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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우리말 천태만상'은 세종국어문화원과 오마이뉴스가 함께합니다.[편집자말]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한글문화연대 정재환 공동대표가 사회를 보고 있다.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한글문화연대 정재환 공동대표가 사회를 보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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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태양, 넘보라살은 자외선으로 씁니다. 달걀은 계란, 나루는 선착장, 에누리는 할인... 굳이 한자어를 쓰고 있죠. 허파, 염통, 콩팥 대신 폐, 심장, 신장이라고 씁니다. 한자어는 '인간의 장기'이고, 우리말은 '짐승의 장기'로 취급합니다. '늙은이'는 비어이고, '노인'은 높임말로 압니다. '계집'도 '여인' '여자'라고 해야 하죠."

지난 1일 열린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일으킴 말씀(발제)을 한 최무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우리말에 대한 자학적 비하 풍토를 비판했다. 한글문화연대와 (사)토박이말바라기가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이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바실리오홀에서 열렸다.

[물리] 문화는 거대한 생명체... 핵심은 말과 글

최 교수는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은 한글"이라면서 많은 구성 요소로 이뤄진 우주·생명체의 복잡계와 문화의 유사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말을 줄이면 이렇다.  

"자연현상은 질서정연하지도, 무질서하지도 않은 경계에 있는 게 많습니다. 자연이 아름다운 건 복잡해서입니다. 온전히 질서정연한 것, 무질서한 것에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변화무쌍하기에 아름다운 것이죠. 복잡은 번잡한 것과는 달리 짜임새가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으려면 외부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걸 신진대사라고 하는 데 물질과 에너지의 정보를 외부와 주고받습니다. 정보는 번식을 통해 비슷한 것을 만듭니다. 이게 유전입니다. 다음 세대에 정보를 전해주죠. 또 살아있는 것은 환경에 반응합니다. 이걸 응답이라고 하는데, 외부 자극에 적절하게 반응하면서 바뀝니다. 진화하는 겁니다."


최 교수는 "문화는 거대한 생명체와 같다"면서 "문화 형성 단위인 생활공동체는 민족과 국가처럼 잘 짜여있고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복잡성을 가진 열린사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생명체의 신진대사처럼 생활공동체는 개인 사이의 정신적 공감대와 정보 교류를 통해 소통하고, 외부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면서 응답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생명의 핵심인 DNA는 정보 저장 도구이고, 문화의 핵심도 인간 사고를 담은 정보"라면서 "인류 역사가 이룩한 집단 관념, 조직, 기술의 총체인 문화를 전달하는 것은 말과 글"이라고 강조했다.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최무영 서울대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최무영 서울대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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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 교수는 "성장 속도가 아주 빠른 암세포는 다른 세포를 죽이면서 몸을 획일화시키고, 우리 몸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문제"라면서 "우리말의 다양성이 상실되고 한자어나 영어 등의 외국어가 한글문화를 잠식하면 복잡성이 훼손돼 문화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1995년 한국물리학회가 학술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에 참여했다. 당시 38차 회의를 거치면서 학회 차원에서 바꾸려고 했던 용어는 이런 것들이다.
 
- black hole : 흑공→검정구멍
- dark nebula : 암흑성운→어둠별구름
- limit cycle : 극한주기궤도→끝돌이
- convection : 대류→엇흐름
- white dwart : 백색왜성→하양잔별
- diffraction : 회절→에돌이

하지만 201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중 일부 용어만 사용하고 있다. 최 교수는 "많은 대학에서 영어 강의가 필수이고, 한 대학 국문과는 영어로 강의하기도 한다"고 꼬집은 뒤 "일본어를 강요당한 일제 강점기 때와는 달리 지금은 자발적으로 영어를 쓰면서 세계화라고 주장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미국화'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리] 어려운 한자 용어 풀이에 강의시간 허비

"저는 고대사를 공부할 때 '마제석기' '타제석기' '줄문토기' '지석묘'라고 배웠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간석기' '뗀석기' '빗살무늬토기' '고인돌'로 배웁니다. 한자를 몰라도 금방 이해할 수 있죠. 고고학 분야는 개정 용어집을 내서 우리말 사용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전 경상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경남평생교육진흥원 원장)는 고고학계 성공 사례의 배경 중의 하나는 "연구자가 적었기 때문이었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따라서 그는 "고고학계는 합의를 쉽게 도출할 수 있었다"면서 "다른 학계는 전문 학자들이 많고, 한자에 집착한 선배들도 많아서 용어를 합의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뉴질랜드 지리학자가 발표하는 것을 봤는데, 지명이 모두 원주민 마을 이름이더라고요. 미국의 미시시피 강도 인디언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군도 등의 공식 명칭은 모두 한자입니다. 단 하나, 서울은 우리말입니다. 한밭이라는 좋은 우리말을 놔두고 대전으로 바꿨죠. 다른 나라에서는 토박이말로, 일상 언어로 지명을 짓는데, 우리는 왜 그럴까요?"

이 교수는 "우리 토박이말로 용어를 바꾸면 좀 길어지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어려운 한자 용어를 풀이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써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쉬운 말로 바꾼 지리 용어를 소개하기도 했다.
 
