를 자제하고, 쟁의행위 참가 근로자에 대해 이루어진 보복 조치에 대한 독립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ILO 29호, 87호, 98호 핵심협약에 대한 비준동의안이 의결된 지금 시점에서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윤지영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관심영역은 노동, 그 중에서도 불안정 노동, 노동 탄압입니다. 시민단체 '손잡고', '직장갑질119'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지금 다시 헌법>(공저), <모두를 위한 노동교과서>(공저) 등이 있습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 ⓒ 윤지영

 
덧붙이는 글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url.kr/jikh9o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