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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 빈소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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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5.18유공자가 본 전씨의 사망 

"인정은커녕 사과도 없고, 아직 추징금 환수조차 안 되었는데 이렇게 죽다니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죠. 감정이 이래서 이야기를 더 할 수가 없습니다."   

부산·울산·경남 5·18민주유공자회 김종세 회장은 격앙된 감정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 23일 기자와 전화하는 내내 '분노'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광주 시민을 학살하는 등 당시 내란 과정에서 전국의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죽었다는 소식에 "원통하고 절통하다"라고 표현했다. 

내란·학살자가 제대로 된 처벌없이 90세까지 살다 숨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김 회장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허탈해했다. 그는 "자연의 수를 누리고 죽었다는 자체가 역사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래서 더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라고 말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에 이어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인사는 정권 장악을 위해 다음 해인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확대했다. 당시 부산대 시위에 참여했던 김 회장도 보안사로 끌려갔고 군사법원은 그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 회장은 "전두환이 내란을 일으키고 거기에 걸림돌이 된 사람들을 모두 잡아 가뒀다"라며 "자신도 그 당시 연행돼 고문을 받고 실형을 살아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만의 항쟁이 아니었다. 서울역 앞에서 일부 시위대가 후퇴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부산 등 곳곳에서는 신군부에 맞서는 시위가 펼쳐졌다.

정치권 일부의 조문 언급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라고 냉랭한 반응을 나타냈다. "국가장은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이야기고,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느니 마느니 이야기 나온다는 게...." 김 회장은 "간다면 국민들이 두 눈을 뜨고 볼 것이고, 국민들이 (그것의 의미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법정에서 나온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11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법정에서 나온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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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시기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정부가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단속한 부랑인을 사회복지시설에 감금하고 인권 유린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던 최승우씨는 24일 전화 인터뷰에서 "최소한 사과라도 하고 갔으면 분노가 덜 할 텐데, 염치가 없다"라고 날을 세웠다.

#분노하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확인된 사망자만 500여 명에 달하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이제서야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국회 앞 고공농성까지 했던 최씨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길거리 청소를 자행하며 엄청나게 사람들이 갇히고 죽임을 당했다"라며 "민주화 항쟁에 비교할 수 없겠지만, 심각했던 사건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추모나 조문 움직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인간 청소를 하고 항쟁을 진압한 전씨에게 왜 조문을 한단 말입니까. 그냥 일반 사람으로서 그냥 장례 치르도록 놔두어야 합니다." 사망 이후 일부 언론의 '전 대통령' 호칭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임기 끝날 때까지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예요.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자체가 어폐입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말입니다. 자격이 없죠. 역사에 남을 일 아닙니까? 악행을 저지른 자인데."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 역시 전씨의 죽음에 착잡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한 대표는 "저렇게 권력을 누리고 잘 먹고, 그런데도 욕먹어가면서도 버티던 인간도 결국은 시간은 거스르지 못했다. 정말 착잡하다"라고 심경을 표했다. 그는 역사의 무게를 강조했다.

"살아있을 때 자기의 과오를 반성하고 최소한 피해자들한테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를 바랐지만, 전씨는 그러지 않았어요. 전두환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고, 비호 세력은 누구인지, 형제복지원 사건의 은폐 내용을 기록으로 남길 거예요. 5·18뿐만 아니라 형제복지원 등 전국의 부랑민 수용소 36개 시설에서 벌어진 사건, 대공분실 끌려가서 학대당하고 죽어갔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기록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무게를 짊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전씨로 고통받았던 이들은 한목소리로 그의 사망이 결코 끝이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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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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