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시장과 자원은 유한하다. 적자 구조로 운영되는 한국 프로야구 시장에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몸값 거품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장기적으로 부작용만 불러올 뿐이다.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왜곡된 시장 구조를 바로 잡아야한다는 자성의 여론이 제기되며 한동안 거품이 빠지는 듯했지만, 올해는 다시 한번 '돈잔치'가 폭주하는 스토브리그를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프로야구 2021 FA 시장이 개막한 가운데 1호 계약은 한화 이글스의 최재훈이었다. 한화는 지난 27일 최재훈과 5년 총액 최대 54억 원(계약금 16억 원, 연봉 33억 원, 인센티브 최대 5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화의 주전포수인 최재훈은 올시즌 타율 .275, 7홈런, 44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017년 4월 두산 베어스에서 트레이드로 이적해 한화 유니폼을 입은 최재훈은 이적 후 5시즌 동안 통산 타율 .277, 15홈런, 153타점, 장타율 .356, 출루율 .376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 정민철 단장 모두 빌딩 과정에서 팀이 성장해 나가는 데 중심을 잡아줘야 할 핵심 선수로 최재훈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최재훈이 한화 전력에서 매우 중요한 선수이며, 꽤 좋은 활약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5년 54억 원에 이르는, 성적에 비하여 예상을 훨씬 웃도는 계약규모다. 아무래도 FA 1호 계약자의 대우는 시장 전체 판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기준선이 된다. 최재훈이 포수 최대어라고 하지만, 올해 FA 랭킹 전체를 봤을때 상위권에 꼽힐 정도의 선수는 아니었다. 최재훈 정도의 성적으로 이만한 대우를 받았다면, 그보다 개인 성적이자 전체 커리어에서 더 급이 높다고 생각되는 선수들의 눈높이는 자연히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100억 원대 계약' 전망, 우려스럽다
 
단계적 일상 회복, 야구장 첫 만원관중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린 서울 잠실구장이 매진을 기록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준PO 3차전에 2만3천800명의 관중이 입장했으며 이는 잠실구장이 수용할 수 있는 최다 관중 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온전한 매진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단계적 일상 회복, 야구장 첫 만원관중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린 서울 잠실구장이 매진을 기록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11월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준PO 3차전에 2만3천800명의 관중이 입장했으며 이는 잠실구장이 수용할 수 있는 최다 관중 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온전한 매진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올해 FA시장에서는 대어급으로 꼽히는 선수들이 쏟아졌다. FA 등급제에서 A등급만 5명인 데다 B, C등급으로 분류된 선수중에도 대박 계약을 체결할 만한 자원들이 즐비하다. 나성범(NC)을 비롯하여 손아섭(롯데), 김현수(LG), 김재환, 박건우(두산) 박해민(삼성), 백정현(삼성) 등은 모두 한 팀을 이끌어갈 만한 주축들이다.

여기에 메이저리그에서 국내 유턴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김광현과 양현종도 있다. 준척급으로 꼽히지만 최재훈과 같은 포수 출신으로 커리어에서는 훨씬 더 앞서는 강민호(삼성)와 장성우(KT)가 '최재훈 효과'의 후폭풍으로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게될지도 관심사다.
 
특히 최상위권 대어들의 경우, 이름값을 감안할 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100억 원대 계약'이 쏟아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동안 역대 KBO FA 시장에서 100억 원대 계약을 맺은 선수는 최형우(KIA), 이대호(롯데), 김현수, 최정(SSG), 양의지(NC)까지 총 5명이다. 이대호가 2017년 국내로 유턴하여 롯데와 4년 150억 원에 계약을 맺은 것이 역대 최고 대우였다.
 
올겨울 신규 100억 클럽 회원이 등장한다면 나성범, 김광현, 양현종 3인방이 될 것이 유력하다. 나성범은 통산 타율 .312 212홈런 830타점, 2년 연속 30홈런-100타점을 마크한 리그 최고의 거포 타자다. 김광현-양현종은 10년 이상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 선발이자 KBO리그 소속팀의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윤석민-이대호의 대박 사례에서 보듯 '메이저리그 경험자'라는 프리미엄까지 안고 있다.

또한 빅3 외에도 웬만한 올해 대어급 선수들은 최재훈 효과로 일단 기본 60억~80억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FA시장에 대한 기대치가 대거 높아지면서 과열한 몸값 경쟁은 자연히 구단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KBO리그 역대 FA 계약 전체 최고액 기록은 2016년의 766억 2천만 원이었다. 당시 박석민(NC·4년 96억 원), 정우람(한화 이글스·4년 84억 원) 등 굵직한 계약이 연속해 나오면서 FA 시장의 정점을 찍었다. 올해는 수준급 선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것도 있지만, 최근 계약 추세가 기존의 '4년' 관행에서 5~6년 이상으로 기간이 점점 길어지며 총액규모는 더 상승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마치 딴 세상 이야기를 듣는 듯한 프로야구 FA시장의 돈잔치에 대중의 여론은 그리 곱지 않다. 2016년 이후 과열된 KBO리그의 FA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높아졌고, 각 프로구단들이 FA보다 '육성'에 눈을 돌리면서 한동안 합리적인 투자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듯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수익규모가 감소한 구단들의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진 것도 몸값 거품을 빼야한다는 여론에 공감대를 더했다.
 
비정상적인 몸값 거품

더구나 프로야구는 2021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논란과 비판에 직면했다. 일부 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과 일탈행위가 도마에 오르며 프로야구 전체 리그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국내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다는 국가대표팀은 도쿄올림픽에서 초라한 실력을 드러내며 노메달의 수모까지 당했다. 꼭 올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력에 비하여 과도한 대우를 받으며, 부와 인기에 도취되어 정작 사회적 의무와 책임감을 소홀히 하는 배부른 야구인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작 올해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현실적 상황과는 동떨어진 '억소리' 나는 돈잔치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평범한 일반 팬들 입장에서는 과연 같은 세상에서 살고있는 게 맞는가라는 위화감과 함께 싸늘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운동선수의 수명은 짧고 선수들에게 FA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누구나 평생 한두 번 올까 말까 한 대박의 기회에서 최대한 좋은 대우를 보장받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선수에게 50억~60억 이상, 나아가 100억 규모의 돈을 지불해야 할 만큼의 가치를 지닌 선수가, 냉정히 말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선수의 가치는 단순히 3할-40홈런-100타점-20승같이 숫자로 말하는 외형적인 기록만이 전부가 아니다. 독자적인 수익구조 없이 모기업의 지원에 의존하는 국내 프로야구 산업에서, 선수 한 명이 자신의 몸값만큼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여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자타공인 당대 리그를 지배할 정도 성적을 꾸준히 올린 '슈퍼스타'이거나 전국구로 구름관중을 몰고다니며 흥행파워를 갖췄다고 할 만한 영향력을 지닌 선수가 현재의 KBO리그에 정말로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100억 원을 한 선수에 쏟아부어서 도박을 거는 것보다, 그 돈과 시간을 유망주들에게 투자하고, 체계적인 중장기 계획으로 강팀을 만드는 '과정'에 주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프로 선수들은 욕심만 부리기 전에 자신들의 실제 가치를 좀 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한번 올라가면 내려가지 않는 선수들의 몸값 인플레는 어느새 구단의 합리적인 투자를 발목잡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일부 스타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간다고 해서 프로야구 전체 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것도 아니다. 언론 역시 화제성에만 편승하여 이런 비정상적인 몸값 거품을 부추기는 것을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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