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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인이 되고 나니 보이는 것들'입니다.[편집자말]
결혼하기 전에 4년 정도 채식을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동물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라고 생각했던 육식이 오늘날에는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이 동물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훼손하며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채식에도 단계가 있는데, 나는 육류와 해산물을 먹지 않고 달걀은 먹는 락토 오보 베지터리안이었다. 보통은 단계별로 채식에 적응하는 단계를 거치기도 하는데, 그때의 나는 하루아침에 고기를 끊는 것이 이상하게 어렵지 않았다. 친한 친구랑 마지막으로 치킨을 먹으면서 '나 앞으로는 채식할 거야'라고 선언하고 다음 날부터 모든 고기를 끊었다.
 
'나 하나라도'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채식
 "나 하나라도"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채식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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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다시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게 됐다. 4년 동안 고기 냄새도 잘 맡지 못하는 체질이 되었는데, 남편과 한 집 생활을 하며 식사를 하다 보니 또 한순간에 육식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남에게 채식을 권유해본 적은 없고, 남편도 연애할 때부터 채식을 하던 나에게 고기를 먹어보라고 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육류를 좋아하는 남편과 돼지고기 김치찌개라도 한 식탁에서 먹으려면 우리 집 냉장고에 고기를 들일 수밖에 없고, 또 술을 좋아하다 보니 같이 먹을 수 있는 술안주를 찾더라도 대부분 육식이었다. 채식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둘 중에 나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모를 때라면 몰라도, 채식을 그만둔 것에 대해 누구에게랄 것 없는 부채감이 한 조각은 남아 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동물들이 단지 '고기'로 길러지며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동물 관련 기사에 자주 달리는 악플 중 하나가 내 반려동물을 '고기'로 치부하는 것이다. 몰상식한 댓글이라고 생각하며 넘기면서도, 한편으로 내 반려동물뿐 아니라 모든 동물이 인간에게는 결국 '고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육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육식이라는 게 동물에게 그 삶을 누릴 기회도 없이 억압과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면 동물이 자연스럽게 번식하고 성장하는 속도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우리가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채식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기 위해 비누처럼 압축한 샴푸바를 쓰게 되었다.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기 위해 비누처럼 압축한 샴푸바를 쓰게 되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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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할 때에는 동물로부터 얻어지는 가죽이나 털, 환경을 어지럽히는 쓰레기나 플라스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크게 고민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채식을 그만두면서는 조금 더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바라보게 되었다.

환경이 훼손되어도 인간은 또 다른 신문물을 이용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서식 환경이 바뀌며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프리카 사자나 코끼리도 이미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하니, 몇 세대가 지나면 익숙한 동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계적 변화는 궁극적으로 다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일상에서는 먼 얘기처럼 느껴지지만, 요즘에는 사회적으로도 조금씩이나마 환경에 악영향을 덜 미치는 방향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쭉 생각만 하고 막상 써보진 못했던 샴푸바를 처음 구매해봤다. 욕실에서 사용하는 목욕용품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서 소모되고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아예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기 위해 비누처럼 압축한 샴푸바라는 용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매일 당연하게 쓰던 샴푸 용기가 좀 다르게 보였다.

사실 샴푸바를 쓰는 데 가장 큰 진입장벽이었던 것은 비누와 비슷하게 생겨서 왠지 머리가 뻣뻣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긴 머리의 나에게는 아무리 친환경적이라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선택하는 것은 망설여졌다.

그런데 막상 한번 구매해서 사용해보니 일반 샴푸와 다를 바 없이 두피까지 시원하게 잘 씻길 뿐 아니라, 의외로 편리했다. 머리에 두어 번만 슥슥 문지르면 거품도 잘 나고, 사용한 뒤에는 비누 받침대에 올려서 보관하면 된다.

씻기 전부터 샴푸바에서 나는 향을 맡는 것도 좋았다. 나 때문에 엉겁결에 샴푸바를 쓰게 된 남편도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다고 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과 채식을 함께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는 큰 노력 없이도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물론 샴푸 용기 하나를 줄이는 아주 사소한 변화일 뿐이지만 말이다.

인간 중심의 삶 바깥을 들여다보는 일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7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국내 대표 식품제과 제조 기업인 농심, 롯데제과, 해태제과, 동원F&B 제품에 포함된 플라스틱 트레이(내부 용기) 제거 및 친환경 소재로 대체할 것을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7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국내 대표 식품제과 제조 기업인 농심, 롯데제과, 해태제과, 동원F&B 제품에 포함된 플라스틱 트레이(내부 용기) 제거 및 친환경 소재로 대체할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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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살아가지 않았다면 내가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세계 바깥의 일들에 관심을 돌릴 수 있었을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택하면서 집에서 보살피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반대로 내 세계가 내가 겪어볼 일 없었던 영역까지 조금쯤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는데,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도 실은 지구 전체의 생태계가 필요한 법이 아닐까.

사실 우리는 이미 인간 중심의 삶에 익숙하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들이 다니는 길에 아스팔트를 깔고, 젖소가 새끼에게 먹여야 할 우유를 착취하고,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의 사료를 위해서 또 엄청난 양의 육류를 소비한다.

인간 중심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실제로 나 역시 편의를 포기할 수 없고,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이 무엇 위에 구축되었는지 생각하면 사소한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조금씩 노력하고 싶다.

남편과 함께 맛있는 걸 먹는 즐거움도 포기할 수 없지만, 그 외에 혼자 하는 식사에서는 다시 채식을 지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리를 싫어해서 직접 식재료를 구매해 귀찮고 복잡한 걸 하긴 어렵지만, 예전보다 '비건' 키워드만 입력해도 찾을 수 있는 제품군이 확실히 늘어났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현대 육류 소비의 큰 축이 되는 반려동물 푸드를 위한 대체육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요즘에는 용기를 들고 가면 샴푸나 바디워시, 세제 등을 필요한 용량만큼 구매할 수 있는 가게도 생기고 있다는데, 처음에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더라도 점차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가 된다면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조금씩 줄일 수 있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일상에 이러한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그저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한 합리화가 아닌가 싶으면서도, 또 그렇게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해보는 게 나름대로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개개인이 대단한 개혁을 일으킬 수는 없을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마음이 모이면 궁극적으로 그게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을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누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 다만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과 별개로 많은 기업에서도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친환경적 요소에 대해 계속 고민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커진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태그:#반려동물, #동물,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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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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