- 경사한계→비탈한계
- 노촌→길가마을
- 매장량→묻힌량
- 사하촌→절아래마을
- 염전→소금밭
- 윤작→돌려짓기
- 고위평탄면→높이솟은평지
- 복류천→땅밑하천
- 사구→모래언덕
- 석주→돌기둥
- 융기운동→솟음운동
- 우각호→소뿔호
- 퇴적평야→쌓인벌
- 고산기후→높은산기후

하지만 이 역시도 아직 학계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이 교수는 "언어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다면 얼마든지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면서 "지리교과서에서 우리말 지리용어가 새롭게 사용되기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일반인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이창수 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이 발표를 하고 있다.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이창수 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이 발표를 하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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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화학] 동그라미를 동그라미로 부르지 못하고...

"동그라미를 동그라미라고 부르지 못하는 게 지금의 수학 교육입니다."

허민 교수(광운대 수학과)의 말이다. 허 교수는 "표준어국어대사전에서는 토박이말 용어 '세모' '네모' '동그라미'는 각각 수학용어인 삼각형과 사각형, 원의 동의어로 뜻풀이를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수학 교과서에서는 모양과 도형의 이름을 구별해서 원, 삼각형, 사각형이라는 용어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기하학적 명제에 있는 용어인 점, 선, 면을 식탁, 의자, 잔으로 바꾸는 것은 틀림없이 가능하다."

위의 말은 허 교수가 소개한 유클리드 기하학 학자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가 한 명제이다. 허 교수는 "모든 수학 용어는 언어적 기호에 불과하고 사회적으로 약속하면 된다"면서 "1955년 제1차 교육과정에서는 토박이말 수학용어가 대폭적으로 도입됐는데, 제2차 교육과정에서 많은 용어가 한자말로 되돌아갔다"고 안타까워했다. 당시 우리말에서 한자로 후퇴한 용어는 이런 것들이다.
 
- 곡선그리기→곡선의추적
- 곱수→승수
- 덧뺄셈→가감법
- 만난점→교점
- 맞각→대각
- 모기둥→각기둥
- 모뿔→각뿔
- 모아짜기→조합
- 바깥각→외각
- 외톨수→소수
- 외톨인수→소인수
- 원둘레율→원주율
- 펼친그림→전개도
- 만난점→교점

허 교수는 "2015년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에서는 학습 요소에 용어가 제시돼 있고, 여기에 있는 526개의 용어 중에서 한자말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 용어는 무려 92.4%인 486개"라면서 "토박이말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는 용어는 약 16.3%(86개), 온전히 토박이말로 된 용어는 4.8%(25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김승현 신성교등학교 교사는 '화학 술어'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김 교사는 "우리나라 화학 술어는 일본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일본 화학 술어는 독일 영향을 크게 받았다"면서 "여기, 주기율표 118번이 있는데 토박이말은 몇 개일까요"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구리와 납, 2개뿐이었다. 다른 학문 분야처럼 화학 분야에서도 토박이말 용어 사용의 척박한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는 "철은 '쇠'로 바꾸면 어떨까"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제안] 대통령 직속 '나라말글터' 만들자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토박이말 살리는 수 찾기"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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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말바라기 '늘맡음빛'(상임이사. 늘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 이창수 교사는 '토박이말을 살리는 수'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그는 "정치제도는 민주화됐는데, 우리말은 민주화됐는가"라고 자문한 뒤 정부와 정치권이 우리말 학술용어 사용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나라말과 글을 챙기는 나라말글터(국립국어원)는 문화체육관광부 아래에 있는데, 대통령 바로 아래에 두어야 합니다. 조선 때 세종 임금께서 집현전을 손수 챙기신 것처럼 국민들이 쓰는 말과 글을 대통령이 손수 챙기는 것이 나라에서 해야 할 가장 으뜸일입니다." 

청와대 안에 '말글맡음빛'(국어 기획관)을 둘 것도 제안했다. 그는 "청와대 누리집에는 '디지털뉴딜' '그린뉴딜' '휴먼뉴딜'이라는 말을 앞장서서 쓰고 있고, 다른 부처에서도 마치 겨루기를 하듯이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말을 마구 쓰고 있다"면서 "청와대의 말글맡음빛은 정부의 바람직한 말글살이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을 마친 발표자들은 한글 문화연대 이건범 대표의 사회로 '묻고 갚기'(종합 토론)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도 각 학술 영역에서의 일본식 한자말, 영어 사용 등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이 대표는 다음과 같은 실행 계획으로 정리했다. 

"해방기에 '우리말도로찾기'를 하다가 63년경에 확 바뀌어서 '일본말 도로찾기'로 퇴행했습니다. 이때 우리말 문법 중 '이름씨'가 '명사'로, '움직씨'는 '동사'로 바뀌었죠. 지금이라도 이미 만든 좋은 우리말을 모아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부터 나서야 합니다. 그걸 엄선해서 '편수 용어'로 집어넣을 수 있는 작전을 함께 짭시다."

이에 이창수씨는 "토박이말을 많이 사용할 수 있는 바람직한 말글살이를 위해서는 나라가 직접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대선 기간이니 후보들을 상대로 우리말 살리기 공약을 제안해서 어떤 후보들이 받아들이는지를 공개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 발표자들이 제시한 우리말 용어들은 우리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것들이어서 낯이 설었다. 하지만 교육자들이 학생들에게 용어를 설명하기 쉬웠고, 학생 입장에서 봐도 개념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토박이말을 살리는 '수'를 찾으려고 함께 나선 이들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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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들과 함께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